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

아! 문인들

아! 문인들 2026.05.09
아!   문인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아! 문인들

문인들은 대개 맑은 얼굴을 하고 다닌다. 시집 한 권쯤 가슴에 품고, 세상의 슬픔을 대신 껴안은 사람처럼 먼 하늘을 바라본다. 말끝마다 인간과 사랑과 존재를 이야기하고, 술잔 앞에서는 금방이라도 노벨문학상을 사양할 듯 겸손한 미소를 짓는다.

참 이상한 일이다. 문학 이야기만 나오면 그토록 해탈한 얼굴들이 갑자기 미세하게 흔들린다. 눈빛이 달라지고, 귀가 길어진다. 마치 산중 도인이 솔잎만 먹고 산다더니, 홍시 한 알 앞에서 순간 인간 본색을 드러내는 것과 비슷하다.

문인들의 속셈은 대개 먹물 냄새 속에 숨어 있다. “문학은 순수해야지요” 하면서도, 은근히 자기 이름이 기사 제목 가운데 놓이기를 바란다. 문예지 표지에 자기 작품이 실리면 태연한 척하지만, 동네 슈퍼에 가서도 슬쩍 잡지 위치를 좋은 자리에 세워 놓는다. 아무도 안 보는 척하면서 가장 많이 보는 사람이 문인이다.

특히 문단 행사장에 가보면 참 흥미롭다. 서로를 “선생님, 선생님” 부르며 공손히 허리를 굽히는데, 돌아서는 순간 마음속에서는 이미 평론 한 편이 끝나 있다.

“시는 괜찮은데 사람이 좀…” “인품은 좋은데 작품이 약해…” “요즘 너무 자주 나오셔…”

문인들의 미소는 대개 서정적이지만, 그 속에는 놀랍도록 정교한 온도 차가 숨어 있다. 봄 햇살 같다가도, 상을 누가 받았다는 소식이 들리는 순간 초겨울 바람으로 바뀐다.

흥미로운 것은, 그렇게 서로 견제하고 속으로 줄다리기를 하면서도 정작 누군가 아프다는 소식이 들리면 가장 먼저 달려가는 이들도 문인이라는 점이다. 평소에는 작품 수준을 두고 현미경처럼 분석하던 사람들이 병실 앞에서는 말없이 귤 한 봉지를 내려놓고 눈시울을 붉힌다.

하여, 문인들의 속셈은 참 복잡하다. 질투와 연민이 한방에 같이 산다. 경쟁과 우정이 같은 술잔에 담긴다. 누군가의 시를 부러워하면서도, 동시에 그 사람이 무너지지 않기를 바란다. 인간의 가장 연약한 욕망과 가장 따뜻한 정이 한 몸 안에서 뒤엉켜 있다. 생각해 보면 문인들은 모두 조금씩 배우들이다.

시인은 슬픔을 아름답게 말하는 법을 알고, 소설가는 침묵 속에서도 사건을 만들 줄 안다. 평론가는 세상을 해부하면서도 자기 상처는 슬쩍 각주 뒤에 숨긴다. 문인들의 대화는 늘 흥미롭다. 차를 마시면서도 서로의 문장을 읽고 있고, 웃으면서도 속으로는 비유 하나쯤 떠올리고 있다.

어떤 문인은 평생 “나는 상 같은 건 관심 없습니다”라고 말한다. 발표 날만 되면 휴대전화 배터리를 세 번이나 확인한다. 또 어떤 이는 “문학은 외로운 길입니다”라고 말하면서도, 막상 자기 책 서평이 인터넷에 안 올라오면 세상이 자기를 버린 것처럼 서운해한다.

참 묘하다. 세속을 초월한 척 가장 세속적인 마음을 숨기고 사는 사람들. 또 누구보다 순수해서 작은 칭찬 한마디에도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는 사람들. 그것이 문인이다. 문인들의 속셈은 꼭 오래된 잉크병 같다.

겉으로는 검고 조용한데, 흔들어 보면 안에서 온갖 색이 뒤섞여 출렁인다. 명예를 향한 욕망도 있고, 인정받고 싶은 외로움도 있고, 끝내 좋은 문장을 남기고 싶다는 눈물겨운 자존심도 있다.

진짜 문인은 마지막에 자기 욕심을 넘어서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자기 이름보다 한 줄의 문장을 더 사랑하고, 박수보다 사람의 마음 하나 움직이는 일을 더 귀하게 여기는 사람. 세상이 다 잊어도 끝내 문학 곁에 남아 있는 사람 말이다.

문인들의 속셈을 너무 貶毁하지는 말자. 그들도 사람이다. 다만 남들보다 조금 더 상처에 민감하고, 조금 더 인정에 목마르고, 조금 더 외로운 존재일 뿐이다.

그래서일까.

문단의 술자리가 끝난 뒤, 모두 돌아간 빈자리에는 늘 비슷한 냄새가 남는다. 잉크 냄새인지, 사람 냄새인지 모를 그 쓸쓸하고 따뜻한 냄새.

아마 문학이란 것도 결국 인간의 속셈을 끝내 미워하지 못하는 일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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