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온 길을 보면 ㅡ청람 김왕식
걸어온 길을 보면 2026.06.01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걸어온 길을 보면
사람의 생애는 한 권의 지도보다 한 켤레의 신발에 더 많이 기록된다. 어디를 향해 살았는지는 계획표에 적혀 있지만,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신발 바닥에 새겨져 있다.
어느 저녁, 길게 늘어진 그림자를 밟으며 걷다가 오래된 나무 한 그루를 바라보았다. 나무는 해마다 하늘을 향해 자랐지만 정작 나무의 역사는 위로 쌓인 것이 아니라 아래로 스며들어 있었다. 보이지 않는 뿌리가 보이는 가지보다 더 멀리 걸어가 있었던 것이다.
사람도 그와 비슷하다. 남들이 보는 것은 오늘의 모습이지만, 한 사람을 지탱하는 힘은 대개 보이지 않는 세월 속에 묻혀 있다.
젊은 날에는 늘 앞을 향해 달렸다. 내일은 언덕 너머에 있다고 믿었고, 행복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역에 서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삶은 언제나 출발이었다.
그러나 세월이라는 강이 몇 굽이를 돌아가자 다른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멀리 있는 산보다 지나온 능선이 아름답고, 아직 피지 않은 꽃보다 견디어낸 계절들이 더 깊은 향기를 품고 있었다.
그때부터 길은 목적지가 아니라 이야기가 되었다.
돌아보니 실패라고 이름 붙였던 날들은 모두 자갈밭이었다. 걷는 동안에는 발을 아프게 했지만, 지나온 뒤에는 강물의 속도를 늦추어준 징검돌이 되어 있었다.
눈물은 소금기 어린 비가 아니었다. 메마른 마음밭에 내린 봄비였다. 상처는 금 간 그릇이 아니었다. 빛이 드나드는 작은 창문이었다.
삶은 자꾸 잃어버린 것들을 실패라 부르지만, 세월은 그것들을 다른 이름으로 불렀다. 깊이. 여유. 그리움. 이해.
그래서 걸어온 길을 보면 걸어갈 길이 보인다.
한 번 겨울을 건넌 나무는 다음 겨울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얼었던 강도 봄이 오면 다시 흐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폭풍을 견딘 바다는 잔잔한 수평선 속에도 파도의 기억을 품고 있다.
사람 역시 견뎌온 시간만큼 미래를 품는다.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지만 어제는 이미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인생은 미래가 끌어가는 마차가 아니라 과거가 밀어주는 수레에 가깝다. 그래서 앞으로 가는 힘은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뒤에 있다.
황혼 무렵 들판을 바라보면 억새들이 한 방향으로 고개를 기울이고 있다. 바람이 지나간 자리다. 바람은 보이지 않지만 억새의 몸은 그것을 기억한다.
사람의 삶도 그렇다. 지나간 세월은 사라지지 않는다. 주름이 기억하고, 눈빛이 기억하고, 침묵이 기억한다.
한 사람의 품격은 읽은 책의 수보다 견뎌낸 계절의 수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지나온 길을 부끄러워할 이유가 없다. 굽은 길도 있었고, 돌아간 길도 있었고, 비를 맞은 길도 있었지만, 그 길들이 모여 오늘의 한 사람을 세웠다.
강물이 직선으로 흐르지 않기에 아름답듯, 인생 또한 돌아 흐른 흔적 때문에 깊어진다. 해 질 무렵의 길은 이상하게도 멀리 보인다. 낮에는 보이지 않던 굽이와 언덕이 노을 속에서 선명해진다.
세월도 마찬가지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늙어가는 일이 아니라, 지나온 길의 윤곽이 조금씩 또렷해지는 일이다. 하여, 사람은 어느 나이쯤에 이르면 앞만 바라보지 않는다. 가끔 뒤를 돌아본다. 후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감사하기 위해서. 잃어버린 것을 세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아 있는 것을 바라보기 위해서.
그렇게 돌아본 길 끝에는 말없이 서 있는 진실 하나가 있다. 길은 사람을 속이지 않는다. 성실하게 걸어온 발걸음은 반드시 다음 길의 문을 열어준다.
오늘도 저녁 햇살이 길 위에 노란 편지 한 장을 펼쳐 놓는다. 그 편지에는 단 한 줄만 적혀 있다. 걸어온 길은 지나간 시간이 아니라, 앞으로 걸어갈 길을 비추는 등불이다.
ㅡ청람
댓글
로그인 없이 바로 남길 수 있습니다. 나중에 본인이 수정·삭제하려면 이 댓글의 비밀번호를 정해 주세요. 서로 예의를 지켜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