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는 또 다른 나의 얼굴이다 ㅡ청람 김왕식
그림자는 또 다른 나의 얼굴이다 2026.06.30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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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는 또 다른 나의 얼굴이다
사람들은 빛을 좋아한다. 환한 곳으로 걸어가려 하고, 성공과 칭찬, 박수와 영광을 인생의 목표처럼 여긴다. 누구나 자신의 밝은 얼굴을 세상에 보여 주고 싶어 한다. 그런데 빛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그림자가 함께 있다. 그림자는 빛의 반대편이 아니다. 빛이 존재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또 하나의 나이다.
나의 그림자는 아픔과 억압, 질곡의 시간 속에서 말없이 웅크리고 있던 또 다른 자화상이다. 누구에게도 보여 주지 못한 눈물,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상처, 오래도록 가슴 밑바닥에 묻어 둔 외로움이 그림자의 얼굴을 이루고 있다.
우리는 살아오면서 많은 것을 감춘다. 강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울음을 숨기고, 괜찮아 보여야 한다는 이유로 상처를 덮는다. 웃음 뒤에 슬픔을 감추고, 성공 뒤에 불안을 숨긴다. 그렇게 감춰진 시간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모두 그림자가 되어 삶의 뒤편을 따라 걷는다. 사람은 그림자를 버릴 수 없다. 그림자를 없애려 애쓸수록 빛에서도 멀어진다.
외려 자신의 그림자를 오래 바라본 사람일수록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는 깊이를 갖게 된다. 상처를 통과한 사람만이 상처 입은 사람의 침묵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나무의 나이테도 상처가 만든 기록이다. 강한 바람을 견디고, 혹독한 겨울을 통과한 시간이 켜켜이 쌓여 거목이 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삶의 균열은 인간을 무너뜨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은 품을 가진 존재로 빚어 간다.
그림자는 부끄러움이 아니다. 살아냈다는 증거이다. 견뎌 냈다는 훈장이다. 눈부신 햇살만으로는 한 사람의 생애를 설명할 수 없다. 어둠을 지나온 시간까지 함께 품을 때 비로소 한 인간의 얼굴은 온전해진다.
오늘도 그림자는 말없이 내 곁을 걷는다. 앞으로 나설 때도 있고, 뒤로 물러설 때도 있다. 때로는 길게 늘어지고, 때로는 발밑으로 숨어든다. 변하는 것은 그림자의 길이일 뿐, 그림자는 한 번도 나를 떠난 적이 없다.
이제사 알 것 같다. 내가 사랑해야 할 사람은 세상이 칭찬하는 내가 아니라, 오래도록 아픔과 억압과 질곡 속에서도 묵묵히 나를 기다려 준 그림자 속의 나라는 것을.
그림자를 끌어안는 순간, 비로소 삶은 둘로 나뉘지 않는다. 빛과 어둠이 화해한 자리에서, 인간은 가장 자기다운 얼굴을 만나게 된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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