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배진성 시인의 「이어도는 이어주는 섬입니다」를 읽으며

배진성 시인의 「이어도는 이어주는 섬입니다」를 읽으며 2026.05.19
배진성 시인의 「이어도는 이어주는 섬입니다」를 읽으며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이어도는 이어주는 섬입니다

*시인 배진성

삶과 죽음을 이어주는 섬입니다 이어도는 제주도 사람들이, 죽은 사람들이 가는 곳이라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래도록 이어도공화국에서 이어도로 살아보고 드디어 알았습니다 이어도는 이어주는 섬입니다 삶과 죽음을 이어주는 섬입니다 삶과 죽음을 이어주는 실입니다 삶과 죽음을 이어주는 끈입니다 이어도는 산 사람들과 죽은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아름다운 나라입니다 제가 오래도록 죽은 사람들과 함께 살아보고 드디어 알았습니다 이어도는 이어주는 섬입니다 삶과 죽음을 이어주는 섬입니다 삶과 죽음을 이어주는 실입니다 삶과 죽음을 이어주는 끈입니다 죽은 사람들과 오래 살아보면 살아있는 사람들이 잘 보입니다 죽은 사람들과 오래 살아보면 산 사람들의 길이 잘 보입니다 아름다운 나라 이어도공화국에서 죽은 사람들과 오래도록 살아보니 어둠의 세상이 환하게 잘 보입니다 이어도공화국에서 부처님과 살았습니다 공자님과 살았습니다 소크라테스 님과 예수님과 마호메트 님과 함께 살았습니다 제주도에서 온 사람들, 고향에서 온 사람들 북간도에서 온 사람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죽은 사람들, 죽어가는 사람들과 함께 오래도록 살다가 드디어 순례를 떠납니다 윤동주 시인과 함께 마지막 순례를 합니다 바람을 따라 순례를 시작합니다 파도를 따라 마지막 순례를 시작합니다 바다를 건너갑니다 순례길에 가장 먼저, 또 다른 이어도를 만납니다 이어도해양과학기지가 있습니다 붕새 한 마리 날개를 접고 잠시 쉬고 있습니다 연꽃 한 송이 피어 별빛들과 함께 반짝입니다 이어도를 노래하는 별빛들을 헤아려봅니다 반짝이는 별빛들을 하나씩 다시 불러봅니다 배워야 할 아름다운 시인의 길을 헤아려봅니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별빛으로 반짝이고 있습니다 나는 그 별빛들의 이름을 하나씩 불러봅니다

김왕식 허형만 황성구 박철언 김상희 김선영 안혜초 이혜선 이희국 장한라 김남권 강병철 김필영 양금희 이근배 유안진 고충석 주광일 김유조 김호운 강정화 김민정 전 민 이상기 성재경 남병근 김상경 김지수 노재필 김파란 강수니 강정애 강정화 고길선 공광규 공혜련 곽인숙 구명숙 권갑하 권영희 권인찬 권은중 권정남 권채영 권천학 김건일 김길애 김나비 김나연 김남오 김도연 김미덕 김미형 김봄서 김혜천 동시영 마경덕 문정영 박용섭 배선옥 이 달 이도연 이석구 이승하 이영하 임솔내 유윤숙…, 아, 세상에는 별빛이 참 많습니다

그리하여 이어도는 이제 어디라도 있습니다

□ 배진성 ㅡ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가로서

제주도에서 이어도공화국을 건설하고

시를 짓고 있다.

국민 한 명으로 시작한 나라, 끝내 별자리가 되다 — 배진성 시인의 「이어도는 이어주는 섬입니다」를 읽으며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세상에는 참 많은 나라가 있다. 강대국도 있고 섬나라들도 있고, 국토보다 자존심이 더 넓은 나라도 있다. 그런데 배진성 시인의 ‘이어도공화국’은 좀 특이하다. 처음에는 국민이 딱 한 명이었다. 대통령도 배진성, 국민도 배진성, 국무총리도 아마 배진성이었을 것이다. 혼자 국경일 행사도 하고, 혼자 애국가도 부르고, 혼자 만세도 불렀을지 모른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 나라가 하나도 쓸쓸해 보이지 않는다. 외려 읽다 보면 세상에서 가장 북적거리는 나라 같다.

배진성 시인의 「이어도는 이어주는 섬입니다」는 얼핏 보면 유쾌한 상상력으로 만든 시처럼 보인다. “삶과 죽음을 이어주는 섬”이라는 표현부터 이미 현실과 전설 사이를 능청스럽게 오간다. 그런데 조금만 더 읽어 내려가면 독자는 슬며시 깨닫게 된다. 아, 이 시는 웃고 있지만 사실은 아주 깊은 슬픔과 사랑 위에 세워져 있구나.

특히 “죽은 사람들과 오래 살아보면 살아있는 사람들이 잘 보입니다”라는 대목은 참 묘하다. 보통 사람들은 산 사람들과 살다가 죽은 사람을 잊어버린다. 그런데 배진성 시인은 반대로 죽은 사람들과 오래 살아보니 외려 살아 있는 사람들의 길이 더 잘 보인다고 말한다. 이쯤 되면 이어도공화국은 단순한 나라가 아니다. 저승과 이승 사이에 몰래 세워놓은 문학청 같은 곳이다.

더 재미있는 것은 이 공화국의 주민 구성이다. 부처님이 계시고, 공자님이 계시고, 예수님과 소크라테스와 마호메트까지 함께 산다. 이쯤 되면 종교 갈등은커녕 세계철학 정상회담이 매일 열리는 셈이다. 아마 저녁이면 부처님은 말없이 웃고 계시고, 소크라테스는 계속 질문하고, 공자님은 예를 이야기하고, 예수님은 빵을 떼고 계실 것이다. 그런데 그 사이에서 배진성 시인은 슬그머니 시를 쓰고 있다. 참 평화로운 나라다.

이 시가 단순히 웃기기만 한 것은 아니다. 배진성 시인은 ‘이어준다’는 말속에 인간 존재의 가장 오래된 비밀을 숨겨놓았다. 삶과 죽음은 끊어진 것이 아니라 이어져 있다는 것. 사람은 떠나도 이름은 남고, 육신은 사라져도 그리움은 계속 살아 움직인다는 것. 그래서 이어도는 섬이면서 동시에 실이고 끈이다. 이것은 참 따뜻한 철학이다.

시 후반부에 이르면 이어도공화국은 갑자기 우주로 확장된다. 시인은 수많은 문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낸다. 처음 읽을 때는 웃음이 난다. “아니, 이쯤 되면 이어도공화국 주민등록 인구조사 아닌가?” 싶다. 그런데 계속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이상하게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시인은 사람들을 별빛으로 바꾸고 있었던 것이다.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문학에서 가장 오래된 사랑의 방식이다. 배진성 시인은 지금 살아 있는 사람들과 이미 떠난 사람들을 모두 별자리로 엮어내고 있다. 그러니 이어도공화국은 실제 나라가 아니라 ‘기억의 은하계’에 가깝다. 별빛 하나하나가 사람이고, 그 이름들이 모여 하나의 밤하늘을 만든다.

무엇보다 이 시가 아름다운 이유는 죽음을 두려움으로 다루지 않는다는 점이다. 보통 죽음은 끝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배진성 시인은 죽음을 ‘이어지는 일’로 바꾸어놓는다. 삶과 죽음을 이어주는 섬, 이어주는 실, 이어주는 끈. 얼마나 다정한 표현인가. 죽은 사람들을 잃어버린 존재가 아니라, 여전히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바라보는 시선 속에는 깊은 인간애가 스며 있다. 생각해 보면 이어도공화국은 참 이상한 나라다.

세금도 없고, 전쟁도 없고, 국경도 없다. 대신 시가 있고, 별빛이 있고, 오래 부를 이름들이 있다. 게다가 입국 심사도 없다. 외로운 사람은 누구나 들어갈 수 있고, 그리운 사람은 자동으로 시민권이 나온다.

처음에는 배진성 혼자 시작한 나라였지만, 이제는 아닌 것 같다. 이 시를 읽은 순간 독자도 이미 그 나라 국민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지막 문장은 참 오래 남는다.

“그리하여 이어도는 이제 어디라도 있습니다.”

그렇다. 누군가를 끝내 잊지 않는 마음이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곧 이어도공화국이다.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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