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우체통 속에서 잠든 서정춘 시인의 죽간 시

우체통 속에서 잠든 서정춘 시인의 죽간 시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서정춘 시인께서 보내주신 죽간 시 《비밀》

우체통 속에서 잠든 죽간 시

청람 김왕식

어떤 선물은 값으로 기억되지 않는다. 크기로도 기억되지 않는다. 그 선물이 내게 오기까지 건너온 시간과 마음의 결로 기억된다.

며칠 전, 아파트 입구 우편함 속에서 작은 잠 하나를 깨웠다. 죽간 편지였다. 처음에는 보지 못했다. 너무 작았기 때문이다. 손바닥보다도 작은 그것은 광고지들 틈에 끼어 있었고, 문학인 신문 몇 장 아래에서 조용히 숨을 죽이고 있었다. 마치 오래전 길을 잃은 새 한 마리가 처마 밑에 앉아 비를 피하듯, 며칠 동안 그곳에서 숙박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신문을 꺼내는 순간이었다. 무언가 가볍게 따라 나왔다. 그 작은 물체는 마치 “이제야 왔습니까” 하고 말을 거는 듯했다. 반가움이 먼저 손끝에 닿았다. 보낸 이는 서정춘 선생님. 평소 존경해 마지않던 원로 시인이었다.

정성스럽게 묶인 포장을 풀어가는 동안 이상하게도 마음이 먼저 떨렸다. 마치 오래된 나무의 껍질을 벗기듯 조심스러웠다.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것은 대나무였다. 반듯하게 쪼갠 대나무를 불에 그슬려 만든 작은 죽간. 그 위에는 내가 쓴 졸시 《비밀》의 몇 구절이 정갈한 필체로 적혀 있었다.

순간, 시간이 거꾸로 흐르기 시작했다. 종이가 없던 시대. 바람이 종이보다 먼저 세상을 읽던 시절. 선비들이 대나무를 깎아 마음을 새기던 먼 옛날. 《시경》의 노래들이 죽간 사이를 지나고, 묵향이 천 년의 강물을 건너오던 장면들이 눈앞을 스쳐 갔다.

손안에 놓인 것은 대나무 조각 하나였으나, 실은 시간의 화석이었다. 문명의 속도가 너무 빨라 문자조차 화면 속 빛으로만 떠다니는 시대. 버튼 하나로 수천 자가 오가는 세상에서 한 줄의 시를 죽간에 옮겨 적는다는 것은 얼마나 느린 정성인가. 얼마나 깊은 침묵인가. 얼마나 오래된 예의인가.

그 순간 알게 되었다. 시는 종이에 쓰이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새겨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서정춘 선생님은 내 시를 옮겨 적으신 것이 아니었다. 한 후배 문인을 향한 따뜻한 격려를 대나무 결 사이에 심어 보내신 것이었다.

문학은 좋은 문장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좋은 마음을 전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하여, 더욱 벅찼다. 시 한 줄이 칭찬받아서가 아니었다. 평생 언어를 다듬어 온 한 원로 시인의 손길이 내 글 위에 잠시 머물렀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것은 상장보다 귀했고, 훈장보다 무거웠다.

처음에는 가방 속에 넣어 보관하려 했다. 소중한 것이니 잃어버릴까 염려되었다. 곧 생각을 바꾸었다. 보관은 물건에게 하는 일이다. 이 죽간은 품어야 할 것 같았다. 양복 안주머니에 넣었다.

가슴 가까운 곳. 심장이 뛰는 자리. 그곳이 가장 안전한 서랍처럼 느껴졌다. 이따금 손을 넣어 만져보면 대나무의 결이 손끝에 닿는다. 그러면 이상하게도 문학의 처음이 떠오른다.

좋은 글을 쓰고 싶었던 날들. 누군가의 한마디 격려에 밤새 가슴 뛰던 날들. 원고지 한 장 앞에서 세상을 다 얻은 듯 행복했던 날들. 죽간은 대나무로 만들어졌지만 실은 사람의 마음으로 만들어진 물건이었다.

세월이 흘러 대나무는 마를 것이다. 글씨도 언젠가 흐려질지 모른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마음은 쉽게 바래지 않을 것이다.

오늘도 죽간은 양복 안주머니에서 잠들어 있다. 우편함 속에서 며칠을 잠들었던 작은 편지는 이제 내 가슴속에서 오래 깨어 있을 것 같다. 어쩌면 문학이란 것도 그런 것인지 모른다. 한 사람의 마음에서 출발한 작은 문장이 먼 시간을 돌아 다른 사람의 가슴속에서 오래 깨어 있는 일.

서정춘 선생님의 죽간 편지는 대나무에 적힌 글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에게 건네는 가장 오래된 온기였다. □

ㅡ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