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연작 시 ㅡ청람 김왕식
바람 연작 시 2026.06.09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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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바람 1
바람은 하늘이 흘린 생각인가
산마루에 걸터앉았다가 강물 속으로 내려가
물비늘 몇 장 뒤집어 놓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먼 들판으로 사라진다
세상은 지나간 자국을 찾는데
바람은 흔들림만 남기고 끝내 모습을 남기지 않는다.
바람 2
꽃은 바람에게서 떠나는 법을 배우고
향기는 돌아오는 법을 배운다
바람 3
바람은 나무를 흔들지 않는다
나무속에 잠든 하늘을 깨운다
바람 4
창문을 닫아도 바람은 들어온다
그리움은 틈으로 사는 것이다
바람 5
바람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것이 가장 멀리 간다
바람 6
들판을 건너온 바람
풀잎 몇 장
뒤척이게 하고는
봄인 척 웃고 간다
바람 7
산마루에 앉은 바람은 구름의 등을 토닥이고
강가에 내려온 바람은 물결의 잠을 흔든다
바람 8
바람은 자기 얼굴이 없다
만나는 것마다 잠시 자기 얼굴로 삼는다
바람 9
낙엽 하나 허공에 띄워 놓고
바람은 가을의 서명을 남긴다
바람 10
잡을 수 없어 허무한 것이 아니다
바람은 보이지 않는 것이 얼마나 깊이 세상을 움직이는지
몸으로 쓰는 편지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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