갚지 못한 은혜 앞에서 ― 김장실 의원님께 드리는 편지
갚지 못한 은혜 앞에서 ― 김장실 의원님께 드리는 편지 2026.07.21
― 김장실 의원님께 드리는 편지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김장실 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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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에서라도 그 은혜를 갚을 수 있다면 ― 둘째 형님께 바치는 나의 늦은 고백
김장실
내게는 여러 형님과 누님이 계셨다.
우리가 자란 시절, 가난한 시골집에서 자식이 많다는 것은 축복인 동시에 무거운 운명이었다. 입 하나가 늘어나면 밥그릇 하나가 더 필요했고, 몸 하나가 자라면 논밭에 보탤 일손 하나가 생겼다.
아이들은 어린 날을 오래 누리지 못했다. 글씨를 충분히 익히기도 전에 호미를 잡았고, 꿈이 무엇인지 알기도 전에 가족의 끼니부터 걱정했다.
형님들과 누님들은 대부분 소학교를 마친 것이 학력의 전부였다.
배우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것이 아니었다. 책보다 먼저 쌀독의 바닥이 보였고, 교실보다 먼저 밭고랑과 공장과 공사판이 기다리고 있었다.
가난한 집 아이에게 공부는 밤하늘의 별과 같았다. 눈으로 바라볼 수는 있었으나 손으로 만질 수는 없는 것이었다.
나는 그 집안의 막내였다.
어린 나는 공부를 좋아했다. 책장을 펼치면 배고픔도 잊었고,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면 가슴속 어딘가에 오래 새겨 두었다.
작은 시골학교 교실에서도 나는 더 넓은 세상이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책 속의 길을 따라가면 내가 태어난 가난의 울타리를 넘어설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소학교를 졸업할 무렵, 나는 읍내 중학교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집안의 공기가 무거워졌다.
“공부는 그만하고 공장에 가서 돈을 벌어라.”
그 말이 야속하지는 않았다. 가족의 형편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학교 등록금은 우리 집 앞에 솟은 거대한 산이었다. 교복값과 책값, 읍내까지 오가는 차비마저 감당하기 어려웠다. 내가 학교에 가려면 누군가는 내 몫까지 더 오래 일해야 했다.
가난은 언제나 가장 어린 꿈부터 불러 세웠다.
네 꿈은 너무 비싸다고, 이 집에서는 감당할 수 없다고, 이제 그만 내려놓으라고 말했다.
그때 둘째 형님만은 다른 말을 하셨다.
형님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두둔하며 큰소리를 치지 않으셨다. 집안의 형편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기에 쉽게 장담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밤이 깊어 아무도 듣지 않는 자리에서 형님은 내 어깨를 가만히 두드리며 말씀하셨다.
“너는 공부해라. 형이 어떻게든 해보마.”
그 말은 짧았다.
허나 그 한마디가 내 앞에 있던 산을 옮겼다.
나는 그때 몰랐다.
형님의 “어떻게든”이라는 말속에 얼마나 많은 새벽과 굶주림과 상처가 들어 있었는지를.
형님은 더 거친 일터로 나가셨다. 남들이 피하는 일을 마다하지 않으셨고, 몸이 부서질 듯 일하셨다.
아직 마을의 닭도 울지 않은 새벽에 집을 나서셨고, 산 그림자가 밭을 덮은 뒤에야 돌아오셨다.
형님의 손바닥은 늘 갈라져 있었다. 손톱 밑에는 흙과 시멘트가 박혀 있었고, 작업복에서는 땀과 먼지 냄새가 났다.
나는 그 손이 부끄럽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거룩한 손이었다.
내가 책장을 한 장 넘길 때마다 형님의 손바닥에는 굳은살 하나가 더 박혔다.
내가 연필 한 자루를 닳게 할 때마다 형님의 허리에서는 젊음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갔다.
내가 교실 창가에서 미래를 바라볼 때 형님은 공사판 사다리 위에서 무거운 벽돌을 품에 안고 계셨다.
동생의 교복이 해지지 않도록 형님의 옷은 먼저 해졌다.
동생의 발이 학교로 향하도록 형님의 발뒤꿈치는 갈라졌다.
나는 형님이 보내주신 돈으로 중학교에 다녔고,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가난은 여전히 내 뒤를 쫓아왔지만, 형님의 땀이 내 앞에 다리를 놓아주었다.
공부가 힘들 때마다 형님의 손을 떠올렸다.
포기하고 싶은 날이면 공사판에서 허리를 펴지 못하던 형님의 모습을 생각했다. 책값이 아까워 헌책을 구해 읽으면서도 내게 주어진 배움의 시간이 얼마나 값비싼 것인지 알고 있었다.
내게 책 한 페이지는 종이가 아니었다.
형님이 흘린 땀 한 방울이었다. 내가 함부로 접을 수 없는 형님의 청춘이었다.
나는 마침내 대학에 진학했다.
우리 집안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소학교를 마치고 곧바로 일터로 나가야 했던 형님들과 누님들에게 내 대학 진학은 자신들이 가보지 못한 길을 대신 걷는 일이었다.
특히 둘째 형님에게 내 합격은 굽은 허리와 상처 난 손이 헛되지 않았다는 증거였을 것이다.
대학을 마친 뒤 나는 대학원 진학을 준비했다. 먼저 부산대학교 대학원 시험에 합격했다.
등록금은 14만 원이었다.
지금의 숫자로는 그 무게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당시 형님의 한 달 월급은 몇 천 원에 지나지 않았다. 14만 원은 형님이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수없이 벽돌을 나르고, 손바닥이 찢어져 피가 배어 나와도 일을 멈추지 않아야 모을 수 있는 돈이었다.
가족은 그 돈을 마련했고, 나는 부산대학교 대학원에 등록했다.
그 뒤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시험에도 응시했다.
합격이었다.
합격 통지서를 손에 쥐는 순간, 나는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뻤다. 동시에 한 사람의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둘째 형님이었다.
나는 그 소식을 품고 고향으로 달려갔다.
그날 형님은 공사판에서 벽돌을 나르고 계셨다.
여름 햇볕은 불길처럼 뜨거웠다. 형님의 작업복은 땀에 흠뻑 젖어 등에 달라붙어 있었고, 얼굴과 머리카락에는 하얀 시멘트 가루가 내려앉아 있었다.
무거운 벽돌을 종일 나른 탓에 허리는 쉽게 펴지지 않았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형님을 불렀다.
“형님, 저 서울대학교 대학원에도 합격했습니다.”
그 순간 형님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세상의 어떤 꽃도 그렇게 피지는 못할 것이다.
피로도, 통증도, 형님을 짓누르던 벽돌의 무게도 그 순간만큼은 모두 사라진 듯했다.
형님은 어린아이처럼 웃으셨다. 금방이라도 공사판 한가운데서 춤을 추실 것처럼 기뻐하셨다.
자신의 합격도 아닌데, 자신이 대학에 가는 것도 아닌데, 동생 하나가 합격한 일이 그토록 좋으셨다.
형님은 학교 문턱을 오래 밟지 못하셨다.
형님의 꿈이 무엇이었는지 나는 끝내 묻지 못했다. 아마 형님에게도 배우고 싶은 것이 있었을 것이다. 읽고 싶은 책이 있었고, 가보고 싶은 곳이 있었으며, 이루고 싶은 삶이 있었을 것이다.
형님은 그 모든 꿈을 입 밖에 내지 않으셨다.
당신의 꿈을 접어 내 책가방 속에 넣어주셨다.
나는 기쁨 가운데서도 마음 한쪽이 무거웠다.
이미 부산대학교에 낸 등록금 14만 원을 돌려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돈이 형님에게 어떤 돈인지 알고 있었다. 형님의 땀과 가족의 굶주림이 응고된 돈이었다.
나는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형님, 부산대학교에 낸 등록금은 돌려받지 못한답니다. 너무 아깝습니다.”
형님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웃으셨다.
“괜찮다. 네가 서울대학교에 합격했는데 그깟 돈이 무슨 대수냐.”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이 건넨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축하였다.
형님에게 14만 원은 결코 ‘그깟 돈’이 아니었다.
형님의 몇 달, 아니 몇 해의 노동이었다. 뜨거운 볕 아래에서 나른 수천 장의 벽돌이었고, 갈라진 손바닥의 상처였으며, 참아낸 허기와 포기한 휴식이었다.
형님은 그 모든 것을 한마디로 지워버리셨다.
괜찮다.
동생이 더 먼 길을 갈 수 있다면 내가 흘린 땀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공부했고,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공직에 들어가 오랜 세월 나라의 일을 맡았다. 문화공보부 차관의 자리에 올랐고, 국회의원으로 국민을 위해 일할 기회도 얻었다.
시골집의 가난한 막내가 한 나라의 문화와 행정을 책임지는 자리까지 올라갔다.
사람들은 나의 재능과 노력을 말했다. 어려운 환경을 이겨낸 입지전적인 삶이라 평가했다. 축하의 꽃다발이 쌓였고, 수많은 사람이 박수를 보냈다.
나는 그 박수 속에서 늘 한 사람의 손뼉을 찾았다.
둘째 형님의 손이었다.
시멘트 가루가 박힌 손, 벽돌 모서리에 찢긴 손, 동생의 등록금을 쥐여주느라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사지 못한 손.
내가 교실의 계단을 오를 때 형님은 공사판의 사다리를 오르셨다.
내가 책장을 넘길 때 형님은 벽돌을 넘겨받으셨다.
내가 시험에 합격할 때마다 형님의 허리는 조금씩 더 굽어갔다.
내가 세상의 높은 자리에 올랐을 때, 형님은 이미 이 세상에 계시지 않았다.
그 사실이 내 가슴에 가장 아픈 못으로 남아 있다.
차관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고 고향에 달려가도 형님은 없었다. 국회의원이 되었다고 자랑하고 싶어도 형님은 대답하지 않으셨다.
따뜻한 옷 한 벌을 사드릴 수도 없었고, 형님이 좋아하시는 음식을 앞에 놓고 함께 웃을 수도 없었다.
꽃다발도, 감사패도, 내가 가진 어떠한 이름도 이미 떠난 형님께는 닿지 않았다.
나는 형님의 자녀들인 조카들을 돕고자 했다. 학업과 생활을 살피며 형님이 남긴 가족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고 싶었다.
허나 아무리 도와도 마음의 빚은 줄어들지 않았다.
형님이 내게 주신 것은 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형님은 자신의 청춘을 떼어주셨다. 건강을 내어주셨고, 배움의 기회를 내어주셨으며, 당신이 이루지 못한 꿈까지 내 미래 속에 심어주셨다.
형님이 내게 건넨 것은 학비가 아니었다.
한 사람의 인생이었다.
세월이 흐를수록 나는 높은 자리에 올랐던 날보다 벽돌을 나르던 형님의 모습을 더 자주 떠올린다.
수많은 사람에게 축하받았던 순간보다 “그깟 돈이 무슨 대수냐”라고 웃으시던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살아 계실 때 더 잘해드렸어야 했다.
형님의 손을 한 번 더 잡았어야 했다. 형님의 굽은 허리를 한 번 더 주물러드렸어야 했다.
왜 그렇게까지 일하셨느냐고, 형님의 꿈은 무엇이었느냐고, 형님도 힘들지 않았느냐고 물었어야 했다.
따뜻한 밥 한 끼를 대접하며 형님이 견뎌온 세월을 천천히 들어드렸어야 했다.
“형님 덕분에 제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 말을 천 번이라도 했어야 했다.
사람은 은혜를 받을 때 그 크기를 다 헤아리지 못한다.
지붕 아래에 있을 때에는 누가 온몸으로 비를 막아주고 있는지 모른다. 비를 맞지 않았기에 비의 차가움을 알지 못한다.
지붕이 사라진 뒤에야 그 사람이 얼마나 큰 하늘이었는지를 알게 된다.
둘째 형님은 내 삶의 지붕이었다.
형님은 당신의 등을 굽혀 내가 더 먼 곳을 바라보게 하셨다. 당신의 손을 거칠게 만들어 내 손에 책을 쥐여주셨다. 자신은 어둠 속에 남으면서 나를 빛이 있는 곳으로 밀어 올리셨다.
내가 디딘 높은 자리마다 형님의 등이 계단으로 놓여 있었다.
나는 형님의 등을 밟고 올라선 사람이었다.
이 사실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무너진다.
형님은 내게 무엇도 갚으라고 하지 않으셨다. 성공해서 돌아오라고도 하지 않으셨다.
그저 공부하라고 하셨다. 포기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 한마디가 나를 중학교로 보냈고, 대학으로 보냈다.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과 행정고시를 지나 나라의 일을 맡는 자리까지 이끌었다.
사람들은 내 이름 앞에 수많은 직함을 붙였다.
형님, 그 모든 직함의 첫 글자는 형님의 땀이었습니다.
내가 얻은 명예의 가장 깊은 곳에는 형님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이제 나는 밤이 깊어지면 하늘을 바라본다.
별 하나가 유난히 낮게 떠 있는 날이면 형님이 저곳에 계신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살아온 모습을 보고 계실까. 형님의 희생을 잊지 않고 살아왔다는 것을 알아주실까.
나는 혼잣말처럼 형님을 부른다.
“형님, 저는 형님께 받은 은혜를 다 갚지 못했습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그 고백은 더 깊어진다.
세상에서 아무리 높은 자리에 올라도 형님의 은혜보다 높은 자리는 없었다.
아무리 많은 것을 손에 쥐어도 형님의 땀 한 방울보다 값진 것은 없었다.
수천 명의 박수를 받아도, 공사판 한가운데서 내 합격 소식에 웃으시던 형님의 얼굴보다 뜨거운 축하는 없었다.
이승에서 다 갚을 수 없는 은혜라면 저승에서라도 갚고 싶다.
다시 태어나 형님을 만날 수 있다면, 이번에는 내가 형님의 학비를 대고 싶다.
형님의 거친 손에서 벽돌을 내려놓게 하고, 그 손에 책을 쥐여드리고 싶다.
“형님, 이제 그만 일하십시오. 이번에는 제가 하겠습니다.”
형님에게 교복을 사드리고 싶다. 새 책과 공책을 품에 안겨드리고 싶다. 형님이 학교로 걸어가는 뒷모습을 오래 바라보고 싶다.
형님이 시험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이번에는 내가 공사판 한가운데서 춤을 추고 싶다.
형님의 손을 꼭 잡고 말하고 싶다.
“형님, 이제 제가 형님을 공부시키겠습니다.”
“형님, 이제 제가 형님의 꿈을 지켜드리겠습니다.”
“형님, 그때 어린 저를 포기하지 않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인간의 생에는 돈으로 갚을 수 없는 은혜가 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미래를 위해 자신의 봄날을 모두 내어주는 은혜다. 자신은 꽃피지 못해도 동생만은 꽃피게 하려는 사랑이다.
내게 둘째 형님은 사람이기 전에 은혜의 이름이었다.
형님은 세상을 떠나셨지만 형님이 흘린 땀은 아직 내 삶 속에서 마르지 않았다.
형님이 나르던 벽돌은 오래전 어느 건물의 벽이 되었을 것이다.
허나 형님은 내 가슴에도 집 한 채를 지어놓으셨다.
그 집의 주춧돌은 희생이고, 기둥은 사랑이며, 지붕은 그리움이다.
그 집의 문을 열면 시멘트 가루를 뒤집어쓴 형님이 젊은 날의 얼굴로 환하게 웃고 계신다.
나는 오늘도 그 문 앞에서 고개를 숙인다.
“형님,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이승에서 못다 갚은 은혜, 저승에 가서라도 꼭 갚겠습니다.”
그 말이 허공에서 길을 잃지 않고 하늘까지 닿기를 바라며, 나는 오래도록 형님의 이름을 부른다.
세상에는 죽음도 끊지 못하는 형제의 정이 있다.
한 사람은 먼저 하늘로 떠났고, 한 사람은 아직 이 땅에 남아 있지만, 우리 사이에는 여전히 한 줄기의 길이 이어져 있다.
그 길의 한쪽에는 벽돌을 등에 진 형님이 서 계시고,
다른 한쪽에는 책을 가슴에 안은 어린 내가 서 있다.
세월을 건너 오래된 목소리 하나가 들려온다.
“괜찮다. 네가 잘되었으면 그걸로 됐다.”
형님은 아직도 괜찮다고 말씀하신다.
나는 아직도 괜찮지 않다.
형님의 한평생을 받아 들고도 고맙다는 말 하나 제대로 돌려드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끝내 고개를 들지 못한다.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눈물이 먼저 형님의 발아래 엎드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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갚지 못한 은혜 앞에서 ― 김장실 의원님께 드리는 한 독자의 편지
존경하는 김장실 의원님께.
의원님께서 둘째 형님을 회고하신 글을 읽다가 여러 번 문장을 놓쳤습니다.
눈이 글자를 따라가고 있었으나 마음은 어느새 오래전 제 고향집으로 돌아가 있었습니다. 의원님의 형님께서 동생의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벽돌을 나르시던 모습 위로, 저를 공부시키기 위해 자신의 삶을 뒤로 미루었던 제 누나와 형님, 형수님의 얼굴이 겹쳐졌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의 진실한 이야기는 낯선 이의 가슴에 잠들어 있던 기억까지 깨우는 힘이 있는가 봅니다.
저 역시 가난한 시절을 건너왔습니다.
제게도 혼자 힘으로는 넘을 수 없었던 배움의 고개가 있었습니다. 그때 누나는 자신의 몫을 덜어 제게 보태주었고, 형님은 무거운 생계의 짐을 짊어진 채 제 앞길을 열어주었습니다. 형수님 또한 넉넉하지 않은 살림 속에서 제 공부를 위해 기꺼이 한 자리를 내어주었습니다.
제가 책상 앞에 앉아 있을 때, 그분들은 삶의 거친 바닥을 걸어야 했습니다.
제가 책장을 넘길 때, 그분들은 생활비를 헤아렸습니다. 제가 시험을 준비할 때, 그분들은 자신의 피로를 감추었습니다. 제가 앞날을 꿈꿀 때, 그분들은 자신의 꿈 한 조각을 접어 제 등 뒤에 받쳐주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저는 제 힘만으로 공부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소학교를 마치자마자 상경해 을지로 후미진 골목 지하에서 요코를 짜며 한두 푼 모은 누나의 절약이 제 공책이 되었고, 문래동 철공소 불가마 속 형님의 땀이 제 등록금이 되었으며, 텃밭 일궈 만들어낸 형수님의 인내가 제 공부방의 등불이 되었습니다.
제가 배운 글자마다 그분들의 희생이 스며 있었고, 제가 걸어온 길마다 그분들의 굽은 등이 디딤돌처럼 놓여 있었습니다.
젊은 날에는 그것을 다 알지 못했습니다.
받는 사람은 은혜의 무게를 쉽게 헤아리지 못합니다. 손에 쥐어진 것만 보고, 그것을 건네기 위해 누군가 무엇을 내려놓았는지는 미처 살피지 못합니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비를 피하면서도, 제 머리 위에 지붕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고 살아갑니다.
세월이 흐르고 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따뜻했던 것은 누군가 추위를 대신 견뎠기 때문이며, 내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누군가 뒤에서 제 삶을 밀어주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 은혜를 생각하면 제 마음속에는 오래된 죄책감 하나가 남아 있습니다.
마땅히 갚아야 할 때 충분히 갚지 못했다는 부끄러움입니다. 더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지 못했고, 더 자주 손을 잡아드리지 못했으며, 그분들이 살아온 고단한 세월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것을 제 생의 원죄처럼 품고 살아왔습니다.
원죄라는 말이 지나치게 무거울 수도 있겠습니다. 허나 제게 그것은 단순한 미안함이 아닙니다.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자신의 시간을 떼어준 이들에게 그만큼의 사랑을 돌려드리지 못했다는, 지워지지 않는 마음의 빚입니다.
그런 제게 의원님의 삶은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의원님께서 둘째 형님의 자녀들을 돌보고, 형님이 남긴 가족에게 받은 은혜를 돌려드리고자 애쓰시는 모습을 보며 저는 오래 고개를 숙였습니다.
감사는 말로 고백할 때 아름답습니다. 삶으로 실천할 때 비로소 숭고해집니다.
많은 사람이 은혜를 기억한다고 말합니다. 성공한 뒤 자신의 노력과 재능만을 앞세우며, 뒤에서 자신을 밀어준 손길은 세월 속에 묻어두기도 합니다. 의원님께서는 형님의 희생을 자신의 성공담을 장식하는 한 대목으로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형님의 땀을 삶의 근원으로 기억하셨고, 형님의 자녀를 돌보는 일로 감사를 이어가셨으며, 세월이 흐를수록 자신의 공보다 형님의 은혜를 더 크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겸손 앞에서 저는 부끄러웠습니다.
의원님께서 오르신 높은 자리가 존경스러운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올라서도 자신을 받쳐준 형님의 낮은 등을 잊지 않으신 마음이 더욱 존경스러웠습니다.
사람은 높은 곳에 오르면 아래를 내려다보기 쉽습니다. 의원님께서는 높은 곳에 오를수록 자신이 밟고 올라온 사랑의 계단을 돌아보셨습니다. 세상이 의원님의 직함을 부를 때, 의원님은 그 직함의 뿌리에 형님의 땀이 있다고 고백하셨습니다.
그 고백은 한 정치인의 미담을 넘어 인간이 은혜를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삶의 가르침이었습니다.
의원님의 둘째 형님께서 하신 말씀을 오래 되새겨봅니다.
“괜찮다. 네가 서울대학교에 합격했는데 그깟 돈이 무슨 대수냐.”
그때의 14만 원은 ‘그깟 돈’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형님께서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나른 수많은 벽돌이었고, 갈라진 손바닥이었으며, 줄여 먹은 끼니와 포기한 휴식이었을 것입니다. 자신의 청춘을 몇 달씩 잘라내어야 마련할 수 있는 거금이었을 것입니다.
그 모든 무게를 형님은 “괜찮다”는 한마디로 내려놓으셨습니다.
사랑은 본래 그런 것인가 봅니다.
주는 사람에게는 목숨만큼 큰 것이면서도, 받는 사람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듯 웃어 보이는 것. 자신은 비를 맞으면서도 사랑하는 사람이 젖지 않았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기는 것. 자신의 봄날을 내어주고도 동생의 꽃이 피었다는 사실 하나로 기뻐하는 것.
의원님의 형님은 벽돌만 나르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동생의 미래를 한 장씩 나르셨습니다.
한 장은 중학교의 교실이 되었고, 한 장은 대학의 강의실이 되었으며, 한 장은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의 계단이 되었습니다.
그 벽돌들은 마침내 행정고시와 공직, 나라의 문화와 국민을 위해 일하는 자리로 이어졌습니다.
세상 어느 건물보다 높고 아름다운 건물 하나가 형님의 손에서 세워진 셈입니다. 그 건물의 이름은 동생의 인생이었으며, 그 주춧돌에는 둘째 형님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의원님께서는 이승에서 다 갚지 못한 은혜를 저승에서라도 갚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 앞에서 저 또한 제 누나와 형님, 형수님을 생각했습니다.
다시 젊은 날로 돌아갈 수 있다면 저는 그분들에게 더 자주 고맙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제가 받은 도움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그분들의 지친 어깨를 먼저 살피고 싶습니다.
누나가 포기한 것은 무엇이었는지, 형님이 감추고 산 아픔은 무엇이었는지, 형수님이 말없이 견딘 세월은 얼마나 길었는지 늦기 전에 물어보고 싶습니다.
저도 의원님처럼 살아 있는 동안 갚고 싶습니다.
다 갚을 수 없다는 이유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다 갚을 수 없기에 오늘 조금이라도 더 실천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은혜를 눈물 속에만 간직하지 않고, 누군가의 앞길을 밝혀주는 등불로 옮겨놓고 싶습니다.
우리가 받은 사랑을 그분들에게 온전히 돌려드릴 수 없다면, 또 다른 누군가에게라도 이어주어야 할 것입니다.
한 사람이 내게 놓아준 다리를 건넌 뒤, 나 또한 뒤에 오는 사람을 위해 돌 하나를 놓는 것. 누군가 내 머리 위에 씌워준 지붕 아래서 평안을 얻었다면, 이제 비를 맞는 다른 이의 지붕이 되어주는 것.
그것이 은혜를 갚는 가장 깊은 방식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의원님의 이야기는 제 마음속에 오래 묻어두었던 빚을 다시 바라보게 했습니다. 죄책감에 머물러 있던 저를 감사의 실천으로 이끌어주었습니다.
은혜를 갚지 못했다는 자책만으로는 떠난 세월을 되돌릴 수 없습니다. 그 부끄러움을 오늘의 선한 행동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사실을 의원님의 삶에서 배웠습니다.
존경하는 의원님.
의원님께서는 형님의 은혜를 갚지 못했다고 말씀하시지만, 저는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형님의 희생을 잊지 않고, 형님의 자녀들을 돌보며, 세상 사람들에게 형님의 삶을 이토록 귀하게 증언해 주신 것만으로도 이미 큰 보은의 길을 걷고 계신다고 말입니다.
사람은 두 번 세상을 떠난다고 합니다.
한 번은 육신이 숨을 거둘 때이고, 또 한 번은 그를 기억하는 마지막 사람의 가슴에서 이름이 사라질 때라고 합니다.
의원님께서 형님의 이름을 기억하고, 그 사랑을 글과 삶으로 전하고 계시는 한 둘째 형님은 떠난 분이 아닙니다. 의원님의 감사 속에서 여전히 숨 쉬고 있으며, 의원님이 베푸는 선행 속에서 오늘도 누군가의 앞길을 밝혀주고 계십니다.
형님이 나르신 벽돌은 오래전 어느 건물의 벽이 되었을 것입니다.
형님의 사랑은 아직 굳지 않았습니다. 의원님의 가슴에서 따뜻한 온기로 남아 있고, 조카들의 삶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이 글을 읽는 수많은 독자의 눈물 속에서 다시 살아나고 있습니다.
저 또한 그 눈물 속에서 누나와 형님, 형수님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누나, 고맙습니다.”
“형님, 고맙습니다.”
“형수님, 고맙습니다.”
너무 늦게 꺼내는 말이어서 목이 멥니다. 받을 때는 쉬웠던 한마디가 돌려드리려 하니 왜 이토록 무거운지 모르겠습니다.
저 역시 다 갚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살아 있는 동안 끝내 다 갚지 못할 것입니다. 그 갚지 못함을 절망으로 품지 않겠습니다. 받은 사랑을 잊지 않고, 다른 이의 꿈을 돕고, 더 낮은 곳에 손을 내미는 삶으로 조금씩 갚아가겠습니다.
의원님께서 둘째 형님의 등을 마음의 계단으로 삼아 살아오셨듯, 저도 누나와 형님, 형수님의 사랑을 제 삶의 나침반으로 삼겠습니다.
높은 곳에 오르기보다 낮은 곳을 잊지 않는 사람, 많이 가진 사람이기보다 받은 은혜를 기억하는 사람, 말로 감사하기보다 삶으로 보답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의원님의 글을 읽고 저는 한 가지를 깊이 배웠습니다.
인간을 위대하게 만드는 것은 얼마나 높은 자리에 올랐는가가 아닙니다.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자신을 받쳐준 사람의 이름을 끝내 잊지 않는 데 있습니다.
성공은 혼자 쌓은 탑이 아닙니다.
누군가의 굽은 허리 위에 세워진 집이며, 누군가의 갈라진 손으로 밝혀진 등불이며, 누군가 끝내 살아보지 못한 봄날 위에 피어난 꽃입니다.
그 사실을 아는 사람만이 높은 자리에 올라서도 낮은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의원님께서는 둘째 형님의 희생을 가슴에 품고 오랜 세월 그 은혜를 실천해 오셨습니다. 그 삶의 모습은 저와 같은 독자에게 단순한 감동을 넘어 하나의 명령이 되었습니다.
받은 은혜를 잊지 말라. 사랑을 다음 날로 미루지 말라. 고마운 사람이 살아 있을 때 손을 잡으라. 다 갚지 못하더라도 오늘부터 갚기 시작하라.
이제 저도 제 마음의 빚 앞에서 더는 고개만 숙이고 있지 않겠습니다.
그 부끄러움을 사랑으로 바꾸겠습니다. 그 원죄를 나눔으로 씻겠습니다. 제가 받은 희생이 저 한 사람에게서 끝나지 않도록, 누군가의 책 한 권이 되고, 누군가의 학비가 되며, 누군가 쓰러질 때 붙잡아주는 손이 되겠습니다.
그것이 저를 공부시켜 준 누나와 형님, 형수님께 드리는 늦은 보은이며, 의원님의 삶이 제게 가르쳐준 감사의 길이라 믿습니다.
존경하는 김장실 의원님.
의원님의 둘째 형님께서 하늘에서 이 편지를 읽고 계신다면, 아마 다시 이렇게 말씀하실 것 같습니다.
“괜찮다. 네가 잘 살았으면 그걸로 됐다.”
그 한마디에 의원님은 또 고개를 숙이시겠지요.
저도 함께 고개를 숙이겠습니다.
우리의 눈물이 먼저 형님의 발아래 엎드리고, 뒤늦은 감사가 그 거친 손을 가만히 감싸드릴 것입니다.
형님은 한 동생만 공부시킨 것이 아니었습니다.
형님의 이야기를 읽는 우리 모두에게 사랑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셨습니다. 한 사람의 희생이 어떻게 다른 한 사람의 운명을 바꾸며, 그 운명이 다시 세상을 밝힐 수 있는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이승에서 다 갚지 못한 은혜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을 향한 사랑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사실도 일깨워주셨습니다.
의원님께 깊은 존경을 드립니다.
둘째 형님의 숭고한 사랑 앞에 마음을 다해 고개 숙입니다.
저 역시 받은 은혜를 잊지 않고 남은 생을 살아가겠다는 다짐을 이 편지에 함께 올립니다.
형님께서 나르신 벽돌 위에 세워진 한 사람의 삶이 이제 수많은 사람의 가슴에 감사라는 집을 짓고 있습니다.
그 집에는 문패 하나가 걸려 있습니다.
은혜를 기억하는 사람은 결코 혼자 성공한 사람이 아니다.
그 문 앞에서 오래도록 고개 숙이며, 의원님과 둘째 형님의 아름다운 형제애에 깊은 감사와 존경을 바칩니다.
2026년 7월
한 독자 청람 김왕식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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