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

무등산이 가르쳐 준 둥근 마음 ㅡ청람 김왕식

무등산이 가르쳐 준 둥근 마음 2026.07.24
무등산이 가르쳐 준 둥근 마음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무등산 無等山 ― 무등산이 가르쳐 준 둥근 마음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빛고을 광주에는 하늘보다 먼저 아침을 받아 드는 지붕이 하나 있다. 기와도 서까래도 없으나 수많은 사람의 하루를 덮어 주는 푸른 지붕, 무등산이다.

산은 대개 높이를 자랑한다. 봉우리를 뾰족하게 벼려 하늘의 옷자락을 찌르고, 골짜기를 깊게 파서 자신의 위엄을 드러낸다. 무등산은 다르다. 높으면서도 높다는 표정을 짓지 않는다. 하늘 가까이 있으면서도 하늘을 밀어내지 않는다. 어깨를 둥글게 낮추어 광주를 오래 품는다.

이름부터 범상하지 않다.

무등산의 ‘무등無等’은 등급이 없다는 뜻으로 읽힌다. 위와 아래가 없고, 높고 낮음의 자를 거두며, 귀하고 천함의 저울을 내려놓은 산이다. 세상은 끊임없이 사람에게 등수를 매긴다. 학교는 성적으로 줄을 세우고, 사회는 재산과 지위로 높낮이를 정한다. 사람은 타인의 머리 위에 올라서야 자신이 높아졌다고 믿는다.

무등산은 아무도 딛고 올라서지 않고도 높다.

누구를 낮추지 않고도 우뚝하다.

자신의 높이를 증명하기 위해 다른 산의 키를 재지 않는다. 산 아래 부유한 집과 가난한 집을 구별하지 않고 같은 그늘을 내어 준다. 권세 있는 이의 숨과 이름 없는 시민의 숨을 같은 바람으로 씻어 준다. 그런 까닭에 무등산의 높이는 해발로만 잴 수 없다. 그 산의 참높이는 모든 차별을 품 안에서 녹여내는 마음의 고도에 있다.

무등산은 뾰족하지 않다.

뾰족한 것은 쉽게 눈에 띈다. 창끝은 멀리서도 보이고, 가시는 먼저 손을 찌른다. 인간도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말을 날카롭게 세우고, 생각의 끝을 송곳처럼 갈아 타인의 마음에 꽂곤 한다. 옳다는 확신이 단단해질수록 언어는 뾰족해지고, 명예에 목마를수록 어깨에는 보이지 않는 가시가 돋는다.

무등산은 정상에 오르고도 칼끝이 되지 않았다.

하늘을 찌르는 대신 하늘을 받친다. 자기 봉우리를 왕관처럼 세우지 않고, 둥근 이마로 구름을 받아 준다. 세월이 바위의 날을 갈아 내고, 비와 바람이 산의 모서리를 쓰다듬어 오늘의 넉넉한 선을 만들었을 것이다.

둥글다는 것은 힘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모서리를 버리기까지 수많은 비바람을 견뎠다는 뜻이다. 처음부터 둥근돌은 없다. 계곡을 흐르며 다른 돌과 부딪치고, 물살에 살갗을 내어 주어야 비로소 손바닥에 놓일 만큼 부드러워진다.

무등산의 둥근 능선은 오랜 견딤이 써 놓은 필체다.

그 곡선에는 광주의 역사도 누워 있다. 수많은 아픔과 저항, 피 흘린 기억과 다시 일어선 사람들의 숨결이 산자락마다 스며 있다. 무등산은 그 모든 일을 내려다보았으되 함부로 증언대에 오르지 않았다. 울어야 할 때 구름으로 울고, 분노해야 할 때 천둥을 품었으며, 상처 입은 사람에게는 말보다 넓은 품을 내어 주었다.

광주가 아플 때 산은 등을 돌리지 않았다.

도시는 골목에서 피를 흘렸고, 산은 초록 손수건을 펼쳐 그 눈물을 닦았다. 살아남은 이들이 고개를 들지 못할 때, 무등산은 아무 말 없이 자기 어깨를 빌려주었다. 역사는 인간의 언어로 기록되었지만, 그날의 숨과 울음은 산의 나이테에도 새겨졌을 것이다.

무등산이 겸손한 까닭은 세상의 아픔을 너무 많이 보았기 때문인지 모른다. 많은 것을 본 존재는 함부로 높아지지 않는다. 수많은 죽음과 탄생을 바라본 산은 인간이 자랑하는 권세와 명예가 얼마나 짧은 그늘인지 알고 있다. 오늘 정상에 오른 사람도 저녁이면 산을 내려가야 한다. 산은 그 사실을 알기에 정상조차 소유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무등산에 오르지만, 무등산은 사람을 내려다보지 않는다.

오른 사람과 오르지 못한 사람을 나누지 않는다. 빠르게 걷는 이와 지팡이에 기대어 천천히 오르는 이를 구별하지 않는다. 어린아이의 작은 신발과 노인의 닳은 신발을 같은 흙으로 받아 준다. 산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나무 그늘은 이름을 확인한 뒤 내리는 법이 없다.

이것이 무등의 정신이다.

평등은 모두를 같은 모양으로 만드는 일이 아니다. 서로 다른 존재를 저마다의 모습으로 품는 일이다. 큰 나무에게는 큰 그늘을 허락하고, 작은 풀에게는 낮은 햇살을 나누어 주는 일이다. 무등산의 숲에서는 소나무가 진달래에게 키를 낮추라고 명령하지 않는다. 바위는 이끼에게 자신처럼 단단해지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각자의 생명이 각자의 방식으로 산의 한 부분이 된다.

무등산은 모가 나지 않았다.

모가 난 마음은 타인을 재단한다. 자신이 만든 틀에 맞지 않는 사람을 밀어내고, 자신의 생각과 다른 목소리를 적으로 만든다. 세상의 갈등은 대개 자기 모서리를 진리라고 믿는 데서 시작된다.

산은 오랜 세월 자기 모서리를 내려놓으며 넓어졌다. 비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렀고, 나무는 뿌리 아래 어둠을 차별하지 않았다. 떨어진 낙엽은 가장 낮은 곳으로 가서 다음 봄의 흙이 되었다. 무등산은 높이 솟아 있으면서도 모든 생명의 방향은 낮은 곳을 향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겸손은 자신을 작게 여기는 일이 아니다. 자신의 높이로 남을 누르지 않는 일이다. 능력이 있으면서도 자랑하지 않고, 많이 알면서도 타인의 말을 들으며, 정상에 서서도 골짜기의 아픔을 잊지 않는 태도다.

무등산은 광주의 가장 높은 곳에 있으면서 광주의 가장 낮은 마음을 품는다.

그 산을 바라보고 있으면 인간의 어깨가 부끄러워진다. 얼마 되지 않는 지식으로 목소리를 높였던 일, 작은 자리를 얻고도 누군가를 내려다보았던 일, 말 한마디를 둥글게 하지 못해 가까운 사람의 가슴에 흠집을 냈던 일이 산그늘 아래서 하나씩 모습을 드러낸다.

무등산은 꾸짖지 않는다.

산은 훈계 대신 형상을 보여 준다. 뾰족하지 않아도 높을 수 있다는 것, 목소리를 내지 않아도 도시의 중심이 될 수 있다는 것, 자기 이름 앞에 등급을 붙이지 않아도 수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 가르친다.

나는 무등산을 볼 때마다 사람이 산을 닮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높은 자리에 갈수록 이마를 둥글게 하고, 많은 것을 가질수록 어깨를 낮추며, 자신의 그늘 아래 더 많은 사람을 쉬게 해야 한다.

산의 높이는 정상에 있지 않다. 품에 있다.

사람의 높이도 직함에 있지 않다. 얼마나 많은 사람을 품을 수 있는가에 있다. 누군가의 허물을 덮어 주고, 넘어지는 이에게 등을 내어 주며,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도 한 자락 그늘을 허락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야말로 마음속에 무등산 한 채를 세운 사람이다.

빛고을 광주가 빛나는 까닭은 햇빛이 많아서만이 아니다. 도시의 뒤편에 높음을 내려놓은 산 하나가 오래 앉아 있기 때문이다. 무등산은 광주의 지붕이면서 광주의 이마다. 고난 앞에서도 꺾이지 않았으나 증오의 뿔을 세우지 않은 둥근 이마, 아픔을 품었으나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넓은 이마다.

해 질 무렵 무등산의 능선은 더욱 둥글어진다. 놀빛이 산의 어깨에 걸리면 산은 하루 동안 사람들에게서 받은 소음과 상처를 붉은 침묵으로 삭인다. 밤이 오면 별들을 지붕 위에 올려놓고 도시의 잠을 지킨다.

누가 산에게 가장 높으냐고 물어도 무등산은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나무 한 그루를 더 품고, 길 잃은 새 한 마리를 재우며, 새벽에 다시 광주를 향해 넓은 등을 내어 줄 것이다.

그리하여 무등산은 산이기 전에 한 사람의 인격이다.

높되 거만하지 않고, 크되 위압하지 않으며, 상처가 깊되 모나지 않은 존재.

세상이 사람을 등급으로 나눌 때 등급 없음으로 가장 높은 산.

모두가 뾰족해지려는 시대에 둥근 어깨 하나로 도시를 품는 산.

무등산은 오늘도 말없이 광주의 지붕이 되어 있다.

산이 도시 위에 있는 것이 아니다.

겸손이 빛고을의 하늘을 받치고 있다.

ㅡ청람 김왕식

□ 무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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