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고보다 경청ㅡ청람 김왕식
충고보다 경청 2026.05.26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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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고보다 경청
사람의 병은 대개 눈에 보이는 곳에서 먼저 발견된다. 열이 나고, 기침이 나고, 몸이 아프면 주변 사람들도 쉽게 알아차린다. 마음의 병은 다르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인다. 오히려 더 단정하고 더 조용하다. 그래서 더 오래 숨겨지고, 더 깊이 혼자 견디게 된다.
지인 한 사람이 있다. 칠십 대 초반의 남성이다. 겉으로 보면 건강하다. 걸음도 단단하고, 말투도 차분하다. 누군가는 그를 보고 “정정하시다”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는 오래전부터 정신분열증이라는 깊은 병을 안고 살아왔다.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사이에서, 남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시간들을 지나온 사람이다.
참 안타깝다. 사람들은 흔히 정신의 병을 쉽게 말한다. “마음 단단히 먹으면 된다.” “생각을 긍정적으로 하면 괜찮아진다.” 그런 말들은 때로 병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오는 무심한 위로일 수 있다.
마음의 병은 의지 부족이 아니다. 한 인간의 내면이 오래 흔들리고 무너져 내린 결과이며, 때로는 스스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깊은 어둠이다.
현대인은 유난히 정신이 지친 시대를 살아간다. 몸보다 마음이 먼저 탈진한다. 끊임없이 비교당하고, 경쟁 속에 놓이고, 관계 속에서 상처받는다. 빠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뒤처진 사람처럼 느끼고, 혼자 있는 시간마저 불안해한다. 휴대전화 속 세상은 늘 밝고 화려해 보이지만, 정작 사람들의 내면은 점점 고독해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웃고 있는 얼굴 뒤에서 울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멀쩡히 직장에 다니고, 사람들과 식사를 하고,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마음속에서는 깊은 절망과 싸우는 이들이 적지 않다. 누군가는 밤마다 잠들지 못하고, 누군가는 이유 없이 불안하며, 또 누군가는 세상과 단절된 채 자기 안의 목소리에 갇혀 살아간다.
정신적 고통은 유난히 외롭다. 몸의 병은 함께 걱정해 주는 사람이 많지만, 마음의 병은 이해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나이 든 세대일수록 더 그렇다.
“정신이 약해서 그렇다.” “남자가 왜 그러느냐.” 그런 시선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치료조차 숨긴 채 살아간다. 인간의 정신은 생각보다 연약하다. 누구든 삶의 충격과 상처 앞에서는 흔들릴 수 있다. 오랜 외로움, 실패, 가난, 가족의 상실, 사회적 단절은 사람의 마음을 서서히 무너뜨린다.
한때 누구보다 밝던 사람도 어느 순간 깊은 혼란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정신의 병 앞에서는 함부로 우열을 말할 수 없다. 그것은 특별한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 전체의 슬픔에 가깝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정신적 고통을 겪는 사람들 대부분이 사실은 누구보다 따뜻하고 여린 마음을 가진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세상의 소음과 상처를 너무 깊게 받아들였기에, 마음의 균형이 무너진 사람들도 있다. 강해서 아프지 않은 것이 아니라, 너무 오래 견뎌 왔기에 무너진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판단보다 이해이고, 충고보다 경청인지도 모른다.
병을 향해 손가락질하는 대신, 한 인간의 아픔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다. 누군가의 혼란스러운 말속에도 사실은 살고 싶다는 신호가 숨어 있을 수 있다. 이해받고 싶고, 버려지지 않고 싶고, 세상과 다시 연결되고 싶다는 절박한 마음이 들어 있을 수도 있다. 인간은 누구나 무너지며 살아간다. 다만 어떤 사람은 그 무너짐이 밖으로 보이고, 어떤 사람은 안으로 숨어 있을 뿐이다.
정신의 병을 가진 사람을 바라볼 때 필요한 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연민이다. 그 또한 한때는 꿈꾸고 사랑하고 웃던 평범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삶은 때때로 사람의 정신까지 흔들어 놓는다. 그럼에도 한 사람을 끝까지 인간답게 지켜주는 것은 사랑과 이해다.
곁에 앉아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일,
인간의 존엄을 잃지 않게 바라봐 주는 일. 어쩌면 그것이 병든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서로에게 건넬 수 있는 가장 따뜻한 약 인지도 모른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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