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

가우디 서거 100주기에 즈음하여 ㅡ문학평론가 청람

가우디 서거 100주기에 즈음하여 2026.06.10
가우디 서거 100주기에 즈음하여

ㅡ문학평론가 청람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돌은 왜 꽃을 꿈꾸었을까 ― 가우디 서거 100주기에 즈음하여

시간은 참 빠르다. 사람의 한 생애는 길어야 백 년 남짓이다.

한 사람이 태어나고, 사랑하고, 일하고, 세상을 떠난다. 그렇게 한 세대가 지나면 기억도 희미해진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죽은 뒤에도 계속 살아 있다. 그가 남긴 생각이 살아 있고, 그가 품었던 정신이 살아 있으며, 그가 꿈꾸었던 세계가 여전히 현재형으로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가우디가 그런 사람이다. 1926년 6월 7일, 그는 전차 사고를 당했다. 며칠 뒤인 6월 10 일 세상을 떠났다. 올해는 그가 세상을 떠난 지 꼭 100년이 되는 해다.

100 년. 한 인간의 생애로 보면 아득한 시간이다. 제국이 무너지고, 전쟁이 지나가고, 과학이 세상을 바꾸고, 인공지능이 인간의 영역까지 넘보는 세상이 되었다. 그런데도 바르셀로나의 하늘 아래 서 있는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여전히 공사 중이다. 한 사람의 꿈이 백 년 동안 계속 자라고 있는 셈이다.

생각해 보면 이것은 놀라운 일이다. 오늘날 세상은 속도를 숭배한다. 빨리 짓고, 빨리 팔고, 빨리 성공하고, 빨리 잊어버린다. 그러나 가우디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그는 빨리 완성하는 것보다 제대로 완성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눈앞의 박수보다 먼 미래의 감동을 선택했다. 당대 사람들의 칭찬보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후대의 감탄을 향해 일했다.

하여, 그의 건축은 건물이 아니라 시간의 나이테처럼 보인다. 벽돌 하나에도 계절이 스며 있고, 기둥 하나에도 기도가 스며 있으며, 창문 하나에도 자연에 대한 경외가 배어 있다. 가우디는 건축을 한 것이 아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를 남겼다.

오늘의 인간은 자연을 분석한다. 가우디는 자연을 스승으로 삼았다. 오늘의 인간은 경쟁에서 이기려 한다. 가우디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려 했다.

오늘의 인간은 결과를 묻는다. 가우디는 방향을 먼저 물었다. 그래서 그의 삶은 건축가의 전기가 아니라 하나의 철학처럼 읽힌다. 특히 지금 같은 시대에 더욱 그렇다. 우리는 너무 많은 정보를 갖고 있다. 손바닥 안에서 세계의 소식을 본다. 수천 권의 책보다 많은 지식이 스마트폰 안에 들어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삶은 더 조급해졌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보다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불안해한다. 얼마나 멀리 가야 하는지보다 남보다 뒤처질까 두려워한다. 가우디는 백 년 전 사람인데도 오히려 오늘의 우리보다 더 현대적이다. 그는 말없이 보여주었다. 깊이는 속도에서 태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오래 사랑한 것에서 태어난다는 것을. 나무가 거목이 되는 까닭도 같은 자리에 오래 서 있기 때문이다. 강물이 바다에 이르는 까닭도 한 방향으로 흐르기 때문이다.

사람 역시 그렇다. 한 가지 가치를 붙들고 오래 살아본 사람에게는 세월이 주는 깊이가 생긴다. 가우디의 삶을 바라보며 가장 크게 배우게 되는 것은 겸손이다.

그는 세계적인 천재였다. 그러나 말년의 삶은 놀라울 만큼 소박했다. 낡은 옷을 입었고, 작은 방에서 지냈으며, 자신이 짓고 있는 성당 곁을 떠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를 노숙자로 오해할 정도였다. 오늘의 시대라면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세상은 성공할수록 자신을 드러내라고 말한다. 더 많이 보여주고, 더 크게 알리고, 더 높이 올라가라고 말한다. 가우디는 반대로 살았다. 높아질수록 자신을 지웠다. 남기려 한 것은 자신의 이름이 아니라 작품이었고, 작품보다 더 중요하게 여긴 것은 정신이었다.

백 년이 지난 오늘도 사람들은 그의 건물을 구경하러 가는 것이 아니다. 그의 영혼이 남긴 흔적을 만나러 간다.

올해는 가우디가 세상을 떠난 지 100년이 되는 해다. 그러나 어쩌면 그는 아직도 죽지 않았다.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첨탑 속에서, 곡선으로 흐르는 창문 속에서, 나무를 닮은 기둥 속에서, 그는 여전히 살아 움직이고 있다. 육신은 백 년 전에 멈추었으나, 그가 남긴 정신은 지금도 자라고 있다.

사람의 수명은 길어야 백 년이다. 정신의 수명은 다르다. 무엇을 위해 살았는가에 따라 수백 년이 되기도 한다.

가우디의 삶이 오늘 우리에게 남기는 질문도 결국 하나다. 당신은 사라질 것을 쌓고 있는가, 아니면 세월이 지나도 남을 가치를 쌓고 있는가.

백 년 전 한 건축가가 남긴 침묵의 질문이 지금도 우리 가슴을 두드리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 청람 김왕식

□ 가우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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