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스티브 잡스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를 사랑했다

스티브 잡스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를 사랑했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모래 한 알에서 우주를 본 사람들 ― 스티브 잡스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를 사랑했다

사람은 대개 눈앞에 있는 것을 본다. 모래는 모래로 보고, 꽃은 꽃으로 본다.

영국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는 달랐다. 모래 한 알에서 세상을 보았고, 들꽃 한 송이에서 천국을 보았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먼저 바라본 사람이다.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블레이크를 사랑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잡스 역시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았다. 대부분 사람은 컴퓨터를 계산하는 기계로 생각했다. 잡스는 컴퓨터 안에서 인간의 상상력을 보았다. 전화기는 통화하는 도구였지만, 그는 그 안에서 새로운 세상을 보았다. 음악은 음반 가게에 진열된 상품이었지만, 그는 주머니 속에 들어갈 미래를 보았다.

블레이크가 모래 한 알 속에서 우주를 발견했듯, 잡스는 작은 전자기기 속에서 새로운 문명을 발견했다.

두 사람은 모두 크기를 믿지 않았다. 작은 것 안에 숨어 있는 무한을 믿었다. 블레이크의 대표 시구는 유명하다.

“모래 한 알에서 세상을 보고, 들꽃 한 송이에서 천국을 보려면, 그대의 손바닥에 무한을 쥐고, 한 시간 속에 영원을 담아라.”

이 구절은 마치 잡스의 삶을 설명하는 문장처럼 들린다. 그는 평생 손바닥 안에 무한을 담으려 했다. 수천 곡의 음악을 주머니에 넣겠다는 생각으로 아이팟을 만들었다. 전화기와 카메라와 컴퓨터를 하나로 묶어 아이폰을 만들었다. 세상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잡스는 이미 그것이 실현된 미래를 보고 있었다.

블레이크가 상상력으로 세계를 확장했다면, 잡스는 기술로 상상력을 현실로 만들었다. 잡스가 남긴 말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 중 하나가 있다.

“기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많은 사람들은 이 말을 제품 디자인 정도로 이해한다. 실은 훨씬 깊은 의미가 있다. 기술은 기계의 언어다. 인문학은 인간의 언어다. 기계만 발전하면 세상은 편리해질 수 있다. 인간에 대한 이해가 함께 자라야 세상은 아름다워진다. 잡스는 바로 그 지점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대학 시절 그는 정규 수업보다 캘리그래피 수업에 더 큰 관심을 가졌다. 당장 취업에 도움이 되는 공부는 아니었다. 돈이 되는 기술도 아니었다. 글자의 모양과 간격, 균형과 아름다움을 배우는 수업이었다. 훗날 그는 그 경험을 매킨토시에 담았다.

세계 최초로 아름다운 글꼴을 가진 컴퓨터가 탄생했다. 사람들은 사소한 일이라 여겼다. 잡스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름다움도 기능만큼 중요하다고 믿었다. 이 또한 블레이크의 시선과 닮아 있다. 꽃 한 송이를 식물로만 보지 않고, 그 안에 숨어 있는 우주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흥미로운 점은 두 사람 모두 시대보다 조금 앞서 걸었다는 사실이다. 블레이크는 생전에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사람들은 그의 그림과 시를 이해하지 못했다.

잡스 역시 수많은 실패를 경험했다. 심지어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쫓겨나기까지 했다. 둘 다 눈앞의 현실보다 자신이 본 가능성을 더 믿었다. 남들이 웃을 때도 믿었고, 남들이 의심할 때도 믿었다. 창조적인 사람들의 공통점이 여기에 있다. 현재를 사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먼저 살아간다.

스티브 잡스가 블레이크를 좋아한 이유는 단순히 시가 아름다워서가 아니다. 블레이크의 시 속에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모래 한 알에서 우주를 발견하는 사람. 작은 것 안에서 거대한 미래를 보는 사람. 눈앞의 현실에 갇히지 않고, 아직 오지 않은 세상을 먼저 상상하는 사람. 블레이크는 시로 그런 삶을 살았다.

잡스는 기술로 그런 삶을 살았다. 한 사람은 언어를 통해 세상을 확장했고, 한 사람은 기술을 통해 세상을 확장했다. 두 사람 모두 세상이 이미 가진 것을 바라본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직 갖지 못한 것을 먼저 꿈꾸었다. 인류의 변화는 늘 그런 사람들로부터 시작되었다.

모래 한 알을 모래 이상으로 바라보는 사람. 들꽃 한 송이를 들꽃 이상으로 바라보는 사람. 세상은 그런 상상력에 의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