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박송희 시인의 《바다 빛》을 읽다 ㅡ청람 김왕식

박송희 시인의 《바다 빛》을 읽다 ㅡ청람 김왕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바다 빛

시인 박송희

계절 흐르는 숲머리 바람결 따라 바다빛 일렁 은빛 파도를 친다

첨탑의 풍량계 잽싼 고동 푸른 바람 아침빛 여울 범상에 내리는 상기

산하에 이는 상서로운 기운 꽃봉 터져 대기로 뻗는 향기 아침결 파고 녹음에 떴다

바다가 숲으로 이사 온 아침 ― 박송희 시인의 《바다 빛》을 읽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바다는 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어떤 날의 바다는 나뭇잎이 되기도 하고, 어떤 날의 바다는 꽃향기가 되기도 하며, 어떤 날의 바다는 숲 속으로 몰래 이사 와 나무들 사이에 푸른 물결을 걸어 두기도 한다.

박송희 시인의 《바다 빛》을 읽다 보면 바다가 해안선을 떠나 산으로 올라간다. 파도는 물가를 버리고 숲으로 들어가고, 바람은 물고기 대신 녹음을 키운다. 시인은 바다를 묘사하는 것이 아니다. 바다가 지닌 푸른 기운을 숲의 혈관 속으로 수혈하고 있다.

첫 행부터 흥미롭다. 계절 흐르는 숲머리 바람결 따라 바다빛 일렁 은빛 파도를 친다 보통 계절은 흐른다. 숲은 서 있다. 시인은 숲마저 흐르게 만든다. 숲은 고정된 풍경이 아니라 계절이라는 강물 위에 떠 있는 거대한 배가 된다. 그 배 위로 바다빛이 출렁인다. 더 놀라운 것은 실제 바다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파도도 없고, 해안도 없고, 갈매기도 없다.

독자는 분명 바다를 본다. 이것이 시의 마술이다. 없는 것을 보이게 하는 힘. 박송희 시인은 풍경을 그리는 화가라기보다 풍경의 체온을 옮기는 연금술사에 가깝다. 특히 “은빛 파도를 친다”는 구절은 녹음이 무성한 숲에 햇살이 부딪히는 순간을 포착한 표현으로 읽힌다. 나뭇잎 위를 건너가는 빛의 떨림이 어느새 파도가 된다. 숲은 육지가 아니다. 잠시 바다가 된다.

둘째 연으로 가면 시의 시선은 하늘 쪽으로 이동한다. 첨탑의 풍량계 잽싼 고동 푸른 바람 아침빛 여울 범상에 내리는 상기 여기서 “풍량계”는 단순한 기계가 아니다. 마치 하늘의 맥박을 재는 청진기 같다. 보이지 않는 바람이 눈에 보이는 숫자로 바뀌는 장소. 시인은 그 풍량계의 움직임을 “고동”이라 부른다. 순간 철제 장치는 생명체가 된다. 첨탑은 가슴이 되고, 풍량계는 심장이 된다. 하늘 전체가 살아 움직이는 거대한 몸으로 변모한다.

박송희 시의 특징은 무생물에 숨을 불어넣는 능력에 있다. 풍경이 정물이 되지 않는다. 빛도 살아 있고, 바람도 살아 있고, 향기도 살아 있다.

셋째 연은 더욱 아름답다. 산하에 이는 상서로운 기운 꽃봉 터져 대기로 뻗는 향기 아침결 파고 녹음에 떴다 꽃은 원래 피는 것이다. 시인은 “터진다”라고 말한다. 개화가 아니라 분출이다. 생명의 내부에 오래 응축된 에너지가 마침내 우주를 향해 개봉되는 순간이다. 향기는 냄새가 아니다. 꽃이 하늘로 보내는 편지다. 대기로 뻗어 나가는 향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 꽃의 언어다. 그 언어가 아침결을 타고 녹음 위에 떠오른다. 마치 숲 전체가 한 송이 거대한 꽃으로 변한 듯하다.

이 시를 읽고 있으면 하나의 낯선 장면이 떠오른다. 밤새 바다가 하늘로 증발했다가 새벽에 숲으로 다시 내리는 광경. 하여, 이 작품의 제목은 단순히 “바다 빛”이 아니다. 바다가 빛이 되는 순간이며, 빛이 숲이 되는 순간이며, 숲이 다시 향기가 되는 순간이다. 물·빛·바람·향기라는 서로 다른 존재들이 경계를 잃고 서로의 몸속으로 흘러 들어간다.

시 전체가 하나의 순환 구조를 이룬다. 박송희 시인은 풍경을 묘사하지 않는다. 풍경들 사이의 혈연관계를 보여준다. 바다와 숲은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바람과 향기도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생명의 깊은 자리에서는 모든 것이 하나의 숨결로 이어져 있다.

《바다 빛》은 짧다. 짧지만 협소하지 않다. 몇 줄 안 되는 언어 속에 숲 하나를 담고, 바다 하나를 담고, 아침 하나를 담아 놓았다. 한 폭의 수채화처럼 보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바다와 숲이 서로의 얼굴을 바꾸어 쓰는 생명의 변주곡變奏曲이다. 박송희 시인은 이 작품에서 바다를 그린 것이 아니다.

숲 속에 숨어 있던 바다의 기억을 푸른 언어로 깨워 놓았다.

ㅡ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