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

침묵 속에서 다시 숨이 피어나는 날 ㅡ청람 김왕식

침묵 속에서 다시 숨이 피어나는 날 2026.05.07
침묵 속에서 다시 숨이 피어나는 날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침묵 속에서 다시 숨이 피어나는 날

김왕식

무너진 자리에는 빛보다 먼저 숨이 내려앉는다

말로 다 건네지 못한 하루들이 가슴 깊은 곳에 쌓여 이름 없이 번져 갈 때 사람은 비로소 자기 안의 깊이를 마주하게 된다

아픔은 크게 울지 않는다 안온히 등을 기대고 갈 곳 잃은 채 한 사람의 안쪽에 머문다

견딘다는 말은 수많은 침묵으로 이루어진 시간

누군가 곁에 있다는 것 그것은 설명이 아니라 온기로 스며드는 언어

말없이 마주 앉은자리에서 흩어진 마음 하나가 조금씩 제 모양을 찾아간다

창가를 스치는 바람 한 줄기 잠시 머문 햇살 한 조각 이름 없이 지나간 하루 끝에서 미지근하게 식어 가는 차 한 잔

그 사소한 것들이 삶을 다시 붙잡는 이유가 된다

완전히 낫지 않아도 다시 살아갈 수 있는 존재

지워진 자리가 아니라 아픔을 품은 채 걷는 길 위에서 사람은 더 깊어진다

오늘은 조금 느리게 걸어도 좋겠다

흔들리는 마음을 다그치지 않고 그 자리에 안온히 함께 서 있어 주는 일

그것만으로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하루가 다시 이어지고 있으므로

어둠은 오래 머물지 못하고 빛은 서두르지 않고 다가온다

그리고 어느 순간 아무도 모르게

당신의 안쪽에서 아주 작고 따뜻한 숨 하나가 다시 시작된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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