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은 밥을 먹여 주는가 ㅡ청람 김왕식
문학은 밥을 먹여 주는가 2026.06.01
ㅡ청람 김왕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문학은 밥을 먹여 주는가 ― 인간이 끝내 문학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문학을 하는 사람들은 평생 한 번쯤 비슷한 질문을 듣는다.
“문학이 밥 먹여 주냐?” “시 써서 돈이 나오냐?” “소설 읽는다고 인생이 달라지냐?”
심지어 어떤 이들은 비웃듯 말한다.
“문학이나 하면서 한량처럼 산다.”
그 말들은 얼핏 현실적이고 합리적으로 들린다. 실제로 문학은 의사가 사람을 수술하듯 직접 생명을 구하지 못한다. 농부가 벼를 키우듯 쌀을 생산하지도 못한다. 기술자가 다리를 놓고, 기업가가 일자리를 만드는 것처럼 눈에 보이는 결과를 즉각 만들어내지도 못한다.
그렇다면 정말 문학은 쓸모없는 것일까. 문학은 인간에게 아무런 효용이 없는 것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인간이 무엇으로 사는 존재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인간은 빵만으로 사는 존재가 아니다. 만약 인간이 오직 배를 채우기 위해 살아간다면 세상에는 음악도 필요 없고, 그림도 필요 없으며, 시도 필요 없다. 해 질 무렵 노을을 바라볼 이유도 없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쓸 이유도 없다.
인간은 그렇게 살지 않는다. 배가 부른 뒤에도 외로움을 느끼고, 좋은 집에 살아도 허무함을 느끼며, 성공한 뒤에도 삶의 의미를 묻는다. 인간은 육체만 가진 존재가 아니라 마음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문학은 바로 그 마음의 양식이다. 밥은 몸을 살린다. 문학은 사람을 살린다. 몸이 굶주리면 배가 고프지만, 마음이 굶주리면 삶이 황폐해진다. 세상에는 밥은 넘쳐나는데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많다. 돈은 많은데 웃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높은 자리에 올랐지만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왜 그럴까. 마음이 굶주렸기 때문이다. 문학은 그 굶주림을 채워주는 일이다. 좋은 시 한 편은 지친 영혼에게 따뜻한 국 한 그릇이 되기도 한다. 좋은 소설 한 권은 인생의 방향을 잃은 사람에게 등불이 되기도 한다. 좋은 수필 한 편은 절망 속에 있는 사람의 어깨를 조용히 두드려 주기도 한다.
문학의 힘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은 아니다. 공기를 볼 수는 없지만 숨 쉬며 살고, 사랑을 만질 수는 없지만 그것으로 살아가듯, 문학 또한 인간을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지탱한다.
생각해 보라.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에게 마지막까지 남는 것은 무엇인가. 돈이 아니다. 사랑하는 가족의 기억이다. 병상에 누운 사람이 마지막으로 붙드는 것은 무엇인가. 재산 목록이 아니다. 살아온 삶의 의미다.
인간은 가장 중요한 순간에 문학적 존재가 된다. 삶을 이야기로 기억하고, 추억을 시처럼 간직하며, 죽음 앞에서도 의미를 찾으려 한다. 문학은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한 기술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예술이다.
실제로 인류 역사를 움직인 것도 문학이었다. 한 권의 책이 혁명을 만들었고, 한 편의 시가 민족의 정신을 일깨웠으며, 한 사람의 소설이 시대의 양심이 되었다.
총칼이 나라를 세울 수는 있다. 총칼은 문명을 만들지 못한다. 문명을 만드는 것은 이야기다. 사람들이 어떤 꿈을 꾸고, 어떤 가치를 믿으며, 무엇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문학과 예술이다.
더욱이 인공지능 시대가 다가올수록 문학의 가치는 오히려 커질 것이다. 기계는 계산을 잘한다. 정보도 빠르게 찾는다. 번역도 하고 그림도 그린다. 기계는 상실의 눈물을 이해하지 못한다.
어머니를 떠나보낸 자식의 그리움을 완전히 느끼지 못한다. 첫사랑의 떨림도, 늙어가는 부모를 바라보는 애틋함도, 가을 저녁 낙엽 한 장에 스며든 쓸쓸함도 스스로 경험하지 못한다. 그것은 인간만의 영역이다. 문학은 바로 그 인간다움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다.
문학은 돈을 버는 기술이 아니다. 사람을 이해하는 기술이다. 문학은 성공하는 방법을 가르치지 않는다. 의미 있게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친다. 문학은 부자가 되는 길을 알려주지 않는다. 부자가 된 뒤에도 왜 허전한지를 알려준다. 문학은 현실과 동떨어진 사치품이 아니다. 외려 인간 삶의 가장 깊은 현실이다. 밥만 먹고 살 수 있다면 인간은 이미 행복해야 한다.
인류는 수천 년 동안 시를 쓰고, 노래를 부르고, 이야기를 만들었다. 그 이유는 단 하나다. 인간은 빵만으로는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문학은 밥을 직접 먹여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밥을 먹어야 할 이유를 알려준다. 문학은 집을 지어 주지는 않는다. 그 집에 따뜻한 불빛을 켜 준다. 문학은 생명을 연장하지는 못한다. 살아 있는 동안 왜 살아야 하는지를 묻고 답하게 만든다. 문학은 효용을 넘어 존재의 문제다.
문학이 사라진 세상은 먹고사는 기술만 남은 세상이다. 풍요로울 수는 있어도 아름다울 수는 없다. 편리할 수는 있어도 따뜻할 수는 없다. 문학은 인간의 영혼이 스스로를 잃지 않기 위해 만들어낸 가장 오래된 등불이다. 그 등불은 세상이 아무리 밝아져도 꺼지지 않는다. 어둠이 깊어질수록 더 소중해진다. 문학은 밥이 아니다.
인간이 왜 밥을 먹으며 살아가는지를 끝내 잊지 않게 해주는 힘이다.
ㅡ청람
댓글
로그인 없이 바로 남길 수 있습니다. 나중에 본인이 수정·삭제하려면 이 댓글의 비밀번호를 정해 주세요. 서로 예의를 지켜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