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

어느 교육자의 '교육칼럼'ㅡ 학교 반장선거에서 배워라

어느 교육자의 '교육칼럼'ㅡ 학교 반장선거에서 배워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교육칼럼]

학교 반장선거에서 배워라

2026년 6월 대한민국은 다시 한 번 민주주의의 본질을 묻는 질문 앞에 서게 되었다. 6·3 지방선거 과정에서 서울 잠실 지역을 중심으로 14개 투표소에서 투표용지가 부족한 사태가 발생했고, 이를 둘러싸고 ‘재선거’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수천 명의 시민들이 올림픽공원 인근에 모여 목소리를 내고 있으며, 특히 20~30대 젊은 세대의 참여가 눈에 띈다. 선관위는 ‘재선거 사유가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지만, 많은 시민들은 “과연 절차적 정의가 지켜졌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는 단순히 한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 전체의 신뢰 문제라 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란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선거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정의의 실현 과정이다. 그런데 투표하려는 시민이 투표지를 받지 못하거나 오랜 시간 기다려야 했다면 이는 결과 이전에 절차의 문제를 제기하게 된다. 실제로 정치학 연구에서는 ‘선거 결과에 대한 수용성보다 선거 절차에 대한 신뢰가 민주주의 안정성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라고 보고한다.

이 문제를 가장 쉽게 이해하려면 학교 반장선거를 떠올려 보면 된다. 어느 학교에서 반장선거를 하는데 학생 30명 중 5명에게 투표용지를 주지 못했다고 가정해 보자. 선생님이 “결과에는 영향이 없으니 그냥 넘어가자”라고 말한다면 학생들은 납득할 수 있을까?, 학부모들의 민원이 없을까? 당선자가 압도적으로 이겼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왜냐하면 민주주의는 결과보다 과정의 신뢰 위에 세워지기 때문이다. 학교는 2015 교육과정 개정부터 ‘결과중심 평가’에서 ‘과정중심 평가’로 선회했지만 이미 그전부터 문제제기가 있었다. 그러니 어른들은 선거 결과를 발표하면 끝이라 하더라도 젊은 세대들은 ‘선거 과정의 투명성’을 요구하는 것이다.

미국의 제16대 대통령 Abraham Lincoln은 민주주의를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라고 정의했다. 국민이 주인이라면 단 한 사람의 참정권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이지만, 동시에 한 사람의 권리를 존중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세계 여러 나라의 사례도 이를 보여 준다. 2000년 미국 대선에서는 2000 United States presidential election 당시 플로리다주 재검표 문제로 국가적 논쟁이 벌어졌다. 결국 연방대법원 판결로 마무리되었지만, 미국 사회는 결과보다 절차의 공정성을 둘러싼 논쟁을 수개월 동안 이어 갔다. 또한 독일과 캐나다는 선거 이후에도 시민과 정당이 자유롭게 이의를 제기하고 검증할 수 있는 제도를 운영함으로써 선거 신뢰를 높이고 있다.

정치학자 Robert Dahl은 저서 『민주주의와 그 비판자들』에서 민주주의의 핵심 조건으로 “효과적 참여”와 “계몽된 이해”를 제시하였다. 시민이 선거 과정에 의문을 제기할 권리를 갖고, 국가기관은 그 의문에 성실하게 답할 의무를 가진다는 뜻이다. 민주주의는 질문을 억누르는 체제가 아니라 질문에 답하는 체제이다. 물론 선거에 대한 불신이 무분별한 음모론으로 이어져서도 안 된다. 증거 없는 의혹은 또 다른 사회적 갈등을 낳는다. 따라서 시민은 사실과 근거를 요구해야 하고, 선거관리기관은 모든 자료와 절차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신뢰는 강요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투명성에서 비롯된다.

로마의 철학자 Cicero는 “국민의 신뢰를 잃은 국가는 오래가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민주주의 역시 마찬가지다. 선거는 끝났지만 신뢰의 회복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학교 반장선거에서도 투표지가 부족했다면 학생들은 다시 확인하고 검증하려 할 것이다. 어른들의 민주주의는 그보다 더 엄격해야 한다. 정치적 좌우를 떠나 자유와 민주, 정의를 소중히 여긴다면 우리는 서로를 향해 손가락질하기보다 절차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요구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대한 신뢰 위에 세워진다. 학교 반장선거에서조차 공정성을 중요하게 여기는데, 국가의 미래를 결정하는 선거라면 더욱 그렇다. 부정선거로 당선되어 ‘국민을 위해 헌신하는 일꾼’이 된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승패를 둘러싼 분노가 아니라,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투명한 검증과 책임 있는 설명이다. 청치인이라면, 언론인이라면, 공적 업무를 맡은 경찰이나 공무원이라면 과정의 투명한 절차를 요구하는 젊은이들의 요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것이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길이며,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는 첫걸음이다.

ㅡ 어느 일선 교육자의 칼럼

절차를 묻는 용기, 민주주의를 지키는 양심 — 어느 일선 교육자의 ‘교육칼럼’을 읽고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교육자는 지식을 가르치는 사람에 머물지 않는다. 사회가 흔들릴 때 무엇이 본질인지 묻는 사람이다. 한 일선 교육자의 《학교 반장선거에서 배워라》는 바로 그 본질을 향해 나아간 글이다.

이 칼럼의 미덕은 정치적 입장을 앞세우지 않는 데 있다. 특정 진영의 승패를 말하지 않는다. 오직 민주주의가 무엇으로 유지되는가를 묻는다. 그것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며, 힘이 아니라 신뢰라는 점을 차분하게 환기한다.

특히 학교 반장선거라는 가장 익숙한 비유를 통해 국가 선거의 본질을 설명한 대목은 교육자다운 통찰이다. 복잡한 정치 이론을 늘어놓지 않고도 공정성의 가치를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 만들었다. 민주주의를 어려운 학문이 아닌 생활의 상식으로 끌어내린 것이다.

이 글에서 주목할 부분은 의혹을 단정하지 않는 태도다. 무조건적인 불신도 경계하고, 근거 없는 음모론도 경계한다. 시민은 질문할 권리가 있고, 공적 기관은 설명할 의무가 있다는 민주주의의 원칙을 강조한다. 감정보다 이성을, 선동보다 검증을 선택한 점이 돋보인다.

오늘날 많은 글이 진영의 확성기가 되는 시대다. 상대를 공격하는 데 열중하고, 독자의 분노를 자극하는 데 능숙하다. 이 글은 그 반대편에 서 있다. 목소리는 낮지만 질문은 깊다. 주장보다 원칙을 말하고, 편 가르기보다 공정성을 말한다.

민주주의는 투표함에서 완성되지 않는다. 시민이 신뢰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살아 움직인다. 신뢰는 침묵에서 생기지 않는다. 검증과 설명, 공개와 책임 속에서 자란다. 이 칼럼은 그 당연한 사실을 다시 일깨운다.

교육은 사람을 바르게 세우는 일이다. 이 글에는 교단에 오래 선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책임감이 배어 있다. 학생들에게 공정성을 가르쳤던 한 교사가 이제 사회를 향해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과정은 과연 공정했는가.”

그 질문은 어느 한 선거만을 향한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향한 질문이다. 좋은 칼럼은 답을 강요하지 않는다. 질문 하나를 독자의 가슴에 심는다.

이 글이 바로 그런 글이다. 정치를 말하고 있지만 양심을, 선거를 말하고 있지만 신뢰를 말하고 있다. 그것이 이 칼럼의 가장 큰 힘이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