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병기 시인의 《유년시절》 ㅡ청람 김왕식 평하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유년 시절 1 (소년)
시인 우병기
농사철 학교에서 돌아오면 텅 빈 집
오늘은 어느 밭으로 갔을까 바지랑대에 앉아 있는 잠자리에게 물어볼 수도 없고 소년은 맞춤한 오이 하나 따서 깨물며 엄마 찾아 길을 나섰다
엉겅퀴꽃 피어 있는 밭둑길 걸어가면 들풀들은 개구쟁이 발등을 마구 간지럽히고 애기똥풀은 무더기로 모여 노는데 바둑이와 나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멀리 수건 쓴 엄마가 보이고 쪼그리고 앉은 동생도 보이고 달음박질로 달려간 소년에게 주전자 뚜껑에 따른 물로 목추렴하라 했다 소년 이마를 훔치던 엄마 머릿수건은 땀 냄새, 엄마 냄새
엄마는 동생을 업고 소년은 삼태기를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옆집 굴뚝에는 벌써 연기가 솟고 개울 건너 아재 집 발발이는 크게 크게 짖어대는데 동생은 그새 잠이 들었다
어쩌다 보이는 벌목 실은 산판차가 신작로를 냅다 달리면 흙먼지가 뭉게구름처럼 쏜살같이 뒤따라 뛰고 상상하는 소년의 마음도 뛰고
타닥타닥 장작 타는 소리 아침잠 깨우면 울타리 사립문으로 딱새가 포르르 모여들어 사뿐사뿐 조잘거리듯 지저귀던
아름다운 날들, 그리운 나날들 그 풍경 속에는 언제나 소년이 있었다
■
소년은 아직도 그 밭둑길을 걷고 있다 ㅡ 우병기 시인의 《유년시절》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우병기 시인의 《유년 시절 1(소년)》은 단지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작품이 아니다. 시간을 다시 불러오는 시도 아니다. 이 시는 기억이 흙으로 환생하는 순간을 보여 주는 한 편의 생명 연대기다. 시인은 과거를 설명하지 않고, 흙냄새와 땀냄새를 독자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는다. 독자는 그 냄새를 맡는 순간 이미 소년이 되어 신작로를 달리고, 엄마를 찾아 밭둑길을 걷는다.
이 작품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사물의 호흡이다. 잠자리도 말을 걸 수 있는 존재가 되고, 들풀은 발등을 간질이는 장난꾸러기가 되며, 애기똥풀은 동무가 된다. 자연은 배경이 아니라 소년의 혈육이다. 인간과 자연의 경계가 허물어진 자리에서 유년은 비로소 하나의 우주가 된다.
시인은 거대한 사건을 쓰지 않는다. 오이 하나, 주전자 뚜껑의 물 한 모금, 엄마의 머릿수건, 삼태기 하나가 시의 중심을 이룬다. 그 소박한 사물들은 시간이 오래 숙성시킨 기억의 화석이 아니라, 아직도 따뜻한 체온을 지닌 생명의 언어이다. 특히 “땀 냄새, 엄마 냄새”라는 짧은 구절은 수많은 수식어보다 깊다. 어머니는 얼굴보다 냄새로 먼저 기억되는 존재이며, 그 냄새는 한 인간의 생애를 지탱하는 최초의 고향이었음을 말없이 증언한다.
이 시가 아름다운 까닭은 슬픔을 과장하지 않는 절제에 있다. 가난도, 고단함도, 외로움도 큰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외려 평범한 일상의 결 속에서 은은하게 번져 나온다. 그 여백 덕분에 독자는 자신의 어린 시절까지 자연스레 불러내게 된다. 한 사람의 유년이 어느새 모두의 유년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마지막 연은 이 작품 전체를 받치는 주춧돌이다. “그 풍경 속에는 언제나 소년이 있었다.” 이 한 문장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다. 인간은 나이를 먹어도 유년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유년이 평생 인간 안에서 살아간다는 존재의 진실을 드러낸다. 풍경은 사라져도 소년은 사라지지 않는다. 소년은 기억의 주민등록이 아니라 영혼의 본적이다.
우병기 시인의 시어는 화려한 보석을 달지 않는다. 대신 오래 사용한 호미처럼 손에 익고, 장독대의 항아리처럼 깊다. 그의 언어는 빛을 내기보다 체온을 품는다. 독자는 시를 읽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나무 문을 열고 자신의 어린 날로 걸어 들어간다.
이 작품은 단순히 유년을 기록한 시가 아니다. 시간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는 ‘마음의 흙무늬’를 새긴 시이다. 우병기 시인 어린 시절을 추억으로 보존하지 않고 삶의 근원으로 복원한다. 그의 시 속 유년은 지나간 계절이 아니라, 오늘도 인간의 심장 아래에서 맑은 샘물처럼 솟아오르는 ‘영혼의 첫 주소’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한 편의 향토시를 넘어, 인간 존재가 어디에서 시작되는지를 조용히 밝혀 주는 아름다운 기억의 원형질이라 할 만하다. □
■
소년은 아직도 흙길을 걷고 있습니다 ― 우병기 시인께
당신은 시를 쓰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먼저 흙 한 줌을 품어 한 편의 유년을 심는 사람이었습니다.
당신의 시를 펼치면 잠자리가 문장을 날고, 애기똥풀이 노란 숨을 쉬며, 엄마의 머릿수건에서는 저녁 연기보다 따뜻한 시간이 피어납니다.
세월은 수많은 집의 대문을 바꾸었으나 당신의 소년은 아직도 밭둑길을 잃지 않았습니다.
오이 한 입 베어 문 맑은 웃음 하나,
주전자 뚜껑에 담긴 한 모금의 하늘,
삼태기보다 먼저 사람의 마음을 짊어지던 작은 어깨 하나.
그것들은 추억이 아니라 인간이 처음 배우는 사랑의 문법이었습니다.
당신은 어머니를 쓰지 않았습니다. 한 사람의 생애가 끝내 돌아가야 할 고향의 냄새를 쓰셨습니다.
당신의 시를 읽을 때마다 잊었다고 믿었던 어린 날의 흙먼지가 신발 끝에서 다시 일어나고,
가슴 한구석에 잠들어 있던 소년 하나가 말없이 손을 흔듭니다.
좋은 시는 언어를 빛내지 않습니다. 사람을 빛나게 합니다.
당신의 시는 별을 높이 달지 않고 사람의 가슴속에 작은 등불 하나를 켜 둡니다.
그 불빛은 세월이 불어도 꺼지지 않아 오늘도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소년 하나가 천천히 집으로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 길의 이름이, 우병기의 시입니다.
―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