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의 글 《아버의 유산》 을 읽다 ㅡ청람 김왕식
익명의 글 《아버의 유산》 을 읽다 2026.07.24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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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이영범 목사님께서 좋은 글이기에 소개한다며 보내주신 익명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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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유산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한 달쯤 됐을 때였다. 장례를 마치고 유언 내용을 정리하던 날, 변호사는 가족들 앞에서 아버지가 남긴 재산을 읽어줬다.
오빠에게는 도심에 있는 방 세 개짜리 아파트가 돌아갔다. 시세로 3억 원은 훌쩍 넘는 집이었다.
내게는 예금계좌 하나가 남았다. 잔액은 800만 원.. 오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올케가 옆에서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12년 동안 아버님 모셨으니까, 800만 원이면 고생한 값은 받는 거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통장과 관련 서류를 가방에 넣었다. 내가 아버지를 모신 12년을 돈으로 계산해 본 적은 없었다. 앞으로도 계산할 생각은 없었다.
내가 서른 살이던 해, 아버지는 큰 병을 앓은 뒤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됐다. 처음 몇 년은 휠체어에 앉아 말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침대에 누워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마지막 몇 년은 혼자 몸을 뒤집는 것조차 어려웠다. 엄마는 오래전에 돌아가셨다.
오빠는 직장에 다녔고, 올케는 아이를 돌봐야 한다고 했다. 나는 결혼하지 않았고, 당시에는 일을 그만둘 수 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내가 아버지 곁에 남았다.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고, 내가 할 수 있으면 하면 되는 일이라고. 12년 동안 나는 아버지의 몸을 닦아드리고, 밥을 떠먹이고, 약 시간을 맞췄다. 기저귀를 갈고, 밤마다 다리가 저리다며 신음하면 주물러드렸다.
아버지가 정신이 흐린 날에는 나를 엄마로 착각했다. 내 손을 붙잡고 말했다. “여보, 가지 마.” 그럴 때마다 나는 손을 꼭 잡고 대답했다. “안 가요. 여기 있어요.”
정신이 또렷한 날에는 아버지가 내 얼굴을 오래 바라봤다. 그리고 늘 비슷한 말만 했다. “딸아, 미안하다.” “고생 많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고생 아니에요.” “아버지가 살아 계시면 됐죠.”
하지만 결국 아버지도 떠났다. 800만 원은 바로 쓰지 않았다. 그 돈으로 무언가를 사고 싶지도 않았다.
며칠 뒤, 나는 아버지 묘 옆에 심을 작은 향나무 묘목을 사려고 은행에 갔다. 50만 원 정도만 찾을 생각이었다. 창구 직원은 내 카드를 받고 전산을 확인했다. 그런데 화면을 보던 직원이 잠시 멈췄다.
나를 한 번 보고, 다시 화면을 봤다. 그러더니 조용히 말했다. “고객님, 모바일뱅킹으로 잔액을 한번 직접 확인해 보시겠어요?”
나는 이상한 기분이 들어 휴대폰을 꺼냈다. 앱을 열고 잔액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숫자를 잘못 본 줄 알았다. 다시 봤다. 한 번 더 봤다.
8억 7,200만 원. 800만 원이 아니었다. 8억 원이 넘는 돈이었다.
나는 휴대폰을 든 채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직원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버님께서 생전에 따로 정리해 두신 예금이 있었어요.” “외래 진료나 재활치료를 받으러 오실 때마다, 꼭 은행에 들르시곤 하셨다고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그 말이 들리는 순간, 지난 몇 년의 장면들이 떠올랐다. 아버지가 병원에 가는 날이면 가끔 내게 말했다.
“오늘은 은행도 잠깐 들르자.” 나는 연금이나 공과금 정리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휠체어를 택시에 싣고, 아버지를 천천히 은행 안으로 모셨다. 그가 창구 앞에서 오래 앉아 있으면 나는 밖에서 약을 사거나 커피를 사 왔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늘 말했다. “너 먼저 가 있어.” “금방 끝난다.” 나는 아무 의심도 하지 않았다. 직원은 서랍에서 낡은 우편 봉투 하나를 꺼냈다. “아버님께서 마지막으로 오셨을 때 맡기고 가신 겁니다.” “혹시라도 따님이 계좌를 확인하러 오시면 꼭 전달해 달라고 하셨어요.” 봉투 안에는 오래된 예금 내역 사본과 편지 한 장이 들어 있었다.
아버지 글씨는 삐뚤빼뚤했다. 손이 떨리기 시작한 뒤로는 글자가 유난히 크고 힘이 없었다. 나는 은행 의자에 앉아 편지를 읽었다.
“딸아. 이 돈은 내가 몰래 모아둔 돈이다. 옛날에 받은 보상금 일부랑, 연금에서 남긴 돈이랑, 내가 아껴둔 걸 조금씩 넣었다. 네 오빠는 집도 있고, 차도 있고, 직장도 있다. 그런데 너는 아무것도 없이 나 때문에 제일 좋은 12년을 보냈다. 나는 글은 잘 모르지만, 사람 마음은 안다. 네가 내 곁을 지킨 게 당연한 일이 아니었다는 것도 안다. 이 돈으로 네 집 하나 마련하고, 남는 건 네 이름으로 꼭 챙겨라. 오빠한테 굳이 말하지 마라. 내가 살아서 너에게 해 준 건 별로 없는데, 가고 나서라도 네가 혼자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딸아. 나는 네가 나 때문에 인생을 잃었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너는 나를 버리지 않았고, 나는 그걸 평생 잊지 못했다.
“ 아버지가.” 편지를 다 읽고도 나는 바로 울지 못했다. 한동안 종이만 내려다봤다. 그러다 어느 순간 눈물이 떨어져 글씨 위에 번졌다. 은행 직원이 휴지를 건넸다. 그리고 아주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버님 마지막 방문 때 많이 힘들어 보이셨어요.” “벽을 짚고 천천히 걸어오셨는데, 창구 앞에 앉아서도 숨을 오래 고르셨어요.” “그래도 꼭 본인이 직접 정리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나는 휴지를 쥔 채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가 그런 몸으로 은행에 와서, 내가 모르게 돈을 넣고, 돌아가는 길에 어떤 표정을 지었을지 생각했다.
아마 내가 어릴 때, 내 가방 안에 몰래 용돈을 넣어두던 날처럼 뿌듯했을지도 몰랐다. 은행을 나왔을 때 햇빛이 너무 강했다. 눈이 시릴 정도였다.
계단 앞에 서서 휴대폰을 보는데, 오빠에게 메시지가 와 있었다.
“아버지 집은 정리해서 팔려고 한다.” “시간 되면 와서 네 물건이나 아버지 물건 좀 챙겨.”
나는 한참 메시지를 바라봤다. 쓰다가 지운 말도 많았다. ‘내가 아버지 12년 모신 건 왜 아무도 기억하지 않지.’ ‘왜 나는 항상 정리하는 사람이어야 하지.’
하지만 결국 한 글자만 보냈다. “알겠어.” 그날 나는 시장에 들러 작은 향나무 묘목을 샀다. 그리고 아버지 묘 옆에 조심스럽게 심었다. 흙을 덮으며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 돈 확인했어요.” “그러니까 이제 그만 미안해해도 돼요.” “아버지가 날 끌어내린 게 아니라, 나를 키워준 거였어요.” “내가 아버지 곁에 있었던 건, 내가 해야 해서가 아니라 내가 선택한 거예요.”
바람이 불었다. 향나무 잎이 아주 작게 흔들렸다. 나는 손에 묻은 흙을 털며 웃었다.
“그래도 몰래 돈 모으는 건 너무 아버지답네요.” “어릴 때도 내 책가방에 용돈 넣어두고, 모르는 척했잖아요.”
며칠 뒤, 나는 오빠 집에 가서 아버지 물건을 정리했다. 나는 아버지가 읽던 책 몇 권과 오래된 사진첩만 챙겼다. 나머지 가구와 물건은 오빠가 정리하겠다고 했다.
나는 말리지 않았다. 문을 나서려는데 올케가 웃으며 말했다. “아버님이 준 800만 원이면 좀 쓸 만해?” “모자라면 우리도 조금 보태줄까?”
나는 올케를 보고 웃었다. “괜찮아요.” “충분해요.”
그 말은 돈이 충분하다는 뜻만은 아니었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알았다. 아버지가 내게 남긴 것은 8억 7,200만 원만이 아니었다. 그는 죽기 전까지, 내가 12년 동안 단순히 희생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남겨두고 싶었던 것이다.
누군가의 딸로 태어나, 누군가의 간병인이 되어 살았던 내 시간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시간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마지막까지 내게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나는 다 알고 있었다.” “네가 나를 살게 해준 날들을.”
그 사실 하나가, 내가 묘지 옆에서 심은 작은 나무처럼 내 안에 오래 남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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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보다 먼저 도착한 아버지의 마음 ― 익명의 글 「아버지의 유산」 을 읽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이 글을 읽고
한동안
먹먹했다.
유산에 관한 이야기처럼 시작되지만, 실은 한 사람의 생애가 다른 한 사람의 생애를 어떻게 품고 있었는가를 보여 주는 사랑의 기록이다. 겉으로 드러난 사건은 단순하다. 오빠에게는 아파트가 돌아가고, 아버지를 십이 년 동안 돌본 딸에게는 팔백만 원이 남겨진다. 독자는 처음부터 불공평이라는 차가운 문턱 앞에 세워진다. 효도를 돈으로 셈하는 올케의 말은 그 문턱을 더욱 차갑게 만든다.
“십이 년 동안 모셨으니까, 팔백만 원이면 고생한 값은 받는 거네.”
이 한마디는 인간의 헌신을 가격표로 바꾸는 세속의 언어다. 사랑을 노동비로 계산하고, 돌봄을 수고비로 환산하며, 한 사람의 젊은 날을 숫자 안에 가두려는 잔인한 산술이다. 딸은 대꾸하지 않는다. 그의 침묵은 패배가 아니다. 돈으로 환산될 수 없는 시간을 돈의 언어로 변호하지 않겠다는 품위다.
이 작품의 가장 깊은 강은 십이 년의 간병 속에 흐른다. 딸은 아버지의 몸을 닦고, 밥을 떠먹이고, 약 시간을 맞춘다. 기저귀를 갈고, 다리가 저리다는 신음 앞에서 밤마다 손을 움직인다. 이 손은 단순한 간병의 손이 아니다. 아버지의 남은 생을 하루씩 다음 날로 넘겨주는 생명의 다리다.
아버지가 정신이 흐려 딸을 아내로 착각하며 “여보, 가지 마”라고 할 때, 딸은 “안 가요. 여기 있어요”라고 답한다. 이 장면은 작품 전체의 심장이다. 딸은 자신의 이름을 잃은 채 아버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어 준다. 딸이며, 어머니이며, 아내이며, 보호자이며, 마지막 세월의 집이 된다. 사랑은 때때로 자기 이름을 내려놓는 일이다. 아버지가 딸을 알아보지 못하는 순간에도 딸은 아버지를 알아본다. 기억을 잃은 사람 곁에서 자신의 기억을 더 단단히 붙들어 주는 것, 그것이 돌봄의 가장 숭고한 형식이다.
이 글의 반전은 팔백만 원이 팔억 칠천이백만 원으로 바뀌는 데 있지 않다. 숫자의 크기는 독자를 놀라게 하지만, 작품의 본질은 돈의 액수 너머에 있다. 진정한 반전은 딸의 십이 년이 아버지에게도 온전히 기억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딸은 자신이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했다고 여겼을지 모른다. 오빠는 말이 없고, 올케는 희생을 값으로 낮춘다. 세상은 늘 눈에 보이는 재산과 지위만을 기억한다. 병든 사람의 몸을 닦아 준 손, 새벽에 약을 챙긴 발걸음, 잠든 아버지의 이불을 다시 덮어 준 밤은 상속 문서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는다.
아버지는 알고 있었다. 그는 병든 몸으로 은행을 찾아가 딸의 세월을 자신의 방식으로 기록했다. 떨리는 손으로 계좌를 정리하고, 삐뚤어진 글씨로 편지를 썼다. 아버지의 예금통장은 딸의 희생을 계산한 장부가 아니다. 세상이 알아주지 않은 사랑에 찍어 주는 늦은 도장이었다.
“나는 글은 잘 모르지만, 사람 마음은 안다.”
이 문장은 작품에서 가장 빛나는 고백이다. 글을 많이 안다고 사람을 아는 것은 아니다. 학식이 깊다고 은혜를 헤아리는 것도 아니다. 아버지는 몸이 무너져 가는 동안 딸의 마음을 읽었다. 딸이 무엇을 포기했는지, 얼마나 많은 밤을 삼켰는지, 자신의 곁을 지키는 일이 결코 당연하지 않았음을 가슴에 새겼다.
아버지가 남긴 편지는 돈의 사용법을 알려 주는 유언이 아니다. 딸의 삶을 다시 세워 주는 존재의 증명서다.
“너는 나 때문에 인생을 잃은 것이 아니다.”
이 말은 딸에게 남긴 가장 큰 유산이다. 딸은 십이 년을 잃은 것이 아니라, 한 생명을 끝까지 지켜 낸 사람으로 자라났다. 세상은 그 시간을 공백이라 부를 수 있다. 아버지는 그 시간을 사랑의 완성이라 불렀다.
향나무를 심는 장면은 이 작품을 한 단계 더 높은 문학의 자리로 데려간다. 딸은 거액을 확인한 뒤 보석이나 집을 먼저 떠올리지 않는다. 아버지 묘 옆에 작은 향나무 한 그루를 심는다. 돈은 은행에 남고, 사랑은 흙 속에 뿌리를 내린다. 향나무는 아버지의 무덤 곁에서 사계절 푸른 잎을 지킬 것이다. 딸의 십이 년이 그랬듯, 계절이 바뀌어도 자리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는 돈을 남겼고, 딸은 나무를 남긴다. 돈은 언젠가 쓰이지만, 나무는 자라며 기억을 증언한다. 바람이 불 때마다 향나무 잎은 아버지가 생전에 다 하지 못한 말을 대신 흔들어 줄 것이다.
“나는 다 보고 있었다.” “네가 내 곁에 있던 날들을.” “네 손이 내 생을 하루씩 연장해 주었다.”
딸이 올케에게 “충분해요”라고 답하는 장면도 오래 남는다. 그것은 팔억 칠천이백만 원이 충분하다는 뜻만은 아니다. 아버지가 자신의 사랑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 자신의 십이 년이 헛되지 않았다는 사실, 자신이 가족의 희생양이 아니라 한 사람의 마지막 생을 지켜 낸 존재였다는 사실이 충분하다는 뜻이다.
사람은 돈이 부족해서만 가난해지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사랑이 아무에게도 기억되지 않았다고 느낄 때 더 깊이 가난해진다. 반대로 가진 것이 많지 않아도 단 한 사람이 “나는 네가 한 일을 알고 있다”라고 말해 주면 생은 다시 넉넉해진다.
이 글은 효도하면 복을 받는다는 단순한 교훈에 머물지 않는다. 부모 공경을 미래의 보상과 연결할 때 효도는 거래가 될 위험이 있다. 이 딸은 유산을 기대하며 아버지를 돌보지 않았다. 팔백만 원만 남았다고 여겼을 때도 원망을 쏟아 내지 않았다. 그는 보상을 위해 곁에 선 사람이 아니라 사랑하기에 떠나지 않은 사람이었다.
성경의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도 바로 이 지점에서 깊어진다. 공경은 재산을 얻기 위한 조건이 아니다. 나를 세상에 있게 한 생명을 마지막까지 사람답게 대하는 믿음의 실천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반드시 통장의 숫자로만 오지 않는다. 사랑을 끝까지 지켜 낸 사람의 내면에 흔들리지 않는 뿌리를 심어 주는 방식으로도 온다.
「아버지의 유산」에서 가장 값진 유산은 팔억 칠천이백만 원이 아니다. 아버지가 딸의 시간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딸의 손길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았다는 고백이다. 딸이 자신의 인생을 잃은 사람이 아니라 사랑을 완성한 사람이라는 인정이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는 살아 있을 때 다 하지 못한 말이 많다. 사랑하면서도 표현하지 못하고, 고마우면서도 미안하다는 말 뒤에 숨는다. 죽음은 그 미완의 문장에 마침표를 찍지만, 때로 한 장의 편지가 그 마침표를 다시 문으로 바꾼다.
아버지는 떠났으나 그의 마음은 은행의 낡은 봉투 속에서 딸에게 도착했다. 너무 늦게 온 편지 같지만, 딸의 남은 생을 다시 세우기에는 늦지 않았다.
이 작품은 우리에게 부모가 살아 계실 때 잘하라는 익숙한 교훈만 건네지 않는다. 더 아픈 질문을 품게 한다. 우리 곁에서 말없이 돌보는 사람을 우리는 제대로 보고 있는가. 가족이라는 이유로 누군가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지는 않은가. 사랑을 가장 많이 베푼 사람에게 가장 적은 감사를 돌려주고 있지는 않은가.
사랑은 대개 큰 목소리로 오지 않는다. 새벽의 약봉지로 오고, 따뜻한 물수건으로 오며, 잠들지 못한 밤의 손길로 온다. 늙은 아버지의 떨리는 글씨로 오고, 딸이 묘지 옆에 심은 작은 향나무로 온다.
아버지가 딸에게 남긴 참된 유산은 돈이 아니다.
“너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마지막 보호였고, “나는 네 사랑을 알고 있었다”는 늦은 감사였으며, “네 십이 년은 사라진 시간이 아니다”라는 생애의 축복이었다.
향나무는 이제 아버지의 무덤 곁에서 자랄 것이다. 뿌리는 흙 아래에서 아버지의 미안함을 품고, 가지는 햇빛 속에서 딸의 용서를 펼칠 것이다. 바람이 잎을 흔드는 날마다 세상은 한 문장을 다시 읽게 될 것이다.
사랑은 보상받기 위해 지키는 것이 아니지만, 진실한 사랑은 끝내 누군가의 가슴에서 기억된다.□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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