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

전화를 하면서 전화기를 찾는 사람들 ㅡ청람 김왕식

전화를 하면서 전화기를 찾는 사람들 2026.06.01
전화를 하면서 전화기를 찾는 사람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놀랄 일 아닙니다

청람

찻집 창가에 오후가 앉아 있었다.

일흔을 바라보는 아낙네 서넛이 찻잔에 입을 대고 세월을 식히고 있었다. 요즘은 정신이 예전 같지 않다며 웃는다.

냉장고 문을 열어놓고 다른 방으로 가고, 가스불 위 찌개는 끓고 있는데 마음은 이미 장터를 다녀오고, 세탁기는 며칠째 같은 옷을 붙들고 빙빙 돈다.

이야기 끝마다 웃음이 따라온다. 주름은 깊어졌는데 웃음은 더 가벼워졌다.

한 사람이 마지막 패를 꺼낸다. 전화를 하면서 전화기를 찾았다는 것이다. 순간 찻집 안의 공기가 흔들린다.

찻잔도 웃고, 창문도 웃고, 햇살도 웃는다.

옆자리 중년 신사가 차를 내려놓는다.

“놀랄 일 아닙니다.”

짧은 한마디가 찻집 가운데 놓인다.

사람은 원래 그런 존재라는 듯. 사람의 일생은 거대한 찾기의 역사인지도 모른다.

어릴 적에는 친구를 찾고, 젊은 날에는 사랑을 찾고, 중년에는 성공을 찾고, 노년에는 건강을 찾는다.

찾고, 또

찾고, 계속 찾는다.

그러는 동안 봄은 다녀가고, 여름은 창문에 기대고, 가을은 마당에 낙엽을 놓고 간다.

찾는 일에 바빠 계절이 지나가는 소리마저 놓칠 때가 많다.

귀에 전화기를 대고 전화기를 찾는 일은 우스운 해프닝이 아니다. 어쩌면 인간의 생애를 가장 짧게 요약한 풍경인지 모른다. 손안의 행복을 놓아둔 채 행복을 찾고, 곁에 앉은 사람을 두고 외로움을 찾고, 사랑 속에 살면서 사랑을 찾는다.

세상은 늘 저만치 앞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소중한 것들은 대개 가까운 곳에 머문다.

밥상 건너편의 사람, 아침 창가의 햇살, 이름 불러주는 목소리, 무사히 지나간 하루. 인생은 거창한 발견보다 이미 가진 것을 알아보는 능력에 더 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

찻집 밖으로 초여름 바람이 지나간다. 나뭇잎들이 저마다 푸른 전화를 받고 있다. 아낙네들은 웃으며 집으로 돌아간다.

빈 찻잔 몇 개가 남는다.

세월도 그런 모양이다. 한평생 찾아다니다가 끝내 가장 가까운 곳에 앉아 있는 것. 마치 귀에 대고 있으면서도 한참 찾게 되는 전화기처럼.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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