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형 시인의 《낮달》 ㅡ 청람 김왕식
김미형 시인의 《낮달》 2026.05.16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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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달
시인 김미형
지그시 눈을 뜨면 더 잘 보인다 지난밤 어둠 밝힐 때 미처 보듬지 못한 곳 있었는가 살피면서 가고 있다
그 마음 씀씀이 빛나지 않으면서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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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형 시인의 《낮달》읽고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햇빛이 가장 환한 시간에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너무 밝아서 외려 보이지 않던 존재들. 김미형 시인의《낮달》은 바로 그 역설의 자리에서 시작된다. 이 시는 빛나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빛나지 않으면서도 오래 남는 마음의 결을 보여준다. 이 짧은 시는 읽는 순간보다 읽고 난 뒤 더 깊어지는 시다.
“지그시 눈을 뜨면 더 잘 보인다”는 첫 행은 단순한 시선의 묘사가 아니다. 세상을 오래 사랑해 본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삶의 태도다. 사람들은 대개 크게 보려 하고, 빠르게 보려 한다. 김미형 시인은 힘을 빼고 바라본다. ‘지그시’라는 말속에는 타인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으려는 배려와 존재를 다치게 하지 않으려는 온기가 숨어 있다. 그 시선은 마치 유리잔 가장자리를 닦듯 조심스럽다.
이어지는 “지난밤 어둠 밝힐 때 / 미처 보듬지 못한 곳 있었는가”라는 구절은 더욱 깊다. 달은 밤새 세상을 비추고도 스스로를 자책한다. 혹시 놓친 어둠은 없었는지, 덜 따뜻했던 곳은 없었는지 돌아본다. 여기서 달은 단순한 자연물이 아니다. 그것은 한 인간의 양심이며, 조용한 사랑의 얼굴이다. 세상에는 자신의 빛을 자랑하는 사람이 많지만, 김미형 시인의 달은 끝내 자신이 미처 품지 못한 그늘을 먼저 돌아본다. 그 겸허함이 이 시를 더욱 눈부시게 만든다.
무엇보다 압권은 마지막 두 행이다.
“그 마음 씀씀이 빛나지 않으면서 눈부시다”
이 역설은 참으로 아름답다. 대개의 빛은 스스로를 드러내기 위해 존재하지만, 낮달의 빛은 드러나지 않기 위해 존재한다. 하여, 더 깊다. 희미한 흰빛으로 낮하늘 한켠에 머물러 있는 낮달처럼, 김미형 시인의 시 또한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그러나 오래 바라볼수록 사람의 마음 안쪽을 천천히 밝힌다.
낮달은 욕망의 천체가 아니다. 경쟁하지 않는 존재다. 태양 곁에서도 스스로를 잃지 않고, 그렇다고 자신을 과장하지도 않는다. 그저 조용히 떠 있으면서 하늘의 빈 곳을 메운다. 김미형 시인의 삶과도 닮아 있다. 동료 시인의 좋은 시구를 경전처럼 품고, 때로는 필사하며 언어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태도. 그것은 시를 기술이 아니라 수행처럼 대하는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품격이다. 문학에는 드물게 ‘빛을 감추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을 앞세우지 않으면서도 주변을 환하게 만드는 사람들. 김미형 시인은 바로 그런 낮달 같은 시인이다.
세상은 대개 태양 같은 사람을 기억하려 한다.
크게 빛나고, 강하게 드러나는 존재들. 그러나 오래 남는 것은 외려 낮달 같은 사람들이다. 희미하여 더 오래 바라보게 되는 사람. 조용하여 더 깊이 스며드는 사람. 곁에 있을 때보다 지나간 뒤 더욱 환해지는 사람.
김미형 시인은 가만히 독자에게 다가와 귀옛말로 소색인다.
“진짜 아름다움은요 환하게 빛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어둠을 끝까지 살피고도 아무 말 없이 하늘 한 켠에 머물 줄 아는 마음에 있답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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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형 시인께
청람 김왕식
가끔은 한 사람의 마음 앞에서 괜히 옷깃을 여미게 되는 날이 있다
김미형 시인께 그런 마음이 든다
부족한 첫 시집이라며 쑥스럽게 건넨 《숨의 연대기》 한 권
그 책이 그저 책장 어디쯤 꽂혀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날 여러 번 읽으셨다는 말씀 좋은 구절은 필사까지 하셨다는 말씀을 듣고
나는 한동안 말을 잃었다
시를 읽는 사람은 많아도 남의 문장을 손으로 다시 옮겨 적는 사람은 드물다
그건 단순한 독서가 아니다
한 줄 한 줄 상대의 마음을 오래 쓰다듬는 일이다
김미형 시인은 늘 그런 분 같다
사람의 말속에서 빛나는 문장보다 떨리는 마음을 먼저 읽어내는 분
그래서 시인의 시를 읽고 있으면 마치 낮달을 바라보는 기분이 든다
크게 드러나지 않아도 오래 바라보게 되는 빛
조용한데 이상하게 마음을 환하게 만드는 사람
시인은 아마 모르실 것이다
시인께서 필사하신 것은 내 시 몇 편이 아니라 어쩌면 서툴게 살아온 한 사람의 시간들이었다는 것을
그래서 더 미안했고 더 감사했다
문학은 결국 이런 마음 하나로 이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의 문장을 끝까지 귀하게 여겨주는 마음 그 따뜻한 손길 덕분에
오늘도 나는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진다
김미형 시인께 조용히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낮달처럼 살아가는 한 사람을 안다는 것이 참 오래 마음을 밝힌다.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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