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은 한 사람의 체온이다 ㅡ청람 김왕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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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바람은 길을 몰랐다 청보리밭 사이를 지나며 초록의 결만 뒤척였을 뿐 논물 한 장 하늘을 받아 적고 구름 몇 점 젖은 모내기 줄 사이에 흰 편지처럼 떠 있다
뻐꾸기 울음 산 너머에서 온 것이 아니라 세월 깊은 우물 바닥에서 물 한 바가지 길어 올리듯 가슴속 오래된 이름 하나를 흔든다
떠난 적 없는 것은 그리워지지 않는다 몸은 수십 년을 흘러왔는데 발뒤꿈치에는 아직도 마을 어귀 흙먼지 한 줌이 붙어 있다
돌담에 기대 잠들던 저녁 어머니가 부르던 밥 냄새 우물가에 걸린 노을 풀벌레 울음에 젖던 초가지붕
그것들은 사라진 것이 아니다 늙은 별처럼 보이지 않는 하늘 뒤에서 아직도 천천히 빛나고 있다
고향은 장소가 아니다 세월이 다 지나간 뒤에도 마음 한가운데 끝내 지워지지 않는 한 사람의 체온이다.
ㅡ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