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곧 기쁨임을 ㅡ청람 김왕식
슬픔이 곧 기쁨임을 2026.05.26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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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곧 기쁨임을
청람 김왕식
사람의 일생이란 울음 몇 사발과 웃음 몇 줌을 이고 지고 저문 들길을 건너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어릴 적에는 몰랐다 봄날 마당 끝 살구꽃 떨어지는 것이 그리 슬픈 일인 줄을
어머니는 댓돌 위에 앉아 콩을 고르다가도 문득 먼 산 쪽을 바라보곤 했다 그 눈빛 속에는 이미 다 살아버린 세월 몇 자락이 저녁연기처럼 묻어 있었다
어린 나는 몰랐다 사람이란 웃을 때보다 혼자 먼 데를 바라볼 때 더 깊어진다는 것을
동구 밖 느티나무 아래로 소죽을 쑤는 연기 피어오르고 겨울이면 할머니의 기침 소리가 샛별처럼 마당을 건너오곤 했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아랫목 이불을 더 끌어당기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람 사는 게 다 그런 기다림이지.”
무엇을 기다리는지 몰랐다 가난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인지 병든 세월이 물러가기를 기다리는 것인지 아니면 사람이라는 외로운 짐승이 끝내 사람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인지
세월은 장독대 위에 쌓이는 눈처럼 말없이 사람 위에 내려앉았다
친구 하나는 병으로 먼저 떠났고 사랑 하나는 끝내 제 이름을 갖지 못한 채 강물처럼 흘러가 버렸다
젊은 날에는 슬픔이 세상을 무너뜨리는 줄 알았다 그래서 억지로 웃었다.
비 오는 날에도 휘파람을 불고 찢어진 주머니 속에서도 별 하나쯤 품은 척하며 걸었다.
그러나 밤은 속일 수 없었다
불 꺼진 방 안에서 혼자 식어가는 밥상 앞에 앉으면 숟가락 하나도 사람의 얼굴을 닮아 보였다 떠난 사람의 체온이 아직 컵 가장자리에 남아 있는 듯 마음이 자꾸만 뒤를 돌아보았다
그제야 조금씩 알게 되었다
슬픔은 인간을 벌주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은 사람으로 익혀가는 시간이라는 것을
메주가 긴 겨울을 지나야 장맛이 들듯 사람 또한 눈물 몇 번 지나야 비로소 사람 냄새가 난다는 것을
산골 절집 풍경소리도 바람이 불어야 울리고
강물 또한 바위에 몇 번 부딪혀야 맑아지는 법이었다
그러니 어찌 슬픔만 탓하랴
돌아보면 가장 많이 울던 날들이 가장 오래 살아남았다
할머니 무덤가에서 쑥 냄새 맡으며 울던 봄날도 어머니 묻힌 북망산 바라보던 겨울밤도 지금은 모두 가슴속 등불처럼 남아 있다
신기한 일이다
그토록 아프던 기억들이 세월이 흐르자 도리어 사람을 따뜻하게 만든다
상처는 흉터로 남지만 흉터는 또 다른 살이 되어 인간을 단단하게 지탱한다
그래서 늙어갈수록 사람은 슬픔을 미워하지 않게 된다
기쁨만으로 살아온 사람보다 눈물 속을 건너온 사람이 국밥 한 그릇에도 더 깊이 감사하고
저녁 하늘 기러기 떼 지나가는 소리에도 괜스레 마음이 젖는다
인간은 슬픔 덕분에 세상을 사랑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꽃이 피는 것은 아름답지만 꽃이 지는 것은 더 아름답다
지는 줄 알기에 꽃은 마지막까지 향기를 다 쏟아내고
사람 또한 끝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오늘 한 사람 더 사랑하려 애쓴다
하여, 슬픔은 기쁨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 아니다
슬픔은 기쁨이 오래 머물 수 있도록 사람의 마음을 깊게 파주는 삽 같은 것이다
깊이 파인 마음에만 오래 맑은 물이 고이듯
많이 울어본 사람 가슴에만 끝내 마르지 않는 따뜻한 기쁨 하나 늦도록 살아남는 것이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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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은 기쁨의 반대말이 아니다
청람 김왕식
사람은 대개 기쁨만 오래 붙들고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삶은 이상하게도 가장 깊은 슬픔 속에서 가장 오래가는 기쁨을 빚어낸다.
눈물이 없는 사람의 웃음은 얕다. 상처를 지나지 않은 위로는 오래 머물지 못한다. 한 번도 외로워본 적 없는 사람의 친절은 어디엔가 마른 나뭇가지 같다. 오래 울어본 사람은 안다. 인간의 마음은 슬픔이라는 긴 강을 건너온 뒤에야 비로소 깊어진다는 것을.
젊은 날에는 슬픔을 실패라고 생각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일도, 믿었던 사람에게 등을 돌려지는 일도, 가난 때문에 자존심이 무너지는 일도 모두 불행이라 여겼다. 하여, 어떻게든 슬픔을 피해가려 했다. 웃는 척했고, 괜찮은 척했고, 강한 사람인 척했다.
세월은 이상한 스승이었다. 도망치려 할수록 삶은 더 큰 슬픔을 데려왔다. 마치 인간을 일부러 울게 하려는 것처럼.
어머니를 떠나보낸 날도 그랬다. 빈방에는 아직 체온이 남아 있었고, 부엌에는 오래 사용한 국그릇 하나가 마르지 않은 물기처럼 남아 있었다. 사람 하나 떠났을 뿐인데 집 전체가 갑자기 겨울이 되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인간은 살아 있는 동안보다 떠난 뒤 더 선명해진다는 것을.
살아 있을 때는 몰랐다. 잔소리 같던 말들이 사실은 사랑이었다는 것을. 매일 차려주던 밥상이 한 사람의 생애 전체였다는 것을. 늦은 밤까지 불을 켜놓고 기다리던 마음이 얼마나 외로운 기도였는지를.
슬픔은 그렇게 뒤늦게 사랑의 크기를 가르쳐준다.
그래서 눈물은 불행이 아니다. 눈물은 오히려 인간이 아직 따뜻하다는 증거다. 누군가를 잃고도 아무렇지 않다면, 그것은 강한 것이 아니라 이미 마음의 일부가 죽어버린 것이다.
겨울이 있기에 봄이 눈부시듯, 슬픔은 기쁨을 깊게 만든다.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 있던 사람이 처음 햇빛을 만질 때, 그는 건강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안다. 굶주려본 사람은 따뜻한 밥 한 그릇 앞에서 눈시울이 붉어진다. 외로움 속을 오래 걸어본 사람은 누군가의 짧은 안부에도 오래 마음이 흔들린다.
인간은 슬픔 덕분에 기쁨을 배우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꽃도 그렇다. 벚꽃은 가장 아름다울 때 가장 빨리 진다. 단풍 또한 오래 타오르지 못한다. 사람이 아름다운 이유도 어쩌면 언젠가 사라질 존재이기 때문인지 모른다.
영원히 죽지 않는다면 누가 오늘을 사랑하겠는가.
끝이 있기에 오늘의 햇살이 눈부시고, 이별이 있기에 손을 잡는 일이 애틋하다. 늙어감이 있기에 젊은 날의 바람조차 그리워지는 것이다.
그래서 인생은 참 이상하다. 슬픔은 인간을 무너뜨리는 것 같지만, 실은 더 깊은 사람으로 데려간다.
비에 젖은 나무가 더 깊이 뿌리 내리듯 인간 또한 눈물 속에서 조금씩 단단해진다.
한때는 행복이란 큰 성공이나 화려한 박수 속에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알게 된다.
행복은 대단한 데 있지 않았다.
아픈 사람 없이 저녁밥 먹는 일. 전화할 사람이 아직 남아 있는 일. 돌아갈 불 켜진 집이 있다는 일. 내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 하나 있다는 일.
그 평범한 것들이 사실은 기적이었다.
슬픔은 그것을 늦게 가르쳐준다. 해서, 슬픔은 잔인하지만 동시에 고맙다.
만약 인간에게 슬픔이 없었다면 우리는 서로를 이렇게까지 사랑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픔이 없었다면 타인의 눈물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고, 이별이 없었다면 오늘의 포옹도 이토록 간절하지 않았을 것이다.
슬픔은 기쁨의 반대말이 아니다. 슬픔은 더 깊은 기쁨으로 가는 어두운 입구다.
밤이 깊을수록 새벽이 가까운 것처럼 인간은 가장 많이 울던 자리에서 가장 환하게 웃게 된다.
살아보니 그랬다.
눈물은 삶의 실패가 아니라 인간이 끝내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가장 뜨거운 증거였다.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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