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무게, 침묵의 품격 ㅡ청람 김왕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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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무게, 침묵의 품격
사람이 모이는 자리에는 늘 다양한 풍경이 있다. 웃음을 많이 짓는 사람도 있고, 고개를 끄덕이며 귀를 기울이는 사람도 있으며, 자신의 생각을 쉼 없이 풀어놓는 사람도 있다. 모두 같은 공간에 앉아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는 모습은 조금씩 다르다.
모임을 오래 지켜보면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대개의 자리에서는 한 사람이 대화의 대부분을 이끌어 간다.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아는 사람을 말하고, 세상사를 논하며 분위기를 주도한다. 그 순간만 보면 그는 가장 중심에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모두가 그의 말을 듣고 있으니 인기와 영향력을 동시에 가진 듯하다.
모임이 끝난 뒤의 풍경은 의외로 다르다. 사람들은 돌아가는 길에서 조용히 입을 연다.
“오늘도 그분 이야기만 듣고 왔네.”
“조금은 다른 사람에게도 말을 할 기회를 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말을 가장 많이 한 사람이 가장 오래 기억되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그 기억이 반드시 좋은 기억은 아니다. 지나친 말은 공감을 남기기보다 피로를 남긴다.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려 했던 시간이 외려 상대의 마음속에서는 부담으로 남는 경우가 적지 않다.
반면, 말수가 적었던 사람은 이상하리만큼 따뜻하게 기억된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앞세우기보다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들었다. 적절한 순간에 미소를 건네고, 짧은 한마디로 마음을 받쳐 주었다. 그의 말은 길지 않았지만 필요한 곳에 머물렀고, 그의 침묵은 비어 있는 시간이 아니라 상대를 존중하는 공간이 되었다.
사람은 자신의 말을 잘하는 사람보다 자신의 말을 잘 들어 주는 사람에게 더 깊은 신뢰를 느낀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이해받고 싶어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경청은 단순히 소리를 듣는 일이 아니다. 상대의 삶을 받아들이는 일이며, 그 사람의 존재를 귀하게 여기는 태도이다. 귀를 빌려 주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내어 주는 일이다. 그런 사람 곁에서는 누구나 편안해진다. 자신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 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사람은 위로를 얻고 용기를 회복한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했다. 강물도 가장 깊은 곳에서 소리를 낮춘다. 향기 짙은 꽃은 자신을 자랑하지 않는다. 자연은 오래전부터 품격은 높이를 과시하는 데 있지 않고, 낮아질 줄 아는 데 있음을 가르쳐 왔다.
사람도 다르지 않다. 말이 많을수록 자신을 설명하게 되고, 침묵이 깊을수록 상대를 이해하게 된다. 자신을 설명하는 사람보다 상대를 이해하는 사람이 더 오래 존경받는다.
침묵은 무능함이 아니다.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할 말을 아낄 줄 아는 힘이다. 자신의 생각을 잠시 내려놓고 타인의 마음을 먼저 품는 절제이다. 그 절제는 세월이 흐를수록 인품이 되고, 인품은 어느새 그 사람의 얼굴이 된다.
많은 사람은 말을 잘하는 기술을 배우려 애쓴다. 설득하는 법, 발표하는 법, 대화를 이끄는 법을 익히려 한다. 물론 그것도 필요하다. 더 중요한 공부는 듣는 법이다. 상대가 말을 마칠 때까지 기다리는 인내, 끼어들지 않는 배려, 자신의 경험으로 상대의 이야기를 덮지 않는 겸손이야말로 사람을 빛나게 하는 진정한 언어의 품격이다.
모임이 끝난 뒤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화려한 언변보다 따뜻한 눈빛 하나가 더 오래 남는다. 긴 설명보다 고개를 끄덕여 주던 한순간의 공감이 더 선명하게 기억된다. 사람은 자신을 가장 많이 말한 사람을 기억하기보다, 자신의 말을 가장 깊이 들어 준 사람을 잊지 못한다.
말과 존중은 같은 방향으로 걷지 않는다. 자신을 드러내는 말이 많아질수록 존중은 조금씩 멀어질 수 있다. 반대로 상대를 품는 경청이 깊어질수록 존중은 자연스럽게 가까이 다가온다. 인생의 품격은 얼마나 많이 말했는가로 결정되지 않는다. 얼마나 깊이 들었는가가 한 사람의 그릇을 말해 준다.
참된 리더는 가장 오래 말하는 사람이 아니다. 가장 오래 들어 주는 사람이다. 말과 존중은 때로 반비례한다. 경청과 존경은 오래도록 정비례한다.
ㅡ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