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런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ㅡ청람 김왕식
내가, 이런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2026.06.10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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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런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나이가 들수록 새삼 느끼게 된다. 사람을 빛나게 하는 것은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아는가에 있다는 것을.
세상에는 말 잘하는 사람이 많다. 자기 생각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사람도 많고, 자신이 쌓아온 이력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사람도 많다.
듣고 있으면 감탄이 나오기도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오래 기억에 남는 사람은 따로 있다.
그 사람은 말이 많지 않다. 자기 이야기를 하기보다 남의 이야기를 듣는다. 대화의 중심에 서기보다 한 걸음 물러나 상대를 빛나게 한다. 침묵이 어색하지 않고 경청이 몸에 밴 사람이다. 그런 사람 곁에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무언가를 증명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지식을 내세우지 않고, 자신의 경험을 과시하지 않고, 자신의 업적을 펼쳐 보이지 않는다. 그저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들어준다.
사람은 누구나 인정받고 싶어 한다. 누구나 자신이 옳다는 말을 듣고 싶어 한다. 누구나 자신이 이룬 것을 알아주길 바란다.
그 마음 자체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문제는 그 마음이 너무 커질 때다. 그때부터 사람은 듣기보다 말하게 되고, 이해하기보다 설명하게 되고, 공감하기보다 가르치려 들게 된다. 배움이 깊어질수록 고개는 낮아져야 하는데, 현실은 종종 그 반대로 흘러간다. 벼는 익을수록 숙이는데 사람은 조금만 익어도 하늘을 향해 서려한다.
하여 더욱 귀한 사람이 있다. 누군가 책을 얼마나 읽었느냐고 물었을 때, “조금 읽어 보았습니다만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사람. 수십 년 동안 공부했으면서도 배울 것이 더 많다고 말하는 사람. 시집을 여러 권 냈으면서도 작품 앞에서는 늘 초보자 같은 마음으로 서 있는 사람.
그런 사람에게서는 이상한 향기가 난다. 겸손의 향기다. 겸손은 자신을 낮추어 비하하는 것이 아니다. 없는 것을 있다고 말하지 않는 것처럼, 있는 것을 과장하지 않는 태도다. 자신의 한계를 알고,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며, 세상이 자신보다 넓고 깊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자세다.
진짜 많이 배운 사람은 자신이 모르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안다. 진짜 깊이 있는 사람은 자신이 아직도 부족하다는 사실을 안다. 그래서 함부로 단정하지 않는다. 쉽게 우쭐해지지 않는다.
높은 산에 오를수록 하늘이 더 높아 보이는 것처럼, 배움이 깊어질수록 미지의 세계는 더욱 넓어진다. 그런 사람은 얼굴도 다르다. 굳이 권위를 만들지 않는다. 인상을 쓰지 않는다. 상대를 누르려 하지 않는다. 훈훈한 마음으로 빙그레 웃는다. 그 웃음 속에는 여유가 있다. 경쟁에서 벗어난 사람의 여유이고, 비교를 내려놓은 사람의 평온함이다.
그 앞에서는 누구도 위축되지 않는다. 누구도 평가받는 느낌을 받지 않는다. 외려,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머물 수 있다.
생각해 보면 사람의 품격은 말의 높이가 아니라 마음의 깊이에서 나온다. 화려한 언변보다 따뜻한 경청이 아름답고, 많은 지식보다 넓은 이해가 소중하며, 높은 명성보다 낮은 자세가 오래 남는다.
해서 가끔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나는 얼마나 말하고 있는가. 나는 얼마나 듣고 있는가. 나는 얼마나 드러내고 있는가. 나는 얼마나 비워내고 있는가.
대답은 늘 만족스럽지 않다. 아직도 아는 척하고 싶은 마음이 있고, 인정받고 싶은 욕심이 있고, 드러내고 싶은 유혹이 있다. 그럴 때마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는다. 말보다 침묵을 배우고, 설명보다 경청을 배우고, 과시보다 존중을 배우자고.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은 결국 얼마나 많이 말했느냐가 아니다. 얼마나 따뜻하게 들어주느냐이다. 얼마나 높이 올라갔느냐가 아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을 편안하게 했느냐이다.
남은 생애에는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많이 아는 사람으로 기억되기보다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안한 사람. 많이 가진 사람으로 보이기보다 따뜻한 사람.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상대를 빛나게 하는 사람. 배움을 자랑하기보다 배움을 갈망하는 사람. 그래서 누구를 만나도 고개를 숙일 줄 알고, 누구의 말 앞에서도 귀를 열어둘 줄 아는 사람.
아직 멀었지만, 더욱 그 길을 걷고 싶다. 침묵 속에서 사람을 품고, 경청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웃음 속에서 세상을 따뜻하게 만드는 사람.
내가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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