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산 ㅡ청람 김왕식

2026.06.09
산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산은 땅이 들어 올린 돌기둥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뿌리들이 오랜 세월 밀어 올린 침묵의 봉우리다

아침이면 이슬 몇 방울을 받아 들고 밤새 어둠을 건너온 풀잎들의 안부를 묻는다

낮에는 구름 한 장 머리에 이고 바람이 흘리고 간 휘파람을 나뭇가지마다 매달아 둔다

산은 높이를 자랑하지 않는다 가장 높은 곳에 있으면서도 늘 가장 낮은 골짜기를 품는다 계곡의 물소리가 제 몸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조차 입 밖에 내지 않는다

사람들은 정상을 향해 오른다

산은 사람들이 버리고 간 한숨과 주머니 속 근심과 말하지 못한 눈물을 말없이 받아 적는다

하여 산길에는 누구의 것도 아닌 기도가 자라고 바위틈에는 이름 없는 소망이 꽃으로 핀다

봄이 오면 산은 꽃으로 웃지 않는다 꽃들이 산의 마음을 대신하여 피어날 뿐이다

여름이 오면 푸른 숲을 펼쳐 놓고 지친 햇살에게 그늘 한 칸 내어준다

가을이 오면 제 몸을 물들여 떠남의 아름다움을 가르치고

겨울이 오면 하얀 적막을 뒤집어쓰고 세상이 잊은 순백의 시간을 지킨다

산은 수많은 새를 떠나보냈고 수많은 구름을 흘려보냈다 한 번도 붙잡지 않았다

머무름보다 떠남이 더 자연스럽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멀리서 보면 산은 하나의 풍경이다

가까이 다가가면 한 권의 책이다

더 가까이 다가가면 수천 년 동안 비와 바람과 별빛으로 써 내려간 한 편의 경전이다

그래서일까 마음이 어지러운 날 사람들은 산을 찾는다

산이 무슨 말을 해주어서가 아니다 산 앞에 서면 쓸데없는 말들이 먼저 작아지고 욕심이 먼저 숨을 죽이며 마침내 자기 안의 소란이 잠들기 때문이다

산은 오늘도 거기 있다

세상을 내려다보지 않고 하늘을 떠받치지도 않으며

다만 흔들리는 것들 곁에서 흔들리지 않는 한 문장으로 서 있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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