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스승을 기다리며 ㅡ청람 김왕식
좋은 스승을 기다리며 2026.06.01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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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스승을 기다리며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시를 배우다 보면
아주 가끔
고개가 갸웃해질 때가 있다.
“대상을 오래 바라보라.” “사물을 가슴으로 안아보라.” “꽃 한 송이도 함부로 지나치지 말라.” “설명하지 말고 보여주라.” “독자와 대화하듯 자연스럽게 쓰라.”
그 말씀은 참 좋다. 마치 오래된 우물에서 맑은 물을 길어 올린 듯하다. 정작 시 선생의 시를 읽으면 강의 시간에 들었던 감동이 그대로 이어지지 않을 때가 있다. 순간 마음 한구석에서 작은 질문 하나가 고개를 든다. 가르치는 것과 실제로 하는 것은 다른 일일까.
생각해 보면
세상은 그런 예로 가득하다. 대한민국 축구 역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있다.
Guus Hiddink. 그는 2002년 대한민국 축구를 월드컵 4강이라는 기적 같은 무대로 이끌었다. 당시 많은 국민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와 붉은 물결을 이루었고, 온 나라가 하나의 심장처럼 뛰었다. 냉정하게 말하면 히딩크는 선수 시절 세계 축구사를 뒤흔든 슈퍼스타는 아니었다. Pelé처럼도, Diego Maradona처럼도, Lionel Messi처럼도 유명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선수들의 가능성을 발견했고, 그 가능성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알았다. 직접 골을 넣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골이 터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사람이었다. 지도력은 또 다른 재능이었던 셈이다.
시의 세계도 비슷한 경우가 있다. 시를 누구보다 잘 설명하는 사람이 있고, 문학사를 누구보다 깊이 해설하는 사람이 있다. 정작 자신의 작품은 설명만큼 울림이 크지 않을 때도 있다. 반면, 놀라운 시를 쓰는 시인 가운데는 정작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데 서툰 이도 있다. 창작의 재능과 교육의 재능은 같은 듯 보이지만 다른 강에서 흘러온 물일 수 있다.
하여, 우리는 종종 혼란스러워진다. 좋은 스승은 어떤 사람일까. 시를 잘 가르치는 사람일까. 아니면 시를 잘 쓰는 사람일까. 아마 제일 솔직한 대답은 이것일 것이다.
우리는 둘 다 갖춘 사람을 만나고 싶다. 깊은 숲을 설명할 뿐 아니라 직접 그 숲을 걸어본 사람. 별자리를 해설할 뿐 아니라 스스로 별빛 아래 오래 서 있었던 사람. 꽃의 이름을 알려줄 뿐 아니라 꽃이 피고 지는 아픔까지 품어본 사람. 시를 가르치는 손과 시를 쓰는 손이 같은 체온을 지닌 사람.
그런 스승을 만나고 싶은 것이다. 생각해 보면 그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바람이다. 등산을 배우는데 정상에 올라본 사람에게 배우고 싶고, 수영을 배우는데 물속을 자유롭게 헤엄칠 줄 아는 사람에게 배우고 싶다.
시도 마찬가지다. 언어의 기술만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삶의 온도까지 보여주는 사람. 문장의 구조만 설명하는 사람이 아니라 한 편의 시가 어떻게 한 인간의 눈물과 기쁨 속에서 태어나는지를 보여주는 사람. 우리는 그런 스승을 기다린다.
물론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시를 잘 쓰는 사람도 부족함이 있고, 시를 잘 가르치는 사람도 한계가 있다.
적어도 제자가 바라는 것은 있다. 강단에서 말한 것을 작품 속에서도 만날 수 있기를. 삶에서 보여준 것을 언어 속에서도 발견할 수 있기를. 가르침과 실천이 서로 등을 돌리지 않기를. 어쩌면 제자가 스승에게 기대하는 것은 재능보다 진실성인지도 모른다.
시를 가르치는 이유와 시를 쓰는 이유가 같은 사람. 말과 작품이 한 방향을 바라보는 사람. 그런 사람 앞에서는 설명조차 시가 되고, 침묵조차 가르침이 된다. 해서, 오늘도 많은 시인 지망생들은 마음속으로 소망한다. 시론을 이야기할 때는 학자이고, 창작을 할 때는 시인이며, 삶에서는 한 사람의 따뜻한 인간인 스승. 제자의 손을 잡고 길을 가르쳐주면서도 자신 또한 끝없이 길을 걷고 있는 스승. 가르침과 창작이 서로 어깨를 기대고 있는 사람.
그런 스승을 만나는 일은 좋은 시집 한 권을 만나는 일보다 더 큰 행운인지도 모른다. 좋은 시는 한 편의 작품을 남기지만, 좋은 스승은 한 사람의 인생 속에 평생 지워지지 않는 시 한 편을 남기기 때문이다.
□ 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명실상부한 시 선생은
허형만 선생이다.
ㅡ청람 김왕식
□
스승의 빈 의자
시를 배우러 갔다 흰 종이는 아직 눈 내리기 전의 들판처럼 조용했다
스승은 말했다 꽃을 보라 꽃의 이름 말고 꽃이 피기 전의 어둠을 보라
바람을 쓰라 바람의 방향 말고 흔들린 뒤에도 남아 있는 잎의 마음을 쓰라
나는 고개를 끄덕였으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 주머니에는 말보다 무거운 침묵만 들어 있었다
가르치는 손과 쓰는 손은 언제나 같은 별 아래 있는가
히딩크는 골을 많이 넣지 않았으나 한 나라의 심장에 붉은 파도를 일으켰다
공을 차는 발보다 사람을 깨우는 눈이 더 멀리 가는 날도 있다
그래도 우리는 바란다
길을 설명하는 사람보다 먼저 길 위에서 젖어본 사람을
꽃을 말하는 사람보다 꽃이 지는 저녁 앞에서 끝내 말을 잃어본 사람을
시를 가르치는 동안에도 자기 안의 어린 강물을 버리지 않은 사람을
한 줄의 은유로 제자의 어둠에 작은 등불 하나 걸어주는 사람을
스승이란 정답을 들고 서 있는 사람이 아니라 빈 의자 하나를 남겨 제자가 스스로 앉아보게 하는 사람
시는 배우는 순간 시작되지 않는다
배운 말들이 모두 지고 난 뒤 가슴 가장 낮은 곳에서 이름 없는 풀 한 포기처럼 혼자 돋아날 때
그때 비로소 시가 온다
좋은 스승은 그 풀을 꺾지 않는다
다만 햇빛이 오는 쪽을 조용히 비켜서 준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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