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신을 수는 없다 ― 전시우 시인의 《10년 후》를 읽다 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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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후
시인 전시우
생일날 받은 10년이 지난 신발
군 관사 네 번 이사할 때까지
고이 모셔두던 테니스화
동기들과 운동하던 날
처음 신었다
멋있다는 칭찬에 우쭐했는데
시합 중 넘어졌다
삭아버린 신발이 나를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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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신을 수는 없다
― 전시우 시인의 《10년 후》를 읽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좋은 시는 거대한 사건을 말하지 않는다.
외려 너무 오래 바라보아 익숙해진 사물 하나를 낯설게 돌려 세운다. 독자는 그 순간, 신발이 신발이 아니었음을 비로소 알게 된다.
전시우 시인의 《10년 후》는 테니스화 한 켤레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시가 끝났을 때 독자의 가슴에 남는 것은 신발이 아니라 시간의 유통기한이다.
생일 선물로 받은 신발.
아까워 신지 못하고 고이 간직한다. 군 관사를 네 번이나 옮기는 동안에도 함께 데리고 다닌다. 그 정성은 물건을 향한 애착이면서 동시에 시간을 붙잡아 두려는 인간의 마음이다. 우리는 가장 소중한 것을 아끼다가 가장 늦게 사용한다. 정작 삶은 기다려 주지 않는데도 말이다.
드디어 신발을 신는 날이 찾아온다.
동기들의 “멋있다”는 한마디에 마음은 잠시 청춘으로 돌아간다. 오래 기다린 시간에 대한 작은 보상처럼 보인다.
시는 바로 그 지점에서 독자의 예상을 뒤집는다.
“삭아버린 신발이 나를 삼켰다.”
이 마지막 한 행은 압권이다.
넘어진 것은 몸이지만, 무너진 것은 시간에 대한 우리의 착각이다.
우리는 낡은 것은 눈으로만 판단한다. 해어졌는지, 색이 바랬는지, 흠집이 있는지만 살핀다. 그러나 가장 무서운 노화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진행된다. 고무는 침묵 속에서도 늙고, 가죽은 사용하지 않아도 삭으며, 사람의 마음 또한 움직이지 않으면 조금씩 굳어 간다.
전시우 시인은 신발을 통해 삶의 역설을 보여 준다.
사용한 것이 닳는 것이 아니라, 사용하지 않은 것도 늙는다.
이 통찰은 사물을 넘어 인간에게 향한다.
사랑도 그렇다.
재능도 그렇다.
우정도 그렇다.
꿈도 그렇다.
아끼기만 하면 오래 남을 것 같지만, 쓰이지 않은 사랑은 식어 가고, 펼치지 않은 재능은 굳어 가며, 표현하지 않은 우정은 멀어지고, 미루기만 한 꿈은 어느 날 스스로 무너져 내린다.
전시우 시인의 시어는 과장되지 않는다.
생활의 언어를 그대로 가져오면서도 마지막 한 행에서 존재의 철학으로 도약한다. 이러한 시적 비약은 독자를 놀라게 하기 위한 기교가 아니라, 일상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삶의 본질을 발견하는 시인의 감각이다.
불현듯 생각이 든다.
인간도 어쩌면 시간을 신는 존재인지 모른다.
오늘 신어야 할 신발을 내일로 미루고, 오늘 건네야 할 사랑을 훗날로 미루며, 오늘 살아야 할 생을 언젠가로 연기한다. 그러는 사이 시간은 우리보다 먼저 늙어 간다.
전시우 시인은 신발 한 켤레로 시간을 보여 준 시인이다.
그 신발은 발을 감싸는 도구가 아니라 세월의 속도를 측정하는 시계였고, 인간의 미루는 습성을 비추는 거울이었다.
짧은 시 한 편이 이렇게 오래 독자의 마음에 남는 까닭은, 신발이 삭은 이야기를 들려주었기 때문이 아니라 오늘을 미루는 우리의 삶이 이미 조금씩 삭아 가고 있음을 조용히 일깨워 주기 때문이다.
전시우 시인의 《10년 후》는 신발을 노래한 시가 아니다.
시간을 제때 살아야 한다는, 너무 늦기 전에 생을 힘껏 신어야 한다는 아름답고도 아픈 삶의 경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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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우 시인께
― 시간을 신는 사람
시인은
낡은 신발 한 켤레에서도
세월의 발자국을 들으시는 분입니다.
사람들은
고무가 삭았다고 말하지만,
선생님은
머뭇거린 시간이 먼저 삭았음을
한 줄의 시로 밝혀 주셨습니다.
꽃은
피어야 향기를 남기고,
강은
흘러야 바다를 만납니다.
삶 또한
오늘을 신어야
내일에 닿을 수 있음을,
선생님의 시는
말없이 가르쳐 주었습니다.
부디
앞으로도
시간의 가장 깊은 주름에서
아직 이름 없는 별 하나를
시로 피워 올려 주십시오.
그 별빛은
오래도록
우리의 발걸음을 비출 것입니다.
ㅡ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