비평

우물가 빨래터 ㅡ 청람 김왕식

우물가 빨래터 2026.05.06
우물가 빨래터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우물가 빨래터

김왕식

아침 안개가 채 걷히기 전 우물가에는 먼저 하루가 내려와 있다

어머니는 두레박을 깊이 내려 물의 숨을 길어 올리고 낡은 수건 하나 어깨에 걸친 채 빨랫감을 조용히 펼친다

손끝에 묻은 물은 차갑지만 그 물결 속에는 살아내야 할 날들의 온기가 스며 있다

탁탁 두드리는 소리마다 아이들의 이름이 묻어 있고 비누 거품이 이는 자리마다 지워지지 않는 걱정이 일어난다

청상으로 남겨진 삶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무게였지만 어머니는 그 무게를 등에 지지 않았다

가슴으로 품었다

여섯 남매의 하루를 밥으로, 물로, 손길로 하나씩 꺼내어 살아 있는 쪽으로 밀어 올렸다

해가 기울어도 빨래는 끝나지 않고 손등은 갈라져도 물은 다시 맑아진다

젖은 옷을 짜내듯 어머니는 눈물을 짜내지 않는다

그 대신 다 마르지 않은 마음을 햇빛 아래 널어 둔다

바람이 스치고 시간이 지나면 그 마음도 옷처럼 다시 입을 수 있게 되기를

우물가 빨래터에는 아직도 어머니의 손이 남아 있다

물이 닿던 자리마다 안온히 살아온 날들의 결이 남아 누군가의 삶을 오늘도 다시 씻어 내리고 있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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