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금 소리 닿는 곳 ㅡ청람 김왕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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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금 소리 닿는 곳
하늘이 잡힐 듯한 그곳 내 고향 시냇물에 발을 담근다
물은 발등을 적시는 것이 아니라 잊고 지낸 세월의 먼지를 먼저 씻어낸다
버드나무 그림자 흔들리는 물결 위로 풍금 앞에 앉아 목청껏 불렀던 동요 한 구절이 은빛 물고기처럼 떠오른다
교실 창문은 작았고 운동장은 넓었다
세상은 손바닥만 했는데 꿈은 하늘 끝보다 멀었다
그때 재 너머 길 하나가 움직인다 내 친구 달수다
등이 휘도록 지게를 지고 소 고삐를 쥔 채 흙먼지와 함께 걸어온다
해 질 녘 들판 냄새가 그 아이의 발목에 매달려 있다
이상하다 분명 수십 년 전 풍경인데 막 논둑을 돌아 나오는 것처럼 선명하다
고개를 들자 달수가 오던 산등성이 너머로 유리창 수천 장을 매단 고층 아파트들이 하늘을 잘게 잘라 세워놓고 있다
논은 주소가 되었고 개울은 복개되어 주차장 아래를 흐른다
메뚜기 뛰던 자리엔 엘리베이터가 오르내린다
달수의 소 울음 대신 차단기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시냇물은 그대로인데 물에 비친 하늘만 달라졌다
한쪽에는 풍금 소리가 떠 있고 한쪽에는 에어컨 실외기 바람이 분다
물속에 담근 두 발 사이로 두 개의 시간이 흘러간다
한 발은 동요를 부르는 소년이고 한 발은 고향을 찾아온 노인이다
달수는 아직도 재 너머에서 걸어오고 있는데 아파트는 자꾸만 높아져 그 아이의 모습이 층수 뒤로 조금씩 가려진다
순간 시냇물 속 하늘이 흔들린다
사라진 것은 달수가 아니라 달수를 알아보던 내 마음의 들판이었음을
물결 하나가 말없이 지나간다.
ㅡ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