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

오솔길이 가르쳐준 삶의 방식 ㅡ청람 김왕식

오솔길이 가르쳐준 삶의 방식 2026.05.31
오솔길이 가르쳐준 삶의 방식

ㅡ청람 김왕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나무는 서둘러 숲이 되지 않는다 ― 오솔길이 가르쳐준 삶의 방식

청람 김왕식

아침 안개가

아직 산허리를 떠나지 못한

시간이었다.

밤새 젖은 풀잎들은 작은 물방울들을 품고 있었고, 이름 모를 새들은 저마다 하루의 첫 문장을 숲에 적어 넣고 있었다. 사람들은 대개 이런 시간을 놓친다. 세상은 늘 바쁘게 움직이고, 사람들은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서둘러 달려가기 때문이다.

오솔길은 달리지 않는다. 오솔길은 언제나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산 아래 마을에서 시작된 길 하나가 숲 속으로 들어가고, 숲은 다시 능선을 지나 하늘 가까운 곳으로 이어진다. 그 길은 수십 년 전에도 있었고, 수십 년 뒤에도 있을 것이다.

길은 누구를 재촉하지 않는다. 늦게 온 사람도 품어주고, 천천히 걷는 사람도 기다려준다. 하여, 오솔길을 걷다 보면 세상에서 듣지 못한 목소리를 듣게 된다.

그것은 나무의 목소리도 아니고 바람의 목소리도 아니다. 어쩌면 오래전부터 자기 안에 있었지만 너무 시끄럽게 살아서 듣지 못했던 마음의 목소리인지도 모른다.

숲은 이상한 곳이다. 도시에서는 중요하게 여겼던 것들이 숲에 들어서면 갑자기 작아진다. 남보다 앞서야 한다는 조급함도, 누군가에게 인정받아야 한다는 갈증도, 더 많이 가져야 한다는 욕심도, 숲에서는 낙엽 한 장보다 가벼워진다.

대신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선명해진다. 바위틈에서 피어난 작은 꽃 하나, 개울을 건너는 물소리 하나, 늙은 나무껍질에 새겨진 세월의 주름 하나. 그 앞에 서면 사람은 비로소 알게 된다. 세상에는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일들이 많다는 것을.

숲 속의 나무들은 경쟁하지 않는다. 저 나무보다 더 크게 자라야 한다고 초조해하지 않고, 옆 나무보다 더 많은 꽃을 피워야 한다고 불안해하지 않는다. 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 몫의 햇살을 받으며 살아간다.

봄이 오면 새잎을 내고, 여름이 오면 그늘을 만들고, 가을이 오면 열매를 내어주고, 겨울이 오면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

나무는 가르친다. 생각은 간단하게 하라고. 사람은 생각이 너무 많아 길을 잃는다. 건너지 않은 다리를 걱정하고, 오르지 않은 산을 두려워하며, 아직 오지 않은 계절 때문에 오늘을 놓친다.

강물은 바다까지의 거리를 계산하지 않는다. 그저 흐른다. 새는 하늘의 끝을 알지 못한다. 그저 난다. 꽃은 자신이 언제 질지를 걱정하지 않는다. 그저 핀다.

생명은 원래 단순하다. 복잡한 것은 삶이 아니라 사람의 생각이다. 계곡 아래 바위틈에 뿌리를 내린 작은 풀 한 포기가 있었다. 누가 심은 것도 아니었다. 흙도 거의 없었다. 여름 장마가 오면 물살에 휩쓸릴 듯했고, 겨울 눈보라가 몰아치면 얼어 죽을 듯했다. 그런데도 해마다 그 자리에 다시 올라왔다.

어느 해는 잎이 무성했고, 어느 해는 겨우 목숨만 이어갔다. 그러나 단 한 번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며 알게 된다. 세상은 성공한 결과를 기억하지만, 자연은 포기하지 않은 과정을 기억한다는 것을.

하여 시도는 여러 번 해야 한다. 한 번의 실패는 끝이 아니다. 두 번의 실패도 끝이 아니다. 수없이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사람에게 길은 결국 모습을 드러낸다. 나무 한 그루가 숲이 되는 데 수십 년이 걸리듯, 사람 또한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는다.

걱정은 짧게 해야 한다. 사람의 걱정 대부분은 아직 오지 않은 시간에서 온다. 내일 비가 오면 어떡하지. 다음 달은 괜찮을까. 혹시 실패하면 어쩌지. 많은 걱정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다. 멀리 보이는 먹구름이 끝내 비를 내리지 못하고 흩어지듯, 마음속 두려움도 대부분 바람처럼 지나간다. 걱정은 준비를 위한 것이어야지, 삶을 대신 살아서는 안 된다.

후회도 적게 해야 한다. 숲에는 후회가 없다. 봄꽃은 떨어졌다고 울지 않고, 가을잎은 붉게 물들었다고 미련을 두지 않는다. 때가 되면 놓아준다. 강물도 지나간 물결을 붙잡지 않는다. 그런데 사람은 오래전 상처 하나를 평생 품고 산다. 이미 지나간 시간, 이미 끝난 계절을 붙들고 살아간다. 그러는 동안 현재의 꽃은 보지 못한다.

자연은 귀띔한다.

놓아주라고. 흘려보내라고. 새로운 계절이 들어올 자리를 만들라고.

희망은 가까이에 두어야 한다. 희망은 산 너머에 있는 것이 아니다. 창가에 머무는 햇살 한 조각, 따뜻한 밥 한 끼, 무사히 하루를 마친 저녁, 누군가의 안부를 묻는 전화 한 통. 삶을 버티게 하는 힘은 거대한 기적보다 작은 온기에서 시작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다. 숲은 혼자 살지 않는다. 큰 나무는 그늘을 나누고, 작은 풀은 빈 땅을 덮으며, 꽃은 향기를 아낌없이 내어준다. 숲은 울창해진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자기만을 위해 사는 삶은 넓어 보여도 외롭다. 그러나 누군가를 품는 삶은 작아 보여도 깊다.

말보다는 침묵과 미소를 선택하는 것도 그래서 중요하다. 세상에는 말보다 큰 위로가 있다. 아무 말 없이 곁에 앉아주는 일. 끝까지 들어주는 일. 따뜻하게 웃어주는 일. 그런 침묵 하나가 긴 설교보다 깊은 위로가 되기도 한다.

오솔길은 오늘도 숲 사이를 지나간다. 수많은 사람이 그 길을 걷는다. 누군가는 건강을 위해 걷고, 누군가는 풍경을 위해 걷고, 누군가는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걷는다.

발밑에는 낙엽이 부서지고, 머리 위에는 햇살이 흔들린다. 그 사이를 지나며 사람은 조금씩 가벼워진다.

생각은 간단하게. 시도는 여러 번. 걱정은 짧게. 후회는 적게. 희망은 가까이. 나보다 남을 먼저. 말보다는 침묵과 미소를.

그렇게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의 생애는 거창하지 않을지 모른다. 숲이 오랜 세월 끝에 아름다운 풍경이 되듯, 그 삶 또한 돌아보면 한 그루 나무가 숲이 되어 있는 것처럼, 안온하고 깊고 아름다운 한 편의 서사가 되어 있을 것이다.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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