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새벽은 나무에게 먼저 온다 ㅡ청람 김왕식

새벽은 나무에게 먼저 온다 2026.07.20
새벽은 나무에게 먼저 온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새벽은 나무에게 먼저 온다

청람 김왕식

새벽은 해를 데리고 오지 않았다

먼저 나무의 뿌리 속에 한 방울 푸른 침묵을 심어 놓았다

강은 물을 흘리는 것이 아니라 밤새 산이 흘린 사색을 낮으로 운반하고 있었다

돌 하나가 천 년 동안 입을 다물자 이끼는 시간의 초록 필체가 되어 그 위에 계절을 받아 적었다

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름을 얻으려 애쓰다가 숲에 들어와 비로소 향기를 가진 침묵을 배웠다

꽃은 피는 일이 아니라 자기 안의 봄을 세상 밖으로 번역하는 일이었다

바람은 한 번도 나뭇가지를 흔든 적이 없다 나무가 제 마음속 오래된 겨울을 스스로 털어낸 것이다

저녁놀은 하늘이 붉어진 것이 아니라 하루를 끝까지 사랑한 태양의 심장이 구름 밖으로 스며 나온 빛이었다

오늘도 한 줄의 시를 쓰지 못했다 대신 먼 산 하나가 내 마음속으로 걸어와 말 없는 능선 하나를 가만히 세워 두었다

시는 종이 위에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 자기 욕심보다 먼저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을 닮아 갈 때, 비로소 세상은 그 사람의 등을 한 편의 시라고 조용히 읽기 시작한다.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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