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

부채와 모시적삼 ㅡ청람 김왕식

부채와 모시적삼  ㅡ청람 김왕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부채와 모시적삼

대청마루 모시적삼 한 벌 햇살을 입고 앉아 있다

성긴 올 사이로 바람이 드나들고

하얀 결마다 할머니의 여름이 흐른다

대나무 부채 하나 손목을 떠난 적 없어도 허공은 늘 시원했다.

부채 끝에서 일어난 바람은 더위를 밀어낸 것이 아니라 식구들의 고단한 하루를 먼저 어루만졌다

모시적삼은 가난을 걸친 옷이 아니었다

땀마저 맑게 말리던 한 사람의 품격이었다

부채는 바람을 만드는 물건이 아니었다

말없이 사랑을 펴는 할머니의 손끝이었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모시의 흰 숨결 하나 부채의 느린 바람 하나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 여름 한철을 다시 살아낸다

ㅡ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