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 한 줌의 무게 ㅡ청람 김왕식
먼지 한 줌의 무게 2026.06.03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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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 한 줌의 무게
정오의 태양이 아스팔트 위에 펄펄 끓는 쇳물을 붓고 있던 시간이었다
갑자기 하늘을 떠받치던 다리 하나가 무릎을 꿇었다
쿵 소리가 아니라 세상이 잠시 꺼지는 소리였다
콘크리트 덩어리들이 짐승 떼처럼 달려내려 왔고
철근들은 자신의 창자를 밖으로 드러낸 채 허공에 매달렸다
먼지가 솟구쳤다 흙먼지가 아니었다
누군가의 출근길이었고 누군가의 퇴직금이었고 누군가의 아이 이름이 적힌 통장이었다
먼지는 사람의 생애가 부서질 때 나는 재였다 잔해 밑에서는
“사람 살려!”
목이 찢어지는 소리가 올라왔다 휴대전화 벨소리가 울렸다 아내가 걸었을 것이다 점심은 먹었냐고 저녁엔 일찍 들어오라고
받지 못한 전화는 살아 있는 사람보다 더 오래 울었다
소방차가 도착했다 붉은 차들이 아니라 불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심장들이 도착한 것이다
소방관들은 쇳조각 숲 속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헬멧 안에서는 땀이 아니라 소금물이 흘렀다
누군가는 콘크리트 틈새에 귀를 대고 누군가는 맨손으로 돌덩이를 치웠다
살아 있다는 신호 하나 숨소리 하나 신음 하나 그것이 그날의 보물이었다
그때였다
길 건너에서 높은 굽의 구두가 먼지를 가르며 지나갔다
젊은 여자가 걸음을 멈췄다 하얀 바짓단에 회색 먼지가 묻어 있었다
그녀는 얼굴을 찌푸렸다 막 세탁소에서 찾아온 옷인데 손바닥으로 몇 번을 털었다
지워지지 않았다 짜증이 났다
몇 걸음 옆에서는 누군가가 피를 토하고 있었다 몇 걸음 밖에서는 누군가가 먼지를 털고 있었다
세상은 늘 두 개의 얼굴로 서 있었다 한 얼굴은 자신의 생명을 걸고 남의 생명을 꺼내 올린다
한 얼굴은 남의 죽음 곁에서 자신의 옷깃을 살핀다
저녁 뉴스는 말했다 사망 몇 명 중상 몇 명 실종 몇 명 숫자는 차가웠다
그 숫자 속에는 아버지라는 단어도 없고 남편이라는 단어도 없고 딸아이 운동회도 없었다
숫자는 사람을 세지만 삶은 세지 못한다 교각은 그날 무너졌다
사실 무너진 것은 콘크리트만이 아니었다
타인의 아픔에 귀 기울이던 마음의 교각도 함께 주저앉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구급차 소리보다 휴대전화 알림 소리에 더 빨리 고개를 들었고
비명보다 주가 그래프에 더 민감해졌다
눈물보다 좋아요 숫자에 더 마음을 빼앗겼다
무너진 교각 아래에서 소방관은 사람을 찾고 있었다
길 건너에서는 사람이 잃어버린 사람다움을 찾지 못한 채 먼지만 털어내고 있었다
그날 가장 큰 잔해는 철근도 아니었고 콘크리트도 아니었다
가슴속 연민이 무너져 내린 자리였다
그 먼지는 아직도 도시 위를 떠돌고 있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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