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

쪽빛 비녀 ㅡ 청람 김왕식

쪽빛 비녀  ㅡ 청람 김왕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쪽빛 비녀

새벽은 할머니의 쪽진 머리에서 먼저 동이 텄다

은빛 비녀 하나 검은 세월을 꿰매며 평생 머리칼보다 마음을 단정히 묶어 두었다

비녀 끝에 앉은 햇살은 말이 없었고

주름 깊은 이마에는 웃음보다 오래된 인내가 피어 있었다

바람이 불어도 흩어진 것은 머리카락이 아니라 가난과 설움이었다

마당 끝 감나무도 장독대의 항아리도 할머니가 비녀를 꽂는 아침이면 하루를 공손히 시작했다

이제 빈 빗만 남아 오래된 화장대 한구석을 지키고 있어도

비녀 하나 뽑아 들면 고운 쪽빛 저녁놀처럼 할머니의 체온이 손끝에 조용히 피어난다

ㅡ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