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거대한 손, 인간은 밀려가는 파도 ― 신계전 시인의 《노도怒濤》를 읽다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 신계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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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도怒濤
시인 신계전
세상은 나를 밀고
너와 나 세상 민다
어디 쯤 밀려가야
밀당이 끝나려나
하늘은 시치미 뗀 채
팔짱 끼고 딴짓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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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거대한 손, 인간은 밀려가는 파도
― 신계전 시인의 《노도怒濤》를 읽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신계전 시인의 《노도怒濤》는 짧다.
그 짧음 속에는 인간 존재의 역학이 압축되어 있다. 몇 줄의 시어만으로 삶과 관계, 운명과 초월을 한꺼번에 끌어안는다.
이 작품은 ‘민다’라는 단 하나의 동사를 반복하면서도, 그 반복을 단순한 언어의 되풀이가 아니라 존재의 파문으로 확장시킨다.
첫 구절,
“세상은 나를 밀고 / 너와 나 세상 민다.”에서 ‘밀다’는 물리적 동작이 아니다. 삶이라는 거대한 조류가 인간을 떠밀고, 인간 또한 세상을 밀어내며 살아가는 실존의 몸짓이다. 우리는 세상을 바꾸려 애쓰지만, 동시에 세상에 의해 끊임없이 방향을 바꾸는 존재이다.
시인은 이 상호작용을 한 줄의 언어로 응축한다.
이어지는 “어디쯤 밀려가야 / 밀당이 끝나려나.”는 해학 속에 철학을 숨겨 놓는다. 흔히 ‘밀당’은 사랑의 심리전으로 읽히지만, 이 시에서는 삶과 운명의 줄다리기이다. 인간은 목적지를 향해 걷는다고 믿지만, 실은 보이지 않는 물살과 바람 사이에서 끊임없이 밀리고 밀어내는 항해를 계속한다.
인생은 직선이 아니라 조류를 품은 바다임을 시인은 익살스럽게 일깨운다.
마지막 연은 이 작품의 깊이를 완성한다.
“하늘은 시치미 뗀 채 / 팔짱 끼고 딴짓한다.”
얼핏 장난스러운 표현 같지만, 그 안에는 인간의 오래된 질문이 숨어 있다.
왜 삶은
이토록 고단한가.
왜 세상은
쉽게 답을 주지 않는가.
하늘은 침묵하고, 인간은 그 침묵 앞에서 밀려가는 파도가 된다. 시인은 하늘을 냉혹한 심판자로 그리지 않는다. 모든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노련한 관조자로 형상화한다. 그 익살은 외려 삶의 비애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신계전 시인의 시어는 거센 파도를 만들지 않는다. 작은 물결 하나를 일으켜 독자의 마음속에서 오래 출렁이게 한다. 그의 언어는 칼날보다 바람에 가깝다. 조용히 스쳐 지나가는 듯하지만, 어느새 생각의 방향을 바꾸어 놓는다.
불현듯 생각이 든다.
인간은 세상을 밀며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조류 위에서 자신의 노를 놓지 않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파도는 바다를 이길 수 없지만, 끝내 해안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 끈질긴 출렁임이 곧 삶이다.
《노도怒濤》는 그저 파도를 노래한 시가 아니다.
한 사람의 생애가 거대한 바다와 주고받는 보이지 않는 밀고 당김의 율동을, 해학과 철학이 절묘하게 포개진 언어로 빚어낸 깊은 서정의 작품이다. 짧은 시가 이토록 넓은 바다를 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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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를 품은 작가, 신계전 시인께
시인께서는
파도를 쓰신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 밀리고 밀리는 소리를 한 줄씩 바다에 새기셨습니다
세상은 수많은 등을 떠밀어도
시인의 언어는 넘어진 영혼 하나를 다시 일으켜 세웁니다
밀려가는 것은 패배가 아니라
더 넓은 바다를 만나기 위한 물결의 공부임을
시인은 짧은 시 한 편으로 가만히 일러 주셨습니다
부디 오래도록
바람보다 먼저 파도의 숨을 듣는 시인이 되어 주십시오
시인께서 건너는 언어의 바다는
오늘도 누군가의 메마른 가슴에
푸른 밀물 하나를 조용히 불러오고 있습니다
ㅡ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