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방울 한 자루의 부자 ㅡ청람 김왕식
솔방울 한 자루의 부자 2026.07.02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솔방울 한 자루의 부자
뒷산 소나무에 솔방울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가만히 바라보다가 웃음이 났다.
요즘 아이들에게는 장식품처럼 보이겠지만, 우리에게 솔방울은 겨울방학 숙제였다. 개학하는 날이면 솔방울 한 자루를 등에 메고 학교에 갔다. 공부는 못해도 솔방울만큼은 빠뜨릴 수 없었다. 교실 난로를 지피는 귀한 연료였기 때문이다.
그 시절에는 모두가 작은 난로 하나를 중심으로 둘러앉아 겨울을 배웠다. 선생님은 칠판 앞에서 가르치고, 아이들은 난로 가까운 자리를 차지하려고 은근한 눈치싸움을 벌였다. 난로 옆은 오늘날의 특등석이었다.
점심시간이 되면 또 하나의 전쟁이 시작됐다. 도시락 전쟁. 난로 위에는 빛바랜 노란 양은도시락이 층층이 쌓였다. 먼저 올린 사람이 맨 아래, 늦게 올린 사람이 맨 위였다.
맨 아래 도시락은 희생정신이 남달랐다. 뚜껑을 열면 밥 한쪽은 누룽지가 되고, 다른 한쪽은 까맣게 탄 예술 작품이 되어 있었다.
그래도 맛있게 먹었다. 그때 반찬이라고 해 봐야 김치 몇 조각, 짠무, 콩자반, 새우젓이 대부분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건강식인데, 그때는 왜 그렇게 달걀프라이 하나가 부러웠는지 모른다.
가끔 형편이 조금 넉넉한 친구는 노란 달걀프라이를 밥 위에 떡 올려왔다. 그 순간 교실은 조용해졌다. 아이들의 시선이 모두 그 도시락으로 향했다.
“한 입만!”
그 말은 부탁이 아니라 거의 선전포고였다.
급기야 그 친구도 꾀를 냈다.
달걀프라이를 도시락 바닥에 깔고, 그 위를 밥으로 덮어 버렸다. 마치 국보급 보물을 비밀 금고에 숨기듯 말이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귀신같았다.
“야, 너 오늘 달걀 가져왔지?”
냄새만 맡고도 알아냈다. 숨긴다고 숨겨질 달걀이 아니었다.
생각해 보면 그 시절 잘 사는 집의 기준은 자동차도, 냉장고도 아니었다. 달걀프라이 하나였다. 달걀 하나가 아이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던 시대였다.
세월은 참 많이 흘렀다. 요즘은 먹을 것이 넘쳐난다. 달걀프라이는 흔하고, 반찬이 너무 많아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는 세상이 되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그때 그 까맣게 탄 양은도시락과 난로 위에서 익어 가던 김치 냄새는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솔방울 하나를 바라보다가 문득 알았다. 우리의 유년은 가난했던 것이 아니라 서로의 도시락을 탐내면서도 함께 웃을 줄 알았던 시절이었다는 것을.
뒷산 소나무는 아직도 솔방울을 달고 있다. 아마도 나를 보고 빙그레 웃고 있을 것이다. “올해도 한 자루 따 갈 텐가?”
이제는 난로도 없고 숙제도 없다. 그런데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어린 소년 하나가 솔방울 자루를 메고 개학길을 서두르고 있다.
ㅡ청람
댓글
로그인 없이 바로 남길 수 있습니다. 나중에 본인이 수정·삭제하려면 이 댓글의 비밀번호를 정해 주세요. 서로 예의를 지켜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