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

사람의 마음 ㅡ청람 김왕식

사람의 마음 2026.05.08
사람의 마음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사람의 마음

거울 앞에 잠시 섰다가 민망해졌다. 누구를 탓하며 살아왔는지 가만히 돌아보니, 정작 가장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은 거울 속에 서 있는 저 사람이었다. 하도 부끄러워 몇 줄 급히 적는다. 혹 이것이 나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존재 전체의 오래된 자화상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사람은 오래전부터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이라 불러왔다. 생각할 줄 알고, 선악을 분별할 줄 알고, 이성으로 세상을 다스릴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그 능력을 유난히 자랑스러워했다. 마치 머리 위에 보이지 않는 왕관 하나를 얹고 사는 존재처럼 말이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다. 그 위대하다는 이성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방향을 바꾼다. 아침에는 모든 것을 이해할 듯 너그러웠다가도, 점심 무렵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속이 뒤집힌다. 오후에는 세상을 다 품을 철학자처럼 굴다가, 저녁이 되면 서운함 하나를 품고 밤새 뒤척인다. 인간의 마음은 꼭 장마철 하늘 같다. 방금 전까지 햇빛이 환하더니 어느새 천둥을 몰고 온다.

가만히 보면 사람의 마음속에는 늘 작은 시장통 하나가 들어서 있다. 기쁨이 들어왔다가 금세 슬픔에게 자리를 내주고, 슬픔은 또 시기와 질투를 데리고 들어온다. 겨우 평온이 앉을 만하면 이번에는 분노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선다. 마음 한구석에서는 감정들이 서로 먼저 목소리를 높이겠다고 아우성친다. 그래서 사람은 조용히 앉아 있어도 안쪽은 늘 소란스럽다.

더 놀라운 것은 사람마다 자기 자신에게는 한없이 너그럽다는 점이다. 자신의 화는 “정당한 분노”이고, 남의 화는 “인격 부족”이다. 자신의 고집은 “신념”이고, 남의 신념은 “답답함”이다. 자기 말실수는 “실수”지만 남의 실수는 “상처”가 된다. 사람은 남의 마음을 재는 데는 저울을 들이대면서도, 자기 마음을 잴 때는 솜이불을 깔아 놓는다. 어떤 이는 새벽마다 마음을 닦겠다고 명상에 앉는다.

눈을 감고 욕심을 비우려 하는데, 정작 머릿속에는 오래전 섭섭했던 일들이 줄줄이 되살아난다. 이미 끝난 말 한마디가 유령처럼 다시 걸어 나오고, 잊었다고 생각한 얼굴들이 차례로 나타난다. 마음을 비우려 했는데 오히려 사람들로 만원이 된다. 인간의 마음은 참 묘하다. 텅 비우려 할수록 더 많은 생각이 몰려든다.

그래서 사람의 감정은 꼭 바람 부는 날 빨랫줄 같다. 칭찬 한마디에 하늘 끝까지 펄럭이다가도, 눈총 하나에 축 처져 버린다. 누군가의 인정에는 금세 봄이 오고, 외면 한 번에는 바로 겨울이 된다. 인간은 하루에도 몇 번씩 천국과 지옥 사이를 왕복하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반면 들판의 암소는 다르다. 먼 산 바라보며 눈을 천천히 꿈벅인다. 누가 욕을 하든, 누가 칭찬을 하든 별로 흔들리지 않는다. 어제 먹은 풀을 오래 되새김질하며 조용히 하루를 견딘다. 보고 있으면 오히려 그 느린 침묵 속에 인간보다 깊은 평정이 깃들어 있는 듯하다.

생각해 보면 인간은 음식보다 감정을 더 급하게 삼킨다. 사랑도 서둘러 삼키고, 분노도 급히 삼키고, 말도 충분히 씹지 않은 채 뱉어버린다. 그러다 관계가 체하고, 마음이 얹히고, 후회가 밤늦게까지 속을 뒤집는다. 그런데도 사람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마치 평생 감정의 과식 속에 사는 존재처럼.

그래서일까. 나이가 들수록 사람보다 소 한 마리가 더 철학적으로 보일 때가 있다. 적어도 소는 남의 성공 때문에 잠 못 이루지 않는다. 자기 그림자를 미워하지도 않는다. 햇빛 좋은 오후에는 그저 햇빛 속에 서 있고, 비가 오면 조용히 비를 맞는다. 어쩌면 삶의 가장 깊은 지혜는 저 느린 눈빛 속에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인간은 늘 자신이 특별한 존재임을 증명하려 애쓴다. 그러나 정작 가장 어려운 일은 거창한 성공이 아니라, 자기 마음 하나 다스리는 일인지도 모른다.

거울 속의 나를 다시 본다. 조금 전까지 남을 판단하던 얼굴이 그대로 서 있다. 그래서 오늘도 몇 줄 적는다. 이 글이 누군가를 꾸짖기 위한 문장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존재가 함께 돌아봐야 할 오래된 마음의 습관에 대한 조용한 경고이기를 바라면서.

혹시 들판의 암소가 먼산 바라보다 말고 이렇게 중얼거릴지도 모르겠다.

“사람들 참 바쁘게 흔들리며 사는구나.”

ㅡ 청람 김왕식

댓글

로그인 없이 바로 남길 수 있습니다. 나중에 본인이 수정·삭제하려면 이 댓글의 비밀번호를 정해 주세요. 서로 예의를 지켜 주세요.

  1. 불러오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