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는 자유를 부르고, 역사는 인간을 부른다 ㅡ관타나모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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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타나모의 철학 ― 노래는 자유를 부르고, 역사는 인간을 묻는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Ⅰ. 여는 말 ㅡ 하나의 지명, 두 개의 얼굴
세상에는 이름만 들어도 눈앞에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는 곳이 있다. 설렘을 불러일으키는 이름이 있는가 하면, 듣는 순간 마음 한구석이 무거워지는 이름도 있다. 어떤 지명은 자연을 떠올리게 하고, 어떤 지명은 역사를 환기하며, 또 어떤 지명은 인간의 양심을 향해 오래도록 질문을 던진다. 관타나모(Guantánamo)는 그 모든 의미를 동시에 품고 있는 매우 특별한 공간이다. 하나의 지명이 이처럼 서로 다른 얼굴을 지닌 사례는 세계사에서도 흔치 않다.
관타나모는 본래 쿠바 남동부의 아름다운 만이다. 에메랄드빛 바다는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고, 야자수는 바람을 따라 흔들리며, 갈매기는 드넓은 하늘을 자유롭게 가른다. 자연은 국경도 모르고, 이념도 모르며, 인간이 만들어 놓은 경계 또한 알지 못한다. 파도는 어느 나라의 국기에도 경례하지 않고, 바람은 어느 민족만을 위해 불지 않는다. 자연은 언제나 인간보다 넓고, 인간보다 오래된 질서를 품고 있다.
그 아름다운 바다를 배경으로 울려 퍼지는 노래가 바로 〈관타나메라〉이다. 기타 선율을 타고 흐르는 이 노래는 한때 소박한 사랑 노래였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진실과 자유, 인간의 존엄과 조국에 대한 사랑을 노래하는 세계인의 노래가 되었다. “나는 진실한 사람이다.”라는 가사는 한 개인의 고백을 넘어 인간이 지녀야 할 가장 근본적인 가치가 무엇인지를 들려준다. 하여, 이 노래는 언어와 국경을 넘어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평화와 희망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같은 이름 아래에는 전혀 다른 풍경이 존재한다. 철조망과 감시탑, 무장한 경계병, 자유를 제한받는 공간으로 알려진 관타나모 수용소이다. 이곳은 국제사회에서 국가안보와 인권, 정의와 공포가 첨예하게 맞부딪힌 상징적인 장소가 되었다. 푸른 바다와 자유를 노래하는 선율이 들려오는 같은 공간에, 인간의 자유를 제한하는 시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역사의 깊은 아이러니를 보여 준다.
바로 이 지점에서 관타나모는 단순한 지명이기를 멈춘다. 하나의 장소는 두 개의 역사를 품고, 두 개의 역사는 서로 다른 인간관을 드러낸다. 하나는 자유를 노래하는 인간의 목소리이고, 다른 하나는 두려움 속에서 안전을 선택한 인간의 역사이다. 이 상반된 두 얼굴은 우리에게 한 가지 물음을 던진다. 인간은 어디까지 자유를 지킬 수 있는가. 국가는 어디까지 안전을 위해 인간의 권리를 제한할 수 있는가. 문명은 공포 앞에서도 인간다움을 끝까지 지켜 낼 수 있는가.
관타나모는 더 이상 쿠바의 한 지명이 아니다. 그것은 자유와 안전, 국가와 개인, 권력과 양심, 정의와 인간성 사이에서 끊임없이 균형을 찾아야 하는 현대 문명의 자화상이다. 이 글은 관타나모라는 하나의 이름 속에 공존하는 노래와 철조망, 희망과 두려움, 자유와 통제의 의미를 함께 성찰하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를 다시 묻고자 한다.
Ⅱ. 관타나메라가 부르는 인간
‘Guantanamera’는 스페인어로 ‘관타나모의 여인’을 뜻하는 쿠바의 전통 민요이다. 처음에는 한 여인을 향한 소박한 사랑 노래에 지나지 않았다. 일상의 기쁨과 그리움을 담은 민중의 노래였던 이 노래는 쿠바의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인 호세 마르티의 시가 더해지면서 전혀 다른 차원의 생명을 얻게 되었다. 한 지역의 민요는 한 민족의 노래가 되었고, 다시 인류의 양심을 일깨우는 세계인의 노래로 거듭났다.
“나는 진실한 사람이다.”
호세 마르티의 이 첫 구절은 시 한 편의 시작이면서 동시에 한 인간의 선언이다. 그것은 자신이 정직한 사람이라는 단순한 자기소개가 아니다. 인간은 권력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로 존재한다는 고백이며, 자유는 무력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양심에서 비롯된다는 철학적 선언이다. 이 짧은 문장은 시대를 뛰어넘어 인간 존재의 본질을 응축하고 있다.
노래는 칼을 들지 않는다. 총을 겨누지도 않는다. 상대를 굴복시키려 하지도 않는다. 다만 사람의 마음 가장 깊은 곳으로 스며들어 오래 잠들어 있던 양심을 흔든다. 그래서 음악은 명령하지 않아도 사람을 움직이고, 문학은 강요하지 않아도 인간을 변화시킨다. 총칼이 두려움으로 사람을 복종시킨다면, 노래는 사랑으로 사람을 하나 되게 한다. 이것이 예술이 가진 가장 위대한 힘이다.
관타나메라의 선율은 단순하면서도 맑다. 누구나 따라 부를 수 있을 만큼 쉽지만, 그 안에 담긴 정신은 결코 가볍지 않다. 기타 한 대와 사람의 목소리만으로도 국경을 넘어 수많은 사람의 가슴을 울리는 까닭은, 그 노래가 특정한 이념이나 정치적 구호를 앞세우지 않고 인간의 가장 보편적인 가치를 노래하기 때문이다. 자유를 사랑하고, 진실을 지키며, 조국을 아끼고, 이웃과 평화를 나누려는 마음은 어느 시대, 어느 민족에게나 공통된 인간의 언어이다.
문학과 음악은 언어보다 먼저 인간을 이해한다. 국적이 달라도, 피부색이 달라도, 사용하는 말이 달라도 한 곡의 노래 앞에서는 같은 감동을 나눈다. 멜로디는 국경을 넘고, 시는 시대를 건너며, 진실은 인간과 인간 사이를 잇는 가장 오래된 다리가 된다. 그래서 관타나메라는 쿠바만의 노래가 아니라 인류 모두의 노래가 되었다.
오늘날 세계는 갈등과 분열을 반복하고 있다. 국가는 서로를 경계하고, 이념은 사람을 편으로 나누며, 이해관계는 공동체를 흔든다. 이러한 시대일수록 관타나메라가 들려주는 메시지는 더욱 깊은 울림을 갖는다. 인간은 먼저 한 나라의 국민이기 이전에 한 사람이며, 어떤 이념보다 앞서 존엄을 지닌 존재라는 사실이다. 문학이 인간을 이야기하고, 음악이 인간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국 관타나메라는 한 편의 민요를 넘어 인간의 본질을 노래하는 철학이 되었다. 진실은 자유를 낳고, 자유는 평화를 지향하며, 평화는 인간을 더욱 인간답게 만든다. 그래서 이 노래는 시대가 바뀌어도 사라지지 않는다. 총성과 포성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수는 있어도, 인간의 양심을 끝까지 살아 있게 하는 것은 언제나 한 편의 시와 한 곡의 노래이기 때문이다.
Ⅲ. 관타나모 수용소가 남긴 질문
그러나 같은 이름 아래에는 또 하나의 관타나모가 존재한다. 푸른 바다와 기타 선율이 흐르는 공간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또 다른 세계가 있다. 그곳은 국가안보라는 이름 아래 인간의 자유가 제한된 장소이며, 현대 문명이 스스로를 시험한 역사적 현장이다. 같은 하늘 아래, 같은 바람이 불고, 같은 파도가 밀려오지만 한쪽에서는 노래가 울려 퍼지고 다른 한쪽에서는 침묵이 깊어진다. 이 극명한 대비는 관타나모를 단순한 지명이 아니라 문명의 양심을 비추는 거울로 만들었다.
2001년 9·11 테러는 세계사의 흐름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뉴욕의 무너진 빌딩은 수많은 생명을 앗아갔을 뿐 아니라 인류의 심장에 깊은 공포를 새겨 넣었다. 그날 이후 세계는 이전과 같은 세계가 아니었다. 안전은 최고의 가치가 되었고, 자유는 때때로 그 뒤편으로 밀려났다. 공항 검색은 강화되었고, 감시는 일상이 되었으며, 테러와의 전쟁은 국경을 넘어 새로운 국제질서를 형성하였다. 사람들은 자유를 조금 포기하더라도 안전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이 현실적인 선택이라고 믿기 시작했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해야 한다. 그것은 국가가 존재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이다. 국민을 위험으로부터 지키지 못하는 국가는 존재의 의미를 잃는다. 그러나 동시에 국가는 법을 지켜야 하며, 인간의 존엄과 기본권을 보장해야 할 의무도 함께 가진다. 안전과 자유는 서로 대립하는 가치가 아니라 함께 지켜야 할 문명의 두 기둥이다. 관타나모 수용소는 바로 이 두 기둥이 정면으로 충돌한 상징적 공간이었다.
이 때문에 관타나모를 둘러싼 평가는 지금까지도 엇갈린다. 누군가는 그것이 수많은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말한다. 국가는 테러를 막기 위해 신속하고 강력한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으며, 관타나모는 그러한 현실적 필요 속에서 탄생한 시설이라는 주장이다. 반면 또 다른 이는 그곳을 현대 문명이 남긴 가장 깊은 상처 가운데 하나로 바라본다. 정식 재판 없이 장기간 구금되고, 인권 침해 논란이 이어졌다는 사실은 인간의 존엄이 국가안보 앞에서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고 지적한다.
양쪽 주장에는 모두 나름의 논리가 존재한다. 그래서 관타나모의 문제는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 주는 일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진정한 질문은 그보다 훨씬 깊은 곳에 있다. 인간은 두려움 앞에서 어디까지 자신의 원칙을 지킬 수 있는가. 공포가 커질수록 법은 얼마나 쉽게 예외를 허용하게 되는가. 예외가 반복될 때 그것은 또 다른 기준이 되고, 기준은 어느새 문명의 새로운 일상이 되지 않는가.
역사를 돌아보면 문명은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두려움 때문에 더 크게 흔들린 경우가 많았다. 두려움은 사람의 이성을 흐리게 하고, 공포는 양심보다 빠르게 결정을 내리게 만든다. 위기의 시대일수록 사람들은 강한 지도자와 강한 권력을 원한다. 그 과정에서 자유는 조금씩 줄어들고, 인권은 때때로 사치처럼 여겨진다. 바로 그 순간 문명은 가장 위험한 갈림길에 선다. 힘이 법을 대신하기 시작하면 정의는 약해지고, 공포가 양심보다 앞서기 시작하면 인간은 상대를 한 사람의 생명이 아니라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게 된다.
관타나모 수용소는 하나의 시설이 아니라 하나의 질문이다. 국가는 어디까지 강해질 수 있는가. 문명은 어디까지 인간을 보호해야 하는가. 자유와 안전은 어떻게 함께 지켜질 수 있는가. 이 질문은 특정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사회가 끊임없이 마주해야 하는 과제이다. 결국 관타나모가 역사에 남긴 가장 큰 유산은 철조망도, 감시탑도 아니다. 공포가 인간의 양심보다 앞서기 시작할 때 문명은 어디까지 흔들릴 수 있는가라는, 끝내 외면할 수 없는 질문 그 자체이다.
Ⅳ. 노래와 수용소 사이에서
같은 관타나모. 같은 하늘 아래 같은 바다가 펼쳐져 있고, 같은 바람이 야자수를 흔들며 지나간다. 갈매기는 어느 곳을 향해서도 차별 없이 날아오르고, 파도는 철조망 앞에서도 멈추지 않는다. 자연은 두 개의 관타나모를 구별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의 공간을 전혀 다른 의미로 나누어 놓았다.
한쪽에서는 기타가 울리고, 다른 한쪽에서는 쇠문이 닫힌다. 한쪽에서는 “나는 진실한 사람이다.”라는 노래가 사람들의 입술을 타고 세계로 번져 간다. 다른 한쪽에서는 이름 대신 번호가 불리고, 얼굴보다 기록이 먼저 관리된다. 하나는 자유를 노래하는 공간이고, 다른 하나는 자유가 제한되는 공간이다. 같은 지명 안에 이처럼 상반된 두 세계가 공존한다는 사실은 현대 문명이 안고 있는 가장 깊은 역설 가운데 하나이다.
인간은 언제부터 사람을 이름이 아니라 대상으로 부르기 시작했는가. 이 질문은 관타나모만의 질문이 아니다. 역사 속에서 전쟁이 일어날 때마다 사람은 먼저 상대의 이름을 지웠다. 이름을 지운 자리에 적이라는 단어를 남겼고, 얼굴을 지운 자리에 혐의를 기록했다. 이름이 사라지는 순간 공감도 함께 사라진다. 상대는 더 이상 한 사람의 생명이 아니라 제거하거나 관리해야 할 대상으로 변한다.
번호는 관리하기 쉽다. 숫자는 감정을 요구하지 않는다. 행정은 번호를 통해 효율을 얻는다. 그러나 이름은 다르다. 이름은 기억을 요구하고, 관계를 불러오며, 인간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우리는 그 이름 뒤에 서 있는 부모를 떠올리게 되고, 가족을 생각하게 되며, 어린 시절과 꿈, 눈물과 기다림까지 함께 마주하게 된다. 이름은 존재를 확인하는 가장 오래된 언어이며, 인간 존엄의 첫 번째 표지이다.
철학자들이 인간을 ‘인격’이라 부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격은 번호로 환산될 수 없고, 통계로 완전히 설명될 수도 없다. 사람은 데이터가 아니며, 하나의 사건으로 규정될 수 있는 존재도 아니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누구나 변화할 가능성을 품고 살아간다. 문명은 바로 그 가능성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때 비로소 문명이라 불릴 수 있다.
관타나메라의 노래는 그래서 더욱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그 노래는 사람을 다시 이름으로 불러 준다. 진실한 사람,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 조국을 그리워하는 사람, 평화를 꿈꾸는 사람으로 인간을 회복시킨다. 노래는 국적을 묻지 않고, 이념을 따지지 않으며, 피부색을 구별하지 않는다. 오직 인간이라는 하나의 이름만을 기억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 역시 이 질문에서 자유롭지 않다. 인터넷에서는 사람을 이름보다 직업이나 정치적 성향으로 먼저 규정하고, 사회는 종종 낙인 하나로 한 사람의 생애를 판단하려 한다. 편견은 이름을 지우고, 혐오는 얼굴을 가린다. 그 순간 작은 관타나모는 먼 쿠바가 아니라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만들어질 수 있다. 문명은 거대한 건축물이나 눈부신 과학기술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한 사람의 이름을 끝까지 존중하려는 마음, 반대편에 선 사람에게도 인간의 존엄을 인정하려는 태도, 그것이 문명의 품격을 결정한다. 결국 관타나모가 인류에게 남긴 가장 깊은 교훈은 철조망의 존재가 아니라, 철조망 너머에도 이름을 가진 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경고이다.
그래서 관타나메라는 단순한 민요가 아니다. 그것은 잃어버린 이름을 다시 불러 주는 노래이며, 인간을 다시 인간으로 회복시키는 양심의 노래이다. 문명이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더 많은 번호를 만들어 내는 일이 아니라, 더 많은 이름을 기억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Ⅴ. 문명의 품격
강한 국가는 무기를 많이 가진 나라가 아니다. 경제력이 크고 군사력 막강하다는 사실만으로 문명의 수준을 판단할 수는 없다. 진정한 강함은 힘을 사용할 수 있는 능력보다, 그 힘을 절제할 수 있는 품격에서 드러난다. 분노할 이유가 있어도 법을 앞세우고, 보복할 명분이 있어도 인간의 존엄을 먼저 생각하는 나라가 성숙한 국가이다. 힘은 누구나 가질 수 있지만, 절제는 오랜 문명이 길러 낸 지혜이기 때문이다.
강한 사람 역시 다르지 않다. 상대를 제압하는 사람이 강한 것이 아니라, 상대를 미워할 이유가 충분해도 인간에 대한 마지막 존중만큼은 놓지 않는 사람이 진정 강한 사람이다. 자신의 감정을 이기는 일이 타인을 이기는 일보다 어렵고, 복수의 유혹을 이겨 내는 일이 승리보다 더 큰 용기일 때가 많다. 문명은 바로 그러한 절제 위에서 자라난다.
관타나모는 어느 한 국가의 정책만을 평가하기 위한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현대 문명 전체를 향해 던져진 질문이며, 동시에 우리 각자의 삶을 비추는 거울이다. 우리는 관타나모를 먼 나라의 이야기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인간을 판단하고 배제하는 방식은 거대한 국제정치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우리의 일상에서도 놀랄 만큼 쉽게 반복된다. 가정에서도 그렇다. 한 번의 실수로 자녀에게 ‘문제아’라는 이름을 붙이고, 배우자의 잘못 하나를 그의 전부인 양 단정할 때가 있다. 직장에서는 한 번의 실패를 이유로 무능한 사람이라는 낙인을 찍기도 한다. 사회에서는 출신과 학력, 이념과 지역, 세대와 직업을 기준으로 편을 나누고, 서로를 이해하기보다 먼저 판단하려 한다.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보다 이미 만들어 놓은 틀 안에 가두는 일이 너무도 익숙해졌다.
낙인은 사람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가두는 언어이다. 한 사람의 생애는 수많은 선택과 경험으로 이루어져 있는데도 우리는 단 한 사건, 단 한 장면만으로 그를 규정하려 한다. 그렇게 이름은 사라지고 꼬리표만 남는다. 대화는 끊어지고 편견이 대신 자리를 차지한다. 상대의 이야기를 듣기도 전에 결론을 내려 버리는 순간, 인간과 인간 사이의 다리는 무너지기 시작한다.
관타나모가 우리에게 남긴 가장 깊은 경고도 여기에 있다. 철조망은 반드시 철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편견도 철조망이 되고, 혐오도 철조망이 되며, 선입견 또한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가르는 보이지 않는 울타리가 된다. 눈에 보이지 않을 뿐, 마음속 철조망은 실제의 철조망보다 더 오래 사람을 가두기도 한다.
거대한 관타나모는 쿠바에 있지만, 작은 관타나모는 우리의 마음속에서도 언제든 만들어질 수 있다. 상대를 이해하기보다 먼저 심판하려는 마음, 다른 의견을 적대시하는 태도, 용서보다 배제를 선택하는 습관은 모두 작은 관타나모의 시작이다. 문명은 이러한 본능을 얼마나 절제하느냐에 따라 그 품격이 결정된다.
문명의 수준은 높은 빌딩이나 첨단 과학기술이 아니라 가장 약한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가에서 드러난다. 힘없는 사람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고, 반대편에 선 사람에게도 인간의 존엄을 인정하며, 다름 속에서도 대화를 포기하지 않는 사회야말로 진정 성숙한 문명이라 할 수 있다. 관타나모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힘을 가졌을 때 무엇을 선택하는가. 지배인가, 절제인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곧 한 사람의 품격이며, 한 사회의 문명 수준을 결정하는 기준이 된다.
Ⅵ. 맺음말 ㅡ 인간은 무엇으로 인간인가
노래는 자유를 부른다. 철조망은 안전을 말한다. 현대 문명은 이 두 가치 사이에서 끊임없이 균형을 찾아가는 긴 여정을 이어 왔다. 자유만을 절대시하면 공동체는 불안에 흔들릴 수 있고, 안전만을 앞세우면 인간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유를 잃어버린다. 안전 없는 자유는 혼란으로 흐를 수 있으며, 자유 없는 안전은 결국 거대한 감옥으로 변할 위험을 안고 있다. 문명이 성숙하다는 것은 이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일이 아니라, 어느 하나도 포기하지 않으려는 끊임없는 성찰과 절제의 과정이다.
관타나모는 우리에게 단순한 역사적 사건을 설명하지 않는다. 하나의 장소를 통해 인간과 국가, 자유와 질서, 정의와 공포가 어떻게 충돌하는지를 보여 준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공간이 인류에게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끝없이 되풀이되는 하나의 질문을 남긴다.
인간은 무엇으로 인간인가. 이 질문은 국제정치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 지도자만 답해야 하는 문제도 아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삶 속에서 매일 새롭게 마주하는 질문이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우리는 얼마나 인간을 인간으로 대하고 있는가.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지는 않는가. 편견 때문에 한 사람의 이름보다 꼬리표를 먼저 보고 있지는 않은가. 관타나모는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끊임없이 되살아나는 양심의 물음이다.
그 질문 앞에서 호세 마르티의 시는 한 세기가 넘도록 변함없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나는 진실한 사람이다.”
이 한 문장은 관타나메라의 첫 소절이면서 인간 문명의 마지막 희망이기도 하다. 진실은 총보다 오래 살아남고, 양심은 권력보다 깊으며, 노래는 철조망보다 멀리 퍼져 나간다. 무력은 사람의 몸을 제압할 수 있지만, 진실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문학과 음악이 시대를 초월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것은 인간을 이념보다 먼저 바라보고, 국경보다 넓게 품으며, 승리보다 존엄을 소중히 여기기 때문이다.
아마도 인간은 권력으로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니다. 국가도, 이념도, 승리도 인간을 완성하지 못한다. 진실을 잃지 않는 양심, 타인의 존엄을 끝까지 인정하려는 마음, 자신의 힘을 절제할 줄 아는 지혜, 자유와 정의를 함께 품으려는 용기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문명의 품격 역시 눈부신 과학기술이나 거대한 군사력이 아니라 가장 약한 사람에게 베푸는 존중 속에서 비로소 드러난다.
언젠가 관타나모의 철조망은 역사 속으로 사라질 수도 있다. 군사기지도, 수용소도 시간 앞에서는 영원할 수 없다. 그러나 관타나메라의 노래는 여전히 사람들의 입술에서 불릴 것이다. 그 노래는 자유를 향한 노래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양심을 깨우는 노래이며, 시대가 바뀌어도 인류에게 같은 질문을 되풀이할 것이다.
인간은 끝내 인간으로 남을 수 있는가. 문명이 앞으로도 지켜야 할 가장 소중한 유산은 영토도, 권력도, 승리도 아니다. 한 사람의 이름을 끝까지 이름으로 불러 주는 마음, 인간을 어떠한 상황에서도 인간으로 대하려는 양심이다. 그 양심이 살아 있는 한 관타나메라의 노래는 멈추지 않을 것이며, 인류의 문명 또한 아직 희망을 잃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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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타나메라를 들으며 ― 관타나모의 철학
바다는 죄를 기억하지 않았다
오늘도 파도는 철조망 앞까지 와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푸르게 부서졌다
한쪽에서는 기타 한 줄이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
관타나메라 진실한 사람 하나가 세상을 믿고 싶어 노래를 심었다
한쪽에서는 쇠문 하나가 사람의 이름을 지웠다
번호가 이름을 대신했고 침묵이 대답을 대신했다
바다는 둘을 함께 품었다
노래도 철조망도 자유도 두려움도
인간은 얼마나 많은 벽을 세웠는가
국경을 세우고 사상을 세우고 증오를 세우고
끝내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보이지 않는 감옥을 세웠다
노래는 그 벽을 넘으려 했고 총은 그 벽을 지키려 했다
역사는 총성이 더 컸다고 기록했지만 인류는 노래를 더 오래 기억했다
강한 것은 무기가 아니었다
끝내 사람의 이름을 이름으로 불러 준 한 사람의 양심이었다
언젠가 철조망은 녹슬어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감옥도 권력도 한 시대를 지나면 역사가 된다
허나 한 줄의 노래는 바람이 되어 또 다른 사람의 가슴으로 건너간다
시방 관타나메라는 세상 끝에서 낮게 묻는다.
인간은 끝내 인간으로 남을 수 있는가
ㅡ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