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

서서히 밝아지는 마음의 결 ㅡ청람 김왕식

서서히 밝아지는 마음의 결 2026.05.07
서서히 밝아지는 마음의 결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서서히 밝아지는 마음의 결

김왕식

사람의 마음이 아플 때, 그 아픔은 쉽게 말로 꺼내지지 않는다. 누구에게 설명하기도 어렵고, 스스로도 끝까지 이해하지 못한 채 조용히 안고 살아가게 된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는 하루 속에서도, 마음 한켠에서는 오래된 통증이 미세하게 이어진다. 아마 많은 이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그런 시간을 지나왔을 것이다.

그래서 감히 무엇을 해야 한다고 말하기보다는, 그저 이런 생각을 함께 나누고 싶어진다. 아픔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한 사람의 삶은 충분히 깊어져 있다는 것. 아무 일도 없는 듯 살아가는 날들보다, 흔들리고 무너졌던 시간들이 사람을 더 사람답게 만든다는 것. 그것을 지나온 이들의 눈빛이 조금 더 따뜻해지는 이유도, 아마 거기에 있을 것이다.

가끔은, 스스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잘해야 하고, 버텨야 하고,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는 말들 속에서, 정작 자신의 마음은 뒤로 밀려나 있기 쉽다. 그러나 마음은 그렇게 다루어질수록 더 조용히 아파진다. 그래서 어느 순간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하루를 두고도 “그럼에도 잘 지나왔다”라고 말해주는 일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 말 한마디가, 생각보다 오래 마음에 머문다.

누군가 곁에 있어 준다는 일도, 때로는 큰 의미를 가진다. 꼭 많은 말을 나누지 않아도 된다. 함께 앉아 있는 시간, 아무 말 없이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그 순간만으로도, 사람의 마음은 조금씩 풀리기 시작한다. 아픔은 설명되지 않아도 괜찮고, 이해되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 하나가, 긴 시간을 버티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아주 사소한 것들이, 의외로 마음을 다시 붙들어 주기도 한다. 창가로 들어오는 빛, 잠깐 스치는 바람, 익숙한 음악 한 곡, 따뜻한 차 한 잔. 그런 것들은 특별할 것 없어 보이지만, 무너진 마음이 다시 숨을 고르도록 돕는 작은 손길처럼 다가온다. 삶이 완전히 달라지지 않아도, 그런 순간 하나가 하루를 견디게 한다.

아픔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조금씩, 아주 조금씩 그 결이 달라진다. 처음에는 감당하기 어려웠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무게로 바뀌기도 한다. 완전히 없어지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그 아픔과 함께, 다시 하루를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누구나 각자의 자리에서 애쓰며 살아간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견디고, 드러나지 않는 마음을 붙들며 하루를 넘긴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에도 조용히 버티고 있는 그 마음을, 함부로 작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외려 그 조용함 속에, 사람을 끝내 무너지지 않게 하는 힘이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말만은 조심스럽게 남겨두고 싶다. 지금의 마음이 어떤 모습이든, 그것 그대로 괜찮다고. 조금 느려도 괜찮고, 때로는 멈춰 서 있어도 괜찮다고. 그렇게 자신을 다그치지 않고 바라보는 순간, 아주 미세하지만 분명한 변화가 시작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삶은 어느 날 갑자기 밝아지기보다, 이렇게 작은 수긍의 순간들이 겹치며 서서히 따뜻해지는 것이 아닐까. 그 흐름 속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조용한 위로가 되어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ㅡ청람

댓글

로그인 없이 바로 남길 수 있습니다. 나중에 본인이 수정·삭제하려면 이 댓글의 비밀번호를 정해 주세요. 서로 예의를 지켜 주세요.

  1. 불러오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