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

별빛은 가난한 사람의 이마 위에 먼저 내려앉는다

별빛은 가난한 사람의 이마 위에 먼저 내려앉는다 2026.05.26
별빛은 가난한 사람의 이마 위에 먼저 내려앉는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별빛은 가난한 사람의 이마 위에 먼저 내려앉는다 ― 병상에서 별을 바라보는 사내, 내 친구 덕구를 생각하며

청람 김왕식

사람은 살아가며 수많은 사람을 만난다. 그러나 세월이 다 지나고 나면 이상하게도 마음속 끝내 지워지지 않는 사람은 대개 화려한 사람이 아니다. 외려 가난했고, 서툴렀고, 세상 앞에서 늘 조금 고개 숙이고 살던 사람들이다.

내 친구 덕구도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한평생 역전 주변을 떠나지 못했다. 새벽 첫차가 들어오기 전부터 일어나 막노동판으로 나갔고, 해 질 무렵이면 먼지와 땀 냄새를 몸에 묻힌 채 허름한 선술집 의자에 걸터앉곤 했다. 삶은 그에게 한 번도 친절하지 않았다.

소학교 졸업장이 전부였던 그는 일찍 세상으로 내몰렸다. 배움보다 생존이 먼저였고, 꿈보다 끼니가 급했다. 겨울이면 찬 시멘트 바닥 위에서 손등이 갈라졌고, 여름이면 뜨거운 철근 냄새 속에서 하루를 버텨냈다. 그의 어깨는 늘 무언가를 지고 있었다. 벽돌이든, 자루든, 혹은 가족의 생계라는 보이지 않는 무게든.

그런데도 덕구는 이상한 사람이었다.

막노동이 끝난 뒤 남들은 화투판으로 몰려갈 때, 그는 늘 낡은 수첩 하나를 꺼내 들었다. 막걸리 잔 옆에 놓인 그 수첩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시 같은 것들이 적혀 있었다.

“오늘 저녁 역전 바람은 떠난 사람 냄새가 났다.”

“겨울 플랫폼 끝에 혼자 남은 국밥집 불빛은 꼭 어머니 눈빛 같았다.”

그의 시는 서툴렀다. 문장은 투박했고 맞춤법도 자주 틀렸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글에는 사람을 울리는 체온이 있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시는 많이 배운 사람이 쓰는 것이 아니라, 오래 견딘 사람이 쓰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덕구는 늘 말했다.

“청람 선생, 사람은 너무 아프면 말이 짧아져… 그래서 시가 생기는가 봐…”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먹먹했다. 세상은 그의 이름을 몰랐다. 문단도 그를 불러주지 않았다. 모두는 알고 있다. 그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삶을 통과한 시인이었다는 것을.

지금 덕구는 병상에 누워 있다.

의식을 잃은 날이 많아졌고, 몸은 뼈만 남았다. 등에는 깊은 욕창이 파였고, 팔뚝은 겨울 마른 나뭇가지처럼 앙상하다. 숨소리는 바람 새는 풍금처럼 가늘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인간의 육신이란 얼마나 연약한 것인가 새삼 절망하게 된다. 한때 그렇게 무거운 짐을 번쩍 들어 올리던 사람이 이제는 물 한 모금 넘기는 일조차 힘겨워한다.

더 가슴 아픈 것은 그의 곁을 지키는 아내 복술이다.

젊은 날 복술이는 참 고운 여자였다. 동네 남자들이 힐끔힐끔 돌아볼 만큼 눈웃음이 맑았고, 웃을 때마다 분꽃처럼 얼굴이 환하게 피어났다. 십수 년 병수발은 그녀를 너무 빨리 늙게 만들었다.

밤마다 남편의 몸을 뒤집고, 썩어가는 상처를 닦아내고, 새벽마다 기저귀를 갈며 살아온 세월. 그 시간은 한 여자의 청춘을 천천히 태워버렸다.

어느 날 병실에서 복술이가 덕구의 손톱을 깎아주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녀는 마치 어린아이를 다루듯 아주 조심스럽게 그의 손을 어루만졌다. 그 장면을 보는데 문득 눈물이 났다.

사랑이란 젊은 날 꽃다발을 안겨주는 일이 아니라, 끝내 한 사람의 가장 처참한 시간을 함께 견뎌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덕구는 가끔 의식을 되찾으면 창밖 하늘을 오래 바라본다. 병실 창문 너머 보이는 조각하늘. 그것이 지금 그의 세상 전부다.

며칠 전이었다. 늦은 오후 붉은 햇살이 병실 바닥에 번지고 있을 때, 덕구가 아주 희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별이 되고 싶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무너졌다.

별이 되고 싶다는 말은 어쩌면 죽고 싶다는 말이 아니었다. 더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는 마지막 미안함이었고, 더는 아프지 않은 곳으로 가고 싶다는 오래된 기도였는지도 모른다.

병실을 나오는데 저녁 하늘에 별 하나가 먼저 떠 있었다. 이상하게 그날은 그 별빛이 몹시 아팠다.

세상은 유명한 사람의 이름은 오래 기억한다. 그러나 역전에서 평생 막노동하며 틈틈이 시를 적던 무명 시인 덕구의 생애 같은 것은 너무 쉽게 잊어버린다.

믿는다.

하늘은 결코 그런 사람들을 잊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성실하게 하루를 견디며 살았던 사람. 가난 속에서도 끝내 시를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하늘의 별을 바라보던 사람.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덕구의 시 몇 줄은 별빛이 되어 우리보다 먼저 저 하늘 어딘가에서 안온히 빛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ㅡ청람 김왕식

병상에서 별을 바라보는 사내

청람 김왕식

사람 하나 별이 되어간다는 것은 조용히 하늘로 사라지는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 생애가 마지막 숨결까지 세상의 슬픔을 껴안고 천천히 빛으로 마르는 일이었다

덕구는 지금 병상에 누워 있다

한때 역전의 새벽을 삽자루 같은 손으로 밀어 올리던 사내 기차 들어오는 소리보다 먼저 일어나 새벽안갯속에서 짐짝 같은 하루를 어깨에 메고 살던 사람

소학교 졸업장이 전부였으나 세상에서 배운 가난의 문법은 누구보다 깊었다

겨울이면 갈라진 손등에 소주보다 싼 막걸리를 붓고 여름이면 땀 냄새 밴 러닝셔츠 하나로 역전의 먼지와 싸우던 사내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거친 손으로 밤마다 시를 적었다

막노동 끝난 뒤 허름한 선술집 구석에서 막걸리 잔 기울이며 담배 연기 사이로 낡은 수첩 하나 펼쳐 들곤 했다

거기엔 늘 세상에 말하지 못한 외로움이 적혀 있었다

기차 떠난 플랫폼의 적막이나 겨울 새벽 국밥집 불빛 같은 것들

누구 하나 그의 시를 읽어주는 사람 없었고 문단은 그의 이름을 몰랐다

덕구는 읊조렸다

“시는… 배운 사람이 쓰는 게 아니더라. 못 견딘 사람이 쓰는 거더라…”

그 말을 들은 날 오래 침묵했다

생각해 보니 그의 손은 늘 피투성이였다 벽돌을 나르다 찢기고 철근에 긁히고 삶에게 얻어맞으며 살아온 손

그런데도 그 손끝에서는 이상하게 들꽃 같은 문장들이 피어났다

세상은 그를 노동자라 불렀지만 사람들은 알고 있다

그는 가난이라는 검은 광산 속에서도 끝내 언어의 작은 등불 하나 지켜낸 외로운 시인이었다는 것을

지금 덕구는 의식을 잃은 채 누워 있다

피골이 상접한 몸은 이미 오래전부터 세상을 반쯤 떠난 사람 같다

등에는 깊은 욕창이 파였고 마른 팔뚝은 겨울 가지처럼 앙상하다

숨소리는 꺼져가는 풍등처럼 가늘다

덕구 곁에는 아내 복술이가 앉아 있다

곱디고운 얼굴로 동네 남정네들의 시선을 받던 여인. 젊은 날에는 분꽃처럼 환하게 웃던 사람이었다

십수 년 병수발 끝에 그녀의 머리는 어느새 첫눈처럼 하얗게 세어버렸다

밤마다 남편의 몸을 뒤집고 썩어가는 살을 닦아내며 복술이는 그렇게 늙어갔다

아니, 늙었다기보다 사랑 때문에 조금씩 닳아갔다

사람들은 모른다

한 사람을 끝까지 사랑한다는 것이 얼마나 처절한 노동인지

눈물도 오래 흘리면 강이 아니라 소금이 된다는 것을

오늘 병실 창문에는 늦은 오후 햇빛이 걸려 있었다

덕구는 문득 눈을 떴다

그리고 아주 힘겹게 아내 복술이 손을 잡고 창밖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은 이상하리만큼 맑았다

마치 오래 울던 아이가 드디어 집을 찾은 듯한 얼굴이었다

덕구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별이 되고 싶다…”

복술이는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병상에서 보이는 하늘. 그것이 지금 덕구의 천국이었다

푸른 하늘 끝 어딘가에 먼저 떠난 사람들 있을 것이고 그리운 젊은 날도 있을 것이고 막걸리 잔 부딪치며 웃던 역전의 저녁들도 떠다니고 있을 것이다

아마 덕구는 그곳으로 가고 싶은 것인지 모른다

더는 아프지 않은 곳 더는 가족에게 미안하지 않은 곳 더는 몸이 짐이 되지 않는 곳

별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빛나는 일이 아니라 비로소 아프지 않게 되는 일인지도 모른다

병실을 나서는데 창밖 저녁 하늘에 별 하나 먼저 떠 있었다

세상은 유명한 시인의 이름은 오래 기억해도 역전 막노동판에서 막걸리 냄새 속에 시를 적던 무명 시인 하나의 생애는 쉽게 잊어버린다

하늘은 다 기억할 것이다

그가 흘린 땀과 아내의 눈물과 끝내 버리지 못한 시 몇 줄까지도.

하여, 오늘 밤은 별빛이 유난히 아프다

어쩌면 하늘 어디쯤에서 친구의 시 한 편이 먼저 빛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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