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카엘 세르베투스의 생애와 가치철학 ㅡ청람 김왕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세르베투스
■
진실을 말할 것인가, 침묵할 것인가 ― 미카엘 세르베투스의 생애와 가치철학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Ⅰ. 여는 말
ㅡ 진실은 왜 인간을 외롭게 만드는가
인간의 역사는 진실을 발견한 사람들의 역사이기도 하고, 진실을 두려워한 시대의 역사이기도 하다.
새로운 진실은 언제나 기존 질서와 충돌하였다. 새로운 사상은 오래된 권위를 흔들었고, 새로운 질문은 익숙한 신념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역사는 그때마다 한 사람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다.
침묵할 것인가. 아니면 말할 것인가.
침묵은 생명을 지켜 준다. 말은 때때로 생명을 빼앗는다. 그럼에도 어떤 사람들은 침묵보다 진실을 선택하였다.
스페인 출신의 의사이자 신학자였던
세르베투스는 권력을 탐한 사람이 아니었다.
교회를 무너뜨리려 한 혁명가도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양심 앞에서 진실하길 원했던 한 사람의 학자였다.
그의 삶은 성공의 연대기가 아니다.
질문의 연대기이다.
그는 세상이 이미 답을 내린 문제를 다시 물었다. 그 질문은 그를 화형대로 이끌었다.
오늘 우리는 세르베투스를 종교개혁의 희생자로만 기억하기 쉽다. 그러나 그의 삶은 특정 시대의 종교 갈등을 넘어선다. 그는 인간의 자유, 양심, 학문의 독립, 진실을 향한 책임이라는 보편적 문제를 자신의 생애로 증명한 인물이다.
그가 남긴 가장 큰 유산은 하나의 교리가 아니다. 진실은 생명보다 소중할 수 있는가.
세르베투스의 생애는 그 질문에 대한 긴 대답이었다. 1500년 무렵 스페인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남다른 지적 호기심을 보였다.
법학을 공부하였고, 고전어를 익혔으며, 성서를 원어로 탐독하였다. 당시 유럽은 거대한 전환기였다. 그는 인간 이성을 일깨웠고, 은 신앙의 본질을 다시 묻게 만들었다.
수백 년 동안 절대적 권위를 누려 온 교회는 거센 도전을 받고 있었다. 많은 사람은 새로운 시대가 자유를 가져올 것이라 기대하였다. 그러나 역사는 언제나 복잡하다. 기존 권력이 약해지면 새로운 권력이 등장한다. 교황의 권위가 흔들리자 개혁자들의 권위가 세워졌다. 사람은 권위를 무너뜨리는 일에는 익숙하지만, 권위 없이 살아가는 일에는 익숙하지 못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세르베투스는 누구보다 철저한 질문을 던졌다. 그는 누구의 말도 무조건 따르지 않았다.
교황도 절대적 권위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종교개혁자 역시 오류로부터 자유롭지 않다고 믿었다. 그에게 최종 권위는 인간이 아니라 진리였다. 진리는 다수결로 결정되지 않는다. 권력이 승인한다고 진리가 되는 것도 아니다. 오랜 전통이 있다고 반드시 옳은 것도 아니다. 진리는 언제나 끊임없는 탐구 속에서 더욱 선명해진다. 이 믿음은 세르베투스를 시대와 충돌하게 만들었다. 그는 교리를 반복하기보다 성서를 다시 읽었다. 남이 내린 결론을 암기하기보다 스스로 질문하였다. 그 질문은 결국 삼위일체 교리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고, 당시 교회는 물론 종교개혁 진영에도 거센 충격을 주었다.
그는 사람들의 분노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외려 자신의 양심을 속이는 일을 더 두려워하였다. 그는 침묵하지 않았다. 그의 침묵은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그의 말은 생명을 잃게 만들었다. 세르베투스는 끝내 말을 선택하였다. 그것은 고집 때문이 아니었다. 양심은 침묵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의 우리는 그를 바라보며 다시 질문하게 된다.
진실은 언제 말해야 하는가. 침묵은 언제 지혜가 되고, 언제 비겁함이 되는가.
세르베투스는 자신의 삶으로 한 가지 사실을 남겼다. 진실은 사람을 인기 있게 만들지 않는다. 때로는 고독하게 만든다. 진실은 사람을 안전하게 만들지 않는다. 때로는 모든 것을 잃게 만든다. 그럼에도 인류의 문명은 진실을 말한 소수의 용기 위에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세르베투스는 그 용기의 한 이름이었다. 그는 승리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양심은 패배하지 않았다. 육신은 불길 속에서 사라졌지만, 그의 질문은 외려 불길을 넘어 수백 년 동안 인류의 양심 속에서 살아남았다.
진실은 화형 당할 수 있다. 진실을 향한 질문은 결코 화형 당하지 않는다. 세르베투스의 생애는 바로 그 사실을 증언하는 한 편의 살아 있는 철학이었다.
Ⅱ. 시대를 앞서간 양심 ― 미카엘 세르베투스, 진실과 권력이 충돌한 자리
역사는 한 사람을 평가할 때 흔히 결과를 먼저 본다. 승리한 사람은 영웅이 되고, 패배한 사람은 이단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 역사는 다시 질문한다. 누가 승리했는가가 아니라, 누가 진실에 더 가까이 서 있었는가를. 미카엘 세르베투스의 생애는 바로 그 질문 앞에 놓여 있다.
그는 평생 교회를 무너뜨리려 하지 않았다. 새로운 종교를 세우려는 야망도 없었다. 권력을 차지하려는 정치가도 아니었다. 그는 오직 성서를 더 깊이 이해하려 했고, 인간이 만들어 놓은 교리보다 하나님의 말씀 자체에 더 가까이 가려 했다. 그 시대에는 그것만으로도 위험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 16세기 유럽은 거대한 변혁의 시대였다. 중세의 질서는 흔들리고 있었고, 인쇄술은 지식을 빠르게 퍼뜨렸으며, 르네상스는 인간의 이성과 학문을 새롭게 일깨웠다.
이어 종교개혁이 시작되면서 교황의 절대 권위에도 균열이 생겼다. 사람들은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역사는 하나의 권력이 무너지면 또 다른 권력이 생겨난다는 사실을 자주 보여 준다. 권력은 왕관만 쓰고 나타나지 않는다. 교리의 이름으로도 나타난다. 정의의 이름으로도 나타난다. 심지어 진리의 이름으로도 나타난다.
세르베투스는 바로 그 위험을 보았다. 그는 성서를 원어로 읽었고, 초대 교회의 문헌을 연구하였다. 그 과정에서 그는 삼위일체 교리가 성경보다 후대의 신학적 논쟁 속에서 체계화되었다는 자신의 판단을 세상에 내놓았다.
오늘날에도 신학적 평가는 다양하다. 많은 교회는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반면 역사학자들은 그의 문제 제기가 당시로서는 매우 대담한 학문적 도전이었다는 점에는 대체로 동의한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숨기지 않았다. 1531년, 그는 《삼위일체의 오류에 관하여》를 출간하였다. 이 책은 당시의 종교 질서를 정면으로 흔드는 문제작이었다. 결과는 예상보다 훨씬 거셌다. 가톨릭교회는 그를 위험한 이단으로 규정하였다. 종교개혁 진영도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어느 편에도 속하지 못했다. 어쩌면 진실을 끝까지 탐구하는 사람은 특정 진영 안에 오래 머물기 어려운 존재인지도 모른다.
세르베투스는 도피 생활을 시작하였다. 가명을 사용하며 의학을 공부했고, 프랑스 리옹과 비엔 등지에서 의사로 활동하였다. 그는 뛰어난 의학자이기도 했다. 특히 폐를 거쳐 심장으로 이어지는 혈액의 흐름을 비교적 정확하게 설명하여 훗날 폐순환 연구의 선구자로 평가받게 되었다. 당시에는 그의 의학 연구보다 신학 논쟁이 더 큰 관심을 받았지만, 세월은 그의 학문적 통찰 또한 다시 조명하였다.
진실은 때때로 시대보다 먼저 도착한다. 먼저 도착한 진실은 환영받기보다 의심받는다. 사람들은 익숙한 것을 믿는다. 새로운 진실은 기존 질서를 흔들기 때문이다.
세르베투스는 자신의 사상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종교개혁의 대표적 지도자였던 칼뱅과 오랫동안 편지를 주고받았다. 처음에는 신학적 토론이었다. 차츰 그 대화는 격렬한 논쟁으로 바뀌었다. 두 사람 모두 성서를 사랑했다. 두 사람 모두 진리를 추구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진리에 이르는 길은 전혀 달랐다. 칼뱅은 교회의 질서와 신앙 공동체의 일치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세르베투스는 어떤 권위도 성서 위에 설 수 없다고 생각했다.
결국 두 사람은 화해하지 못했다. 1553년. 세르베투스는 가톨릭교회의 박해를 피해 도망하던 중 제네바에 들어갔다. 그곳은 칼뱅의 영향력이 매우 큰 도시였다.
그는 곧 체포되었다. 재판이 열렸다.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면 그 재판은 종교와 정치, 권력이 서로 분리되지 않았던 시대의 한계를 보여 준다. 당시 유럽에서는 가톨릭과 개신교를 막론하고 이단을 국가와 사회의 질서를 위협하는 존재로 보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었다.
세르베투스는 끝내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지 않았다. 그는 살기 위해 양심을 버리지 않았다. 1553년 10월 27일. 그는 제네바에서 화형을 당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신앙을 굽히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그날 불길 속에서 사라진 것은 한 사람의 육신이었다. 그러나 불은 질문까지 태우지는 못했다. 외려 그 질문은 유럽의 양심을 흔들기 시작했다.
신앙은 강요될 수 있는가. 진리는 권력이 결정하는가. 사람은 자신의 양심 때문에 죽어야 하는가.
세르베투스의 죽음은 종교개혁 진영 내부에서도 깊은 성찰을 불러일으켰다.
후대의 많은 사상가는 그의 죽음을 계기로 종교적 관용과 양심의 자유를 더욱 중요하게 논의하기 시작하였다. 역사는 종종 역설을 만든다. 살아 있는 동안에는 이단으로 불린 사람이, 세월이 흐른 뒤에는 양심의 자유를 상징하는 인물로 기억되기도 한다. 세르베투스 역시 그러한 사람 가운데 한 명이었다. 그는 자신의 생명을 지키지 못했다. 그러나 자신의 양심은 끝까지 지켜 냈다.
생명은 유한하다. 양심은 시대를 넘어 살아남는다. 권력은 한 시대를 지배할 수 있다. 진실은 여러 시대를 건너간다. 세르베투스의 삶은 우리에게 하나의 철학을 남긴다.
침묵은 때로 지혜가 될 수 있다. 말은 때로 무모함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진실을 알고도 침묵해야 하는 순간이 계속된다면, 인간은 자신의 생명은 지킬 수 있을지 모르나, 자신의 영혼만큼은 조금씩 잃어버리게 된다. 세르베투스는 자신의 영혼을 지키기 위해 생명을 내놓았다.
그 선택이 옳았는지에 대한 신학적 평가는 지금도 다양하다. 그러나 자신의 양심 앞에서 끝내 침묵하지 않았던 그의 용기만큼은, 시대를 넘어 많은 사람에게 깊은 성찰을 남기고 있다.
Ⅲ. 진실과 권력 ― 양심은 누구에게 복종해야 하는가
미카엘 세르베투스의 죽음을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흔히 한 사람을 악인으로, 다른 한 사람을 의인으로 나누려 한다. 역사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역사를 흑백으로만 읽는 순간 우리는 사건은 기억할지 모르지만, 시대는 이해하지 못한다.
세르베투스를 이해하려면 그의 시대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16세기 유럽은 오늘날의 민주주의 사회와 전혀 달랐다. 종교는 단순한 신앙이 아니었다. 국가의 질서였고, 사회의 법이었으며, 정치의 근간이었다. 교회의 분열은 곧 국가의 분열을 의미했고, 교리의 혼란은 사회 질서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고 믿었다. 오늘날에는 신앙의 자유가 기본권으로 받아들여진다. 당시에는 그러한 개념 자체가 아직 충분히 자리 잡지 못했다. 가톨릭교회도 이단을 처벌하였다. 종교개혁 진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 이단을 제거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오늘의 기준으로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당시의 시대정신 속에서는 많은 사람이 그것을 정의라고 여겼다. 바로 이 지점에서 역사는 인간에게 또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사람은 시대의 양심을 따라야 하는가. 아니면 자신의 양심을 따라야 하는가. 세르베투스는 자신의 양심을 선택하였다.
칼뱅은 공동체의 질서를 선택하였다. 두 사람 모두 하나님을 섬긴다고 믿었다. 두 사람 모두 진리를 지킨다고 확신하였다. 그런데 결과는 한 사람의 죽음이었다. 이것이 인간의 비극이다. 확신은 신앙을 낳기도 한다. 확신은 폭력을 낳기도 한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순간 인간은 가장 위험해질 수 있다.
에리히 프롬은 이러한 인간의 심리를 깊이 분석하였다. 사람은 자유를 두려워할 때 권위에 의존한다고 하였다. 권위는 생각을 대신해 준다. 양심을 대신해 준다. 책임마저 대신해 준다. 그 순간 사람은 자신의 판단을 멈춘다. 칼뱅 개인을 단순히 이러한 심리로 설명할 수는 없다. 그는 당대의 뛰어난 신학자였고, 종교개혁의 중요한 지도자였다. 그의 사상은 오늘날에도 많은 교회와 신학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동시에 역사학자들은 그 역시 시대의 한계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세르베투스 사건은 그 사실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 준다. 위대한 사상가도 시대의 자녀이다. 탁월한 지성도 시대의 공기를 마시며 살아간다. 그래서 역사의 평가는 찬양만도 아니고 비난만도 아니어야 한다. 이해는 미화가 아니다. 비판은 증오가 아니다. 역사를 읽는다는 것은 인간을 이해하는 일이다.
세르베투스는 진실을 향한 열정을 품었다. 칼뱅은 질서를 지키려는 책임감을 품었다. 문제는 진실과 질서가 서로 적이 되었다는 데 있었다. 질서 없는 진실은 혼란을 만들 수 있다. 진실 없는 질서는 폭력이 될 수 있다. 문명은 언제나 이 둘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오늘날 민주주의가 소중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민주주의는 완전한 제도가 아니다. 다만 서로 다른 생각이 공존할 수 있도록 만들어 낸 인간의 가장 성숙한 약속 가운데 하나이다. 진실은 토론을 통해 더욱 선명해질 수 있다. 폭력을 통해서는 결코 선명해질 수 없다. 양심은 설득될 수 있다. 강요될 수는 없다. 신앙도 마찬가지이다. 믿음은 마음에서 피어난다. 칼끝에서는 피어나지 않는다. 불길 속에서도 피어나지 않는다. 세르베투스의 화형은 한 사람을 침묵시켰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유럽 사회에 더욱 큰 질문을 남겼다.
과연 인간은 무엇 때문에 살아야 하는가. 생명을 위해 양심을 포기해야 하는가. 양심을 위해 생명을 내놓아야 하는가. 이 질문에는 누구도 쉽게 답할 수 없다. 세르베투스 역시 영웅이 되기 위해 죽음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다만 자신의 양심을 거짓으로 만들 수 없었다.
인간의 생명은 유한하다. 양심은 생명보다 오래 살아남기도 한다. 그래서 역사는 종종 승리한 사람보다 양심을 지킨 사람을 더 오래 기억한다. 세르베투스의 이름이 오늘까지 전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새로운 교회를 세우지 못했다. 거대한 조직도 남기지 못했다. 권력도 얻지 못했다. 남은 것은 단 하나였다. 진실 앞에서 침묵하지 않았던 한 인간의 삶이었다.
그 삶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진다.
진실은 언제 말해야 하는가. 침묵은 언제 지혜가 되는가. 말해야 할 때 침묵하는 것은 과연 평화인가. 아니면 두려움인가.
세르베투스는 정답을 남기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삶을 하나의 질문으로 남겼다. 그 질문은 오백 년이 지난 오늘도 여전히 살아 있다. 우리 시대의 권력은 과거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정치만이 권력이 아니다. 여론도 권력이 될 수 있고, 돈도 권력이 될 수 있으며, 대중의 인기와 사회적 압력도 사람의 양심을 흔드는 권력이 될 수 있다. 그러한 시대일수록 세르베투스의 삶은 더욱 깊은 의미를 갖는다. 양심은 다수결로 결정되지 않는다. 진실은 권력이 임명하지 않는다. 인간은 자신의 양심 앞에서만 끝내 홀로 설 수 있다. 그 외로운 자리에서 시작되는 한 사람의 용기가 때로는 한 시대를 바꾸고, 한 문명을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Ⅳ. 세르베투스가 남긴 유산 ― 화형은 한 사람을 태웠으나, 양심은 태우지 못했다
역사는 때때로 역설로 발전한다. 한 시대가 위험하다고 판단하여 지워 버리려 했던 사상이, 훗날 그 시대를 반성하게 만드는 거울이 되는 경우가 있다. 미카엘 세르베투스의 삶이 바로 그러하다. 1553년 제네바의 화형장은 한 사람의 생애를 끝냈다. 그러나 그날 끝난 것은 그의 생명이었을 뿐이었다.
그가 던진 질문은 외려 그날부터 더욱 멀리 퍼져 나가기 시작하였다. 진실은 불에 타는가. 양심은 권력 앞에서 침묵해야 하는가. 신앙은 강요될 수 있는가. 그 질문들은 유럽의 지성사 속으로 스며들었다. 세르베투스가 죽은 뒤에도 사람들은 그의 주장에 모두 동의하지는 않았다. 삼위일체에 대한 그의 견해는 지금도 대부분의 전통적 기독교에서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나 한 가지는 점차 분명해졌다. 신학적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이 깨달음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수많은 희생과 반성이 쌓이면서 인류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권력은 진실을 독점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신앙은 강요가 아니라 선택이라는 사실도 깨닫기 시작하였다. 양심은 국가나 교회가 대신 결정할 수 없는 인간 존재의 가장 깊은 자리라는 사실도 서서히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훗날 종교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는 현대 인권사상의 토대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세르베투스는 인권운동가가 아니었다. 그는 자유주의 철학자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의 죽음은 자유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 하나의 역사적 계기가 되었다. 역사는 살아 있는 사람보다 죽은 사람에게서 더 많은 것을 배우기도 한다. 세르베투스의 화형은 종교개혁 진영에도 깊은 상처를 남겼다. 개혁은 시작되었지만, 개혁하는 사람들 역시 또 다른 권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후대의 신학자들과 사상가들에게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개혁은 제도를 바꾸는 일만이 아니다. 무엇보다 인간의 마음을 바꾸는 일이어야 한다. 권력을 교체하는 것만으로는 문명이 달라지지 않는다. 권력을 사용하는 방식이 달라질 때 비로소 역사는 앞으로 나아간다. 오늘의 세계는 세르베투스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자유로워졌다. 많은 나라에서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고 있으며, 서로 다른 의견을 말할 권리도 법으로 보호받는다. 그러나 자유가 법으로 보장된다고 해서 언제나 자유가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여전히 침묵을 선택한다. 총칼 때문이 아니다. 고립이 두렵기 때문이다. 비난이 두렵기 때문이다. 관계가 끊어질까 두렵기 때문이다. 시대가 달라질수록 권력도 모습을 바꾼다. 과거에는 왕이 침묵을 명령하였다. 오늘은 여론이 침묵을 강요하기도 한다. 과거에는 종교가 양심을 지배하려 하였다. 오늘은 인기와 성공, 이념과 집단의 논리가 양심을 흔들기도 한다. 겉모습은 달라졌지만 인간의 두려움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세르베투스는 과거의 인물이 아니다.
그는 오늘도 우리에게 묻고 있다. 당신은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진실을 말하는 일을 두려워하는가. 아니면 진실을 외면한 채 살아가는 일을 두려워하는가.
이 질문 앞에서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진실은 언제나 대가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명예를 잃는다. 때로는 관계를 잃는다. 때로는 직장을 잃는다. 세르베투스는 생명까지 잃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언제나 맞서 싸워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침묵에도 지혜가 있다. 말에도 절제가 있다. 중요한 것은 침묵의 이유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침묵하는가. 더 큰 선을 위해 기다리는가. 아니면 두려움 때문에 침묵하는가. 세르베투스는 침묵하지 않았다. 그것이 자신의 양심을 배반하는 일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의 선택은 모든 사람의 선택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그의 삶은 모든 사람에게 하나의 거울은 될 수 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말하는가. 우리는 무엇 때문에 침묵하는가. 말은 진실을 위한 것인가. 자신을 위한 것인가. 침묵은 사랑을 위한 것인가. 비겁함을 감추기 위한 것인가.
세르베투스의 생애는 우리에게 정답을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양심 앞에 스스로를 세워 놓는다. 그 거울 앞에서는 직업도, 명예도, 권력도, 학문도, 신앙도, 모두 하나의 질문으로 모인다.
나는 내 양심 앞에서 정직한 사람인가.
인간의 문명은 거대한 전쟁에서만 발전하지 않았다. 한 사람의 양심이 침묵하지 않았던 순간에도 발전하였다. 한 사람의 질문이 시대를 흔들었고, 한 사람의 용기가 후손들의 자유를 넓혀 주었다. 세르베투스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시대에서는 패배자였다. 역사의 긴 시간 속에서는 양심의 증언자가 되었다. 화형장은 그의 육신을 태웠다. 시간은 그의 질문을 살려 냈다. 권력은 그의 입을 막았다.
역사는 그의 목소리를 되찾아 주었다. 바로 이것이 세르베투스가 인류에게 남긴 가장 큰 유산이다. 진실은 때로 패배한다. 양심은 때로 고독하다. 그럼에도 진실과 양심은 결코 헛되이 사라지지 않는다. 인류의 문명은 언제나 그러한 사람들의 희생 위에서 조금씩 더 인간다운 방향으로 걸어왔기 때문이다.
Ⅴ. 맺음말 ㅡ 진실은 침묵보다 오래 살아남는다
인간의 역사는 권력이 기록한 역사인 동시에 양심이 기록한 역사이기도 하다. 권력은 시대를 지배한다. 양심은 시대를 넘어선다. 권력은 법을 만들 수 있다. 양심은 역사를 만든다. 돌이켜보면 인류의 문명은 수많은 승리자보다 소수의 양심 있는 사람들에 의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그들은 대부분 시대를 앞서간 사람들이었다. 당대에는 위험한 사람으로 불렸고, 이단으로 규정되었으며, 반역자로 몰리기도 하였다. 세월이 흐른 뒤에야 사람들은 그들의 삶을 다시 읽기 시작하였다. 미카엘 세르베투스 역시 그러한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는 새로운 교회를 세우지 않았다. 거대한 종파를 만들지도 않았다. 권력을 얻지도 못했고, 세상의 박수를 받지도 못했다. 외려 도망자의 삶을 살았으며, 끝내 화형대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겉으로 보면 그의 생애는 실패였다. 역사는 그렇게 단순한 계산으로 인간을 평가하지 않는다.
세르베투스가 남긴 것은 조직이 아니라 질문이었다. 교리가 아니라 양심이었다. 승리가 아니라 진실을 향한 용기였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는 죽은 뒤에도 살아남았다. 인간은 흔히 성공한 사람을 기억한다고 말한다. 시간은 성공보다 진실을 더 오래 기억한다. 성공은 시대가 만든다. 진실은 시간이 증명한다. 오백 년이 지난 오늘, 세르베투스를 다시 이야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자신의 생각이 모두 옳다고 주장하려 했던 사람이 아니다. 적어도 자신이 진실이라고 믿는 것을 자신의 양심과 바꾸지는 않겠다고 결심한 사람이었다. 그 결심이 그의 생명을 앗아갔다. 생명은 끝났다. 양심은 끝나지 않았다. 인간은 누구나 살아가는 동안 수없이 선택한다.
말할 것인가. 침묵할 것인가. 순응할 것인가. 거부할 것인가. 편안함을 선택할 것인가. 진실을 선택할 것인가.
거창한 역사의 순간만이 아니다. 일상의 작은 선택에서도 같은 질문은 반복된다. 거짓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할 것인가. 약한 사람의 억울함을 보고도 외면할 것인가. 다수가 말한다고 함께 따라갈 것인가. 혼자가 되더라도 자신의 양심을 지킬 것인가.
세르베투스는 우리 대신 답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삶을 하나의 질문으로 남겼다. 그 질문은 오늘도 살아 있다.
진실은 무엇인가. 양심은 누구에게 속하는가. 신앙은 강요될 수 있는가. 인간은 어디까지 자신의 신념을 지켜야 하는가.
이 질문에는 하나의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다. 철학이 위대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철학은 정답을 주는 학문이 아니다. 인간을 더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학문이다.
세르베투스는 철학자가 아니었다. 그의 생애는 하나의 철학이 되었다. 그는 문학가가 아니었다. 그의 삶은 한 편의 비극 문학이 되었다. 그는 인권운동가도 아니었다. 그의 죽음은 인권의 역사를 앞당기는 작은 불씨가 되었다. 인간은 불을 두려워한다.
역사는 불보다 진실을 더 오래 기억한다. 불은 육신을 태운다. 진실은 영혼을 밝힌다. 불은 재를 남긴다. 양심은 역사를 남긴다.
오늘 우리의 시대는 세르베투스 시대보다 훨씬 자유롭다고 말한다. 과연 그러한가. 우리는 정말 자유롭게 생각하는가. 우리는 진실을 말할 용기를 가지고 있는가. 우리는 다른 의견을 존중할 만큼 성숙한가. 우리는 침묵해야 할 때와 말해야 할 때를 분별할 지혜를 가지고 있는가. 이 질문은 오백 년 전보다 오히려 오늘 더 절실하다.
세상이 복잡해질수록 진실은 더욱 희미해진다. 정보가 많아질수록 지혜는 부족해질 수 있다. 소리가 커질수록 양심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럴 때일수록 세르베투스는 우리에게 조용히 말한다.
권력보다 양심을 두려워하라. 사람보다 진실을 존중하라. 승리보다 정직한 삶을 선택하라.
그것이 인간다운 길이라고. 진실은 언제나 많은 사람의 박수를 받으며 시작되지 않는다. 처음에는 언제나 외로운 사람 한 명에게서 시작된다. 그 한 사람의 질문이 시대를 흔들고, 그 한 사람의 용기가 역사를 움직이며, 그 한 사람의 양심이 문명을 앞으로 이끌어 간다. 세르베투스는 그 한 사람이었다. 그는 침묵하면 살 수 있었다. 말했기에 죽었다. 육신은 화형대에서 사라졌다. 진실을 향한 그의 질문은 불길을 넘어 오늘까지 살아남았다. 어쩌면 인간의 위대함은 오래 사는 데 있지 않다.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에 있다. 무엇을 위해 침묵하는가에 있다. 무엇을 위해 말하는가에 있다.
생명은 언젠가 끝난다. 권력도 언젠가는 사라진다. 명예도 세월과 함께 희미해진다. 끝내 남는 것은 한 가지뿐이다. 자신의 양심 앞에서 끝까지 정직하게 살았는가.
미카엘 세르베투스의 생애는 그 한 문장을 자신의 생명으로 써 내려간, 인류 양심사의 가장 뜨거운 한 페이지였다.
□ 에필로그
진실은 왜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가
인류의 역사는 거대한 제국의 역사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한 사람의 양심이 역사의 방향을 바꾸어 놓은 순간들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같은 시대를 살지 않았다. 같은 사상을 말한 것도 아니었다. 같은 종교를 믿은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한 가지는 닮아 있었다. 그들은 진실을 자신의 생명보다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그는 재판정에서 탈출할 기회를 거절하였다. 그는 법이 완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철학을 삶으로 증명하려 하였다. 죽음은 그의 육신을 멈추게 하였으나 질문은 멈추지 않았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 질문은 이천오백 년이 지난 오늘도 철학의 출발점으로 남아 있다. 그는 사랑과 용서를 가르쳤다. 당대의 종교 지도자들과 정치권력은 그의 가르침을 위협으로 받아들였다. 십자가는 한 사람을 처형하는 형벌이었다.
기독교 신앙에서는 바로 그 십자가가 구원과 희생의 상징으로 이해되며, 역사적으로도 그의 삶과 죽음은 인류 문명에 지대한 영향을 남겼다. 그는 화형대 앞에서도 자신의 양심을 거두지 않았다. 그의 신학적 견해는 지금도 논쟁의 대상이다. 그러나 한 인간이 양심에 따라 사유하고, 그 결과를 이유로 생명을 잃었다는 사실은 종교적 관용과 양심의 자유를 성찰하게 만드는 역사적 사건으로 남아 있다. 그는 폭력보다 양심의 힘을 믿었다. 그는 총보다 진실이 강하다고 믿었고, 증오보다 비폭력이 오래 살아남는다고 확신하였다. 역시 인종차별에 맞서 비폭력과 정의를 외쳤으며,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과정에서 생명을 잃었다.
이들은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았다.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했다. 서로 다른 진리를 탐구했다.
그들의 삶을 하나의 사상으로 묶을 수는 없다. 그러나 한 가지 공통점은 분명하다. 그들은 모두 자신의 양심을 쉽게 거래하지 않았다.
문명은 힘만으로 발전하지 않는다. 기술만으로도 발전하지 않는다. 경제만으로도 발전하지 않는다.
문명은 인간이 자신의 양심을 얼마나 존중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나아가기도 하고, 뒤로 물러서기도 한다.
오늘 우리의 시대는 과거보다 훨씬 자유롭다. 동시에 더 많은 유혹 속에 살아간다. 사람들은 침묵을 강요받기보다 스스로 침묵을 선택하기도 한다.
진실보다 편안함을, 양심보다 안전을, 신념보다 인기를, 대화보다 확신을 선택하는 유혹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한다. 바로 이러한 시대일수록 세르베투스는 다시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당신은 무엇을 지키며 살아가는가.”
이 질문에는 누구도 대신 답할 수 없다. 국가도, 교회도, 학문도, 권력도, 친구도 대신 답하지 못한다. 오직 자신의 양심만이 대답할 수 있다. 진실은 언제나 승리하는 것은 아니다. 양심은 언제나 박수를 받는 것도 아니다. 역사는 때때로 거짓이 이기는 것처럼 보이는 시간을 지나간다. 그럼에도 시간이 흐르면 사람들은 다시 진실을 찾는다. 거짓은 시대를 속일 수 있다. 진실은 시간을 속이지 못한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인류는 조금씩 앞으로 걸어올 수 있었다.
세르베투스는 위대한 승리자가 아니었다. 그는 인간이 자신의 양심 앞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지를 보여 준 한 사람이었다. 그가 남긴 가장 큰 유산은 특정한 교리가 아니다. 사유할 자유였다. 질문할 용기였다. 양심을 포기하지 않는 인간의 존엄이었다. 어쩌면 인간의 위대함은 오래 사는 데 있지 않다. 얼마나 정직하게 살았는가에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을 따랐는가가 아니라, 자신의 양심을 얼마나 끝까지 지켜 냈는가에 있다. 진실은 때때로 침묵보다 큰 대가를 요구한다. 그 대가를 기꺼이 감당한 사람들 덕분에 오늘의 인류는 더 넓은 자유와 더 깊은 관용을 배우게 되었다. 그것이 세르베투스가 오백 년의 시간을 건너 오늘 우리에게 여전히 살아 있는 이유이다. 그는 불길 속에서 사라진 사람이 아니다. 양심의 불씨를 다음 시대에 건네준 사람이었다.
ㅡ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