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

아름다운 아침이 되려면 ㅡ청람 김왕식

아름다운 아침이 되려면 2026.06.04
아름다운 아침이 되려면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아름다운 아침이 되려면

아침은 밤이 물러간 자리에 오는 것이 아니다. 한 사람의 마음속에서 어둠이 한 걸음 물러설 때 비로소 시작된다. 창밖에 햇살이 번져도 가슴이 얼어 있으면 아직 새벽이다. 비가 내리고 하늘이 잔뜩 흐려도 마음 한켠에 작은 등불 하나 켜져 있으면 이미 아침이다.

삶은 늘 큰 사건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대문 앞에 놓인 우유 한 병. 식탁에 남겨진 따뜻한 밥 한 공기. 멀리 있는 자식에게서 도착한 짧은 안부 문자. 마당 끝 감나무에 처음 돋은 연둣빛 잎사귀. 세상은 그런 사소한 것들 위에서 하루를 굴린다.

사람들은 자주 행복을 높은 산꼭대기에 세워 둔다. 성공하면 행복할 것이라 말한다. 돈이 많아지면 편안할 것이라 믿는다. 남보다 앞서면 만족할 것이라 생각한다.

정작 인생은 산 정상보다 산기슭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한 잔의 차를 마시는 시간. 이웃과 마주쳐 웃는 순간. 가족과 저녁밥을 나누는 풍경. 행복은 대개 그 자리에 앉아 있다.

세월은 사람의 얼굴에 주름을 남긴다. 대신 마음에는 눈을 만들어 준다. 젊은 날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늦은 나이에 또렷해진다. 부모의 침묵. 친구의 우정. 이웃의 배려. 한때는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사실은 축복이었다는 사실. 그 사실 하나를 알기까지 사람은 참 먼 길을 돌아온다.

들판의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강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며 마을을 적신다. 오래된 나무는 자기 그늘을 스스로 누리지 못한 채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내어준다. 아름다운 존재들은 대개 자기 자신보다 다른 생명을 먼저 품는다.

사람도 다르지 않다.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는 마음. 누군가의 아픔을 대신 안타까워하는 마음. 누군가의 기쁨을 함께 기뻐하는 마음. 그 마음이 한 사람의 하루를 맑게 만든다.

세상에는 화려한 아침도 있다. 호텔 창가에 쏟아지는 황금빛 햇살. 고급 커피 향이 흐르는 식탁. 눈부신 바다가 펼쳐진 창문. 아름답다. 다만 더 오래 기억되는 아침은 다른 곳에 있다. 병상에서 눈을 뜬 노인이 오늘도 살아 있음을 감사하는 아침. 홀로 자식을 키운 어머니가 도시락을 싸며 맞는 아침. 새벽시장을 나서는 상인의 아침. 논두렁에 첫 삽을 꽂는 농부의 아침. 거기에는 삶의 체온이 있다. 그 체온이 세상을 움직인다. 새는 날개로 하늘을 난다. 사람은 희망으로 하루를 난다. 희망이 없는 아침은 시들어 버린 꽃과 같다. 희망이 있는 아침은 작은 촛불 하나만으로도 긴 어둠을 견딘다.

아침은 태양이 아니라 희망이 만든다. 그래서 아름다운 아침은 특별한 날에만 오는 것이 아니다. 평범한 날에도 찾아온다. 어제와 다르지 않은 골목. 어제와 다르지 않은 집. 어제와 다르지 않은 사람들. 그 풍경 속에서 감사 하나를 발견하는 순간, 아침은 전혀 다른 얼굴로 다가온다. 살아 있다는 것은 한 권의 책을 아직 덮지 않았다는 뜻이다. 사랑할 사람이 남아 있다는 뜻이다. 건넬 말이 남아 있다는 뜻이다. 용서할 기회가 남아 있다는 뜻이다.

창문을 열어 보자. 멀리 산등성이 위로 햇빛이 번진다. 밤새 어둠을 품었던 나뭇가지마다 새들이 깃을 턴다. 골목 어귀 국밥집에서는 첫 국물이 끓고, 길가 민들레는 누구의 박수도 없이 노란 얼굴을 펼친다. 세상은 오늘도 자기 몫의 아침을 성실하게 준비했다.

이제 남은 것은 하나뿐이다. 우리 마음에도 작은 창 하나 여는 일. 그 창으로 사랑이 들어오고, 감사가 들어오고, 희망이 들어올 때, 비로소 아침은 단순한 시간이 아니라 한 편의 문학이 된다.

그 문학의 첫 문장은 늘 같다. 살아 있음은, 생각보다 훨씬 아름다운 일이라고.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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