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

엇박자 ㅡ청람 김왕식

엇박자 2026.06.09
엇박자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엇박자

요즘 세상은 참 빠르다. 빠르다는 말로도 부족하다. 숨을 한 번 들이쉬는 사이에 뉴스가 바뀌고, 아침에 올린 글이 저녁이면 낡은 정보가 된다. 손가락 하나로 지구 반대편 사람과 대화하고, 인공지능이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시대가 되었다.

문제는 속도가 아니다. 속도는 문명의 발전이다. 문제는 박자다. 우리는 지금 빠른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엇박자 시대에 살고 있다. 세상은 전속력으로 달리는데 마음은 출발선에 서 있고, 몸은 쉼을 원하는데 일정표는 기관차처럼 달려간다.

옛날에는 시계가 사람을 따라왔다. 지금은 사람이 시계를 따라간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시간을 확인하고, 밥을 먹으며 시간을 확인하고, 잠들기 직전까지 시간을 확인한다. 시계를 보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산다. 그러면서도 정작 인생은 놓친다.

어느 날 친구를 만났다. 밥을 먹는데 두 사람 모두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한 사람은 카카오톡을 보고 있었고, 다른 사람은 유튜브를 보고 있었다. 둘은 마주 앉아 있었지만 사실은 각자 다른 나라에 가 있었다. 식사가 끝날 무렵 한 사람이 말했다.

“오늘 참 좋은 시간 보냈네.”

순간 웃음이 났다. 함께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함께 있지 못했던 시간을 좋은 시간이라고 부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은 점점 연결되는데 사람은 점점 고립된다. 수천 명의 친구가 있는데 정작 마음 털어놓을 사람은 없다. 좋아요는 넘쳐나는데 좋아하는 사람은 드물다. 소통의 기술은 발전했는데 대화의 능력은 퇴화했다. 말은 많아졌는데 이야기는 사라졌다.

참으로 절묘한 엇박자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에게 창의력을 가르친다고 말하면서 정답을 요구한다. 개성을 존중한다고 말하면서 똑같은 길을 걷게 한다. 자유롭게 생각하라고 하면서 시험 답안지에는 모범답안이 있다. 마치 물고기에게 자유롭게 헤엄치라고 말하면서 수조 크기를 정해 주는 셈이다.

정치도 엇박자다. 국민을 섬긴다고 외치는데 국민은 늘 걱정이 많다. 겸손하겠다고 말하는 사람일수록 현수막은 더 크게 건다. 희생하겠다고 말하는 사람일수록 명함은 더 두껍다. 선거철이 되면 세상에서 가장 허리가 아픈 사람들이 나타난다.

평소에는 꼿꼿하던 분들이 갑자기 허리를 90도 가까이 숙인다. 당선되고 나면 허리 디스크가 기적처럼 완치된다. 의학계가 연구해야 할 놀라운 현상이다.

문학인들도 예외는 아니다. 시인은 세상을 비우자고 말하면서 책상 서랍에는 원고를 가득 채운다. 수필가는 소박하게 살자고 쓰면서 원고지 한 장에 세상의 의미를 다 담으려 한다. 평론가는 군더더기를 빼자고 주장하면서 정작 자기 글은 스무 장이 넘는다. 문학도 결국 인간이 하는 일이니 얼마나 사랑스러운 모순인가.

생각해 보면 엇박자는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음악을 들어 보면 정박자만 있는 곡은 오히려 단조롭다. 재즈의 묘미도 엇박자에 있고, 판소리의 흥도 엇박자에 있다.

인생도 그렇다. 계획대로만 흘러가는 삶은 없다. 넘어질 줄 알았는데 일어서고, 성공할 줄 알았는데 실패한다. 실패인 줄 알았던 일이 훗날 가장 큰 선물이 되기도 한다.

젊을 때는 인생을 직선으로 생각한다. 나이가 들수록 안다. 인생은 곡선이라는 것을. 때로는 돌아가는 길이 가장 빠른 길이고, 늦게 피는 꽃이 가장 오래 피기도 한다는 것을. 그래서 엇박자 시대를 사는 지혜는 박자를 맞추는 데 있지 않다. 자기 리듬을 잃지 않는 데 있다.

세상이 빨라질수록 천천히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남들이 소리칠수록 조용히 들을 줄 알아야 한다. 모두가 앞으로만 달릴 때 가끔은 하늘도 바라보고, 나무도 바라보고, 자기 마음도 들여다보아야 한다. 엇박자 시대의 가장 큰 비극은 늦는 것이 아니다.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세상이 아무리 빨라져도 봄은 제때 오고, 달은 제때 뜨고, 별은 제때 빛난다. 자연은 한 번도 조급해한 적이 없다. 그런데도 계절은 어김없이 완성된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빠른 속도가 아닐지 모른다. 한 박자 늦더라도 자기 걸음으로 걷는 용기일지 모른다. 세상이 엇박자로 흔들릴수록 사람은 자기 마음의 박자를 먼저 들어야 한다.

인생은 경주가 아니다. 한 곡의 음악이다. 문제는 얼마나 빨리 달렸느냐가 아니라, 마지막까지 자기 음정을 잃지 않았느냐에 있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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