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

시를 배우더니 사람이 깊어졌다 ㅡ청람 김왕식

시를 배우더니 사람이 깊어졌다 2026.05.09
시를 배우더니 사람이 깊어졌다

문장보다 먼저 변해야 하는 것들

시를 배우더니 사람이 깊어졌다 ― 문장보다 먼저 변해야 하는 것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사람들은 흔히 시를 배우면 문장이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유가 늘고 표현이 섬세해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물론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진짜 시 공부는 문장을 바꾸기 전에 사람을 먼저 바꾸어 놓는다.

나는 몇몇 시인을 만나왔다. 좋은 시를 쓰는 사람보다 더 오래 기억에 남는 사람은, 시를 배우며 인간이 깊어진 사람들이었다.

말이 낮아진 사람. 타인의 슬픔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게 된 사람. 작은 생명 하나도 쉽게 지나치지 못하게 된 사람.

그런 변화를 볼 때마다 든 생각이다. “아, 시는 결국 사람을 다시 인간답게 만드는 공부이구나.”

요즘 세상은 점점 메말라 간다. 속도는 빨라졌는데 마음은 점점 거칠어진다. 사람들은 서로를 이해하기보다 평가하고, 기다리기보다 소비한다. 문장은 넘쳐나는데 진심은 드물다.

하여, 외려 시가 필요하다. 시는 인간의 마음을 느리게 만든다. 바쁘게 지나가던 세상을 잠시 멈춰 세운다.

자문한다. “나는 지금 정말 사람을 보고 있는가.”

시를 오래 쓰는 사람은 대개 눈빛이 달라진다.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그냥 지나쳤던 풍경 앞에서도 발걸음을 멈춘다. 지하철에서 졸고 있는 근로자의 얼굴을 오래 바라보게 되고, 시장 바닥에 쪼그려 앉아 채소를 다듬는 등 굽은 할머니의 거친 손등에서도 삶의 무게를 읽게 된다. 그 순간부터 세상은 더 이상 배경이 아니다. 모든 존재가 하나의 이야기로 다가온다.

시를 배운다는 것은 공감의 근육을 키우는 일이다. 나는 어느 날 병원 복도에서 한 노인을 본 적이 있다. 진료실 문 앞에 앉아 있었는데, 칠 벗겨진 지팡이와 해진 운동화 한 켤레가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밑창은 다 닳아 있었고, 운동화끈은 여러 번 묶인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 운동화를 보는 순간 이상하게 가슴이 먹먹해졌다. 누군가를 위해 평생 걸어온 시간이 거기에 담겨 있는 것 같았다.

그때 시는 특별한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오래 바라보는 마음 안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시 공부는 사람 공부다. 문학 이론을 많이 안다고 반드시 좋은 시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삶을 깊게 살아낸 사람이 더 좋은 시를 쓰는 경우가 많다. 시의 본질은 지식이 아니라 체온이기 때문이다.

나는 가끔 시를 조금 배웠다고 사람을 무시하는 이들을 본다. 어려운 말로 남을 압도하려 하고, 난해함을 깊이인 줄 착각한다. 시는 사람 위에 서는 언어가 아니다.

사람 곁으로 내려가는 언어다. 깊은 시를 쓰는 사람일수록 더 겸손해진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연약하고 외로운지를 알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 유행하는 디카시를 쓰는 사람이라면 더 그렇다. 디카시는 순간의 예술이다. 찰나를 포착하는 감각이 중요하다. 순간만 빠르게 잡는다고 좋은 디카시가 되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순간 속에서 인간을 읽어내는 힘이다.

비 오는 거리에 뒹구는, 살 부러진 낡은 우산 하나를 찍는다고 하자. 누군가는 단순한 풍경으로 끝내지만, 어떤 이는 거기서 돌아가지 못한 하루를 읽는다.

그 차이는 기술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시선에서 나온다. 일반시가 긴 호흡 속에서 인간의 감정을 익혀간다면, 디카시는 한순간 속에서 인간의 본질을 드러낸다. 두 장르 모두 사람을 향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좋은 시를 읽을 때마다 그 뒤에 있는 사람을 떠올리게 된다.

얼마나 아파봤을까. 얼마나 오래 견뎠을까. 얼마나 조용히 세상을 사랑했을까.

그런 것들이 문장 사이에서 느껴지기 때문이다.

시는 사람을 속이지 못한다. 억지 감동은 금방 들키고, 꾸며낸 슬픔은 오래가지 못한다. 마지막에 남는 것은 삶에서 우러난 진실한 온기다.

시를 배우는 사람들이 “문장을 잘 쓰는 것보다 먼저 사람이 깊어지고. 꽃 이름을 외우기보다 꽃이 왜 외롭게 보이는지 느낄 수 있고. 멋진 표현을 만들기보다 누군가의 침묵을 오래 들어줄 수 있는.” 모두 이런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때부터 시는 달라진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때부터 사람이 달라진다.

좋은 시는 달라진 인간의 마음속에서 안온히 피어난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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