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

단 1분이라도, 자신에게 돌아오는 시간 ㅡ청람 김왕식

단 1분이라도, 자신에게 돌아오는 시간 2026.05.08
단 1분이라도, 자신에게 돌아오는 시간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바람보다 늦게 걷는 마음 — 단 1분이라도, 자신에게 돌아오는 시간

청람 김왕식

사람은 늘 바깥으로 흐른다. 강물이 낮은 곳을 찾아가듯, 마음 또한 끊임없이 세상 쪽으로 흘러간다. 이름을 향해 흐르고, 관계를 향해 흐르며, 인정과 욕망과 비교의 언덕을 돌아 끝없이 밖으로만 걸어간다.

오래 바깥으로만 흐른 물은 어느 순간 맑음을 잃는다. 흙탕물이 되는 것은 강의 잘못이 아니라, 너무 많은 것을 끌어안고 흘렀기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도 그렇다. 너무 많은 소리를 품고 살아가면, 끝내 자기 자신의 숨소리조차 듣지 못하게 된다. 세상은 쉼 없이 인간을 부른다.

더 빨리 오라고, 더 높이 올라오라고, 더 많은 것을 가지라고. 그래서 사람은 자꾸만 앞으로 달려간다.

문득 멈추어 뒤를 돌아보면, 가장 오래 잃어버린 것은 세상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어쩌면 인간의 불행은 부족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으로 돌아오는 길을 잃어버린 데 있는지도 모른다. 옛 도인은 산을 오르지 않았다.

외려 산 아래 오래 앉아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를 들었다. 세상은 그들을 게으르다 했지만, 그들은 누구보다 깊이 삶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바람은 서두르지 않는다. 끝내 계절을 움직인다. 구름은 목적지를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늘 전체를 건너간다. 들꽃은 자신을 증명하지 않는다. 그러나 봄은 결국 그 꽃의 이름으로 기억된다. 인간만이 유독 자신을 설명하느라 지쳐 있다.

하루 단 1분이라도 좋다. 하늘을 오래 올려다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하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인간의 마음속에 쌓여 있던 먼지들이 조금씩 가라앉는다. 구름 한 점 흘러가는 동안, 마음도 함께 흘러간다. 설명할 수 없는 조급함들이 천천히 풀어진다.

숲은 더 깊다. 숲은 인간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다만 나무들은 서로 부딪치지 않으면서도 함께 하늘을 향해 자란다. 누구 하나 더 높아졌다고 소리치지 않고, 누구 하나 뒤처졌다고 낙심하지 않는다. 바람이 오면 함께 흔들리고, 비가 오면 함께 젖는다.

그 모습을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이상하게도 인간의 욕망이 조금 부끄러워진다.

길섶의 들꽃 하나도 그렇다. 아무도 이름을 불러주지 않는데도 제때 피어나고, 제때 진다. 더 오래 피어 있으려 애쓰지도 않고, 더 화려하게 보이려 몸부림치지도 않는다. 피어야 할 때 피고, 져야 할 때 지는 것. 자연은 그것을 슬퍼하지 않는다.

삶이란 어쩌면 그런 것인지 모른다. 억지로 거스르지 않는 것. 자신을 과장하지 않는 것. 흐를 때 흐르고, 멈출 때 멈추는 것.

길가를 기어가는 개미 한 마리를 바라본다. 작은 몸 하나로 세상을 다 짊어진 듯 움직이지만, 그 걸음에는 허세가 없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 다만 살아야 할 하루를 살아간다. 인간은 자꾸만 삶을 해석하려 한다.

자연은 살아낼 뿐이다. 어쩌면 인간이 점점 지쳐가는 이유는, 삶을 살아가기보다 설명하려 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자신이 얼마나 바쁜지, 얼마나 힘든지, 얼마나 잘 살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증명하려 한다. 그러는 사이 정작 삶은 증명 바깥으로 흘러가 버린다.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필요하다. 억지로 의미를 만들지 않는 시간. 자신을 세상의 중심에서 잠시 내려놓는 시간. 그 시간 속에서 사람은 비로소 자기 안에 아직 남아 있는 작은 빛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오래 상처 입고 닳아 있었지만 끝내 사라지지 않은 순한 마음 하나.

도가에서는 물을 가장 높은 경지라 했다. 물은 다투지 않는다. 낮은 곳으로 흐르면서도 끝내 바다에 이른다. 사람도 그러해야 하지 않을까. 높아지기 위해 애쓰기보다, 맑아지기 위해 살아가는 것.

오늘도 잠시 걸음을 늦춘다. 푸른 하늘 한 조각을 오래 바라보고, 숲 냄새를 들이마시며, 들꽃 한 송이 앞에 마음을 놓아본다.

그 순간 세상은 조금 느려지고, 마음은 조금 비워진다. 그리고 문득 알게 된다.

삶은 멀리 있는 깨달음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바람보다 늦게 걷는 순간들 속에 숨어 있었다는 것을.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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