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

보이지 않는 것들이 세상을 들고 있다 ㅡ청람

보이지 않는 것들이 세상을 들고 있다 ㅡ청람 2026.07.26
보이지 않는 것들이 세상을 들고 있다 ㅡ청람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보이지 않는 것들이 세상을 들고 있다

세상은 눈에 잡히는 것들로 진열되어 있다. 높은 건물은 층수를 하늘 가까이 밀어 올리고, 자동차는 금속의 몸에 빛을 입힌 채 거리를 가른다. 보석은 작은 몸 안에서 햇빛을 여러 갈래로 부수고, 통장 속 숫자들은 나란히 줄을 서서 한 사람의 형편을 말해 주는 듯하다. 명함 위의 직함은 때로 이름보다 먼저 사람을 소개한다.

사람들은 눈앞에 놓인 것들을 세어 보며 삶의 단단함을 확인하곤 한다.

얼마나 가졌는가. 얼마나 높이 올랐는가. 얼마나 많은 이가 그 이름을 알아보는가.

눈은 언제나 증거를 원한다. 손에 잡히는지, 숫자로 헤아릴 수 있는지, 다른 이에게 보여 줄 수 있는지를 살핀다.

그 눈의 기준으로만 세상을 바라본다면, 정작 삶을 지탱하는 귀한 것들은 존재의 명부에 이름조차 올리지 못할지 모른다.

사랑은 저울 위에 올라가지 않는다. 신뢰는 자의 눈금으로 잴 수 없다. 양심은 유리 진열장 안에서 빛나지 않는다.

자유는 금고에 넣어 잠글 수 없고, 행복은 등기부등본에 기록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사랑이 사라진 자리에서는 마음이 쉽게 마르고, 믿음이 금이 간 관계에서는 한 지붕 아래에서도 서로의 잠이 멀어진다.

눈에 보이는 것은 삶의 가구일 수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그 집 안에 머무는 온도에 가깝다.

집은 벽돌과 시멘트로 세워진다. 가정은 그 재료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큰 식탁을 들여놓을 수는 있어도 그 둘레에 다정한 대화까지 사 올 수는 없다. 비싼 침대를 마련할 수는 있어도 불안한 영혼에게 깊은 잠을 건네기는 어렵다. 넓은 창을 낼 수는 있어도 사람의 가슴 안쪽까지 햇살이 들게 하는 일은 건축가의 설계도 밖에 있다.

때로는 한마디 말이 방의 기후를 바꾼다.

따뜻한 눈길 하나가 오래 겨울이던 집 안에 작은 화로를 놓고, 용서 한 번이 굳게 잠긴 마음의 문에서 녹슨 경첩을 풀어 준다. 누군가의 손이 말없이 어깨에 머무는 순간, 세상은 아주 잠깐 무너지기를 멈춘다.

세상에는 보이지 않으면서도 모든 것을 움직이는 힘이 많다.

바다는 눈앞에 펼쳐져 있으나 파도의 등을 떠미는 바람은 손에 잡히지 않는다. 나무는 하늘을 향해 수많은 가지를 펼치지만, 그 몸을 붙드는 뿌리는 흙 아래 숨어 있다. 꽃은 향기의 얼굴을 보여 주지 않으면서 벌과 나비의 길을 바꾸고, 지구는 중력을 설명하지 않은 채 모든 생명을 제 품 가까이에 머물게 한다.

사람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겉으로 드러난 성취가 가지라면, 그것을 견디게 한 인내는 뿌리에 가깝다. 박수는 꽃처럼 눈부시지만, 아무도 보지 않는 시간에 흘린 땀은 꽃 아래의 흙처럼 말이 없다. 명예가 현관에 걸린 문패라면, 인격은 매일 밥을 담고 물을 마시는 오래된 그릇과 닮았다.

문패가 화려하다고 밥상의 온기까지 깊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성공한 이를 오래 바라본다. 세월은 때때로 가치 있게 살아간 사람의 뒷모습을 더 오래 품는다. 높은 자리에 오른 일보다 그 자리에서 누구의 손을 잡아 주었는지가 한 사람의 생을 더 깊게 설명해 줄 때가 있다.

많이 가진 사실보다 가진 것을 어디에 사용했는지가 그 사람의 이름 곁에 오래 남기도 한다.

높이 오른 뒤에도 자신이 사용한 사다리를 거두지 않는 이가 있다. 먼저 강을 건넌 뒤 다리를 끊지 않고, 뒤에 오는 사람을 위해 난간 하나를 더 세워 두는 사람도 있다.

그런 이들의 뒷모습에는 소리 없는 빛이 머문다.

권력은 사람의 몸을 움직일 수 있다. 사랑은 사람의 마음이 스스로 움직이게 한다.

돈은 물건을 살 수 있다. 신뢰는 한 사람의 시간을 오래 곁에 머물게 한다.

명예는 이름을 널리 알릴 수 있다. 인격은 그 이름이 세월 앞에서 쉽게 부끄러워지지 않도록 붙들어 준다.

사람의 진짜 크기는 소유한 것의 부피보다 타인의 아픔을 품을 수 있는 마음의 넓이에서 드러나는지도 모른다. 큰 집에 살면서도 마음 한편이 비좁을 수 있고, 작은 방에 살면서도 수많은 사람의 슬픔을 잠시 재워 줄 수 있다.

보이지 않는 가치는 대개 목소리가 작다.

양심은 확성기를 들지 않는다. 배려는 자신이 한 일을 광고하지 않는다. 희생은 영수증을 남기지 않는다. 사랑은 건넨 것을 장부에 적어 두지 않는다.

그들은 세상의 중심에 서겠다고 나서지 않는다. 다만 세상이 너무 쉽게 무너지지 않도록 아래쪽에서 오래 버틴다. 다리는 강을 건넌 이들의 이름을 기억하지 않으면서도 끝까지 등을 내어 주고, 흙은 꽃에게 자신이 키웠다고 말하지 않으면서 한 생명의 뿌리를 온몸으로 받아 준다.

우리의 삶을 살리는 것들은 대개 흙과 닮아 있다.

낮고, 어둡고, 잘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한 존재의 봄을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것만 좇는 삶은 어쩌면 거울로 지은 집과 비슷할지 모른다. 사방에 자신의 모습만 가득해 타인이 들어와 쉴 자리가 줄어드는 집이다. 소유가 늘어날수록 마음의 창문이 좁아지고, 이름이 높아질수록 사람의 목소리가 멀어진다면, 그 성공의 꼭대기에는 찬 바람만 머물 수도 있다.

삶의 마지막 저녁에 사람이 품고 가는 것은 집의 평수나 통장의 잔액, 명함의 직함과는 조금 다른 것일 듯하다.

누군가에게 따뜻한 사람이었는지, 넘어지는 이 곁에 잠시라도 서 주었는지, 자신의 편안함을 조금 덜어 타인의 추위를 막아 준 적이 있었는지, 그런 기억들이 저녁빛처럼 오래 남지 않을까.

인생은 얼마나 많이 쌓았는가를 묻는 창고라기보다, 얼마나 따뜻하게 나누었는지를 가만히 살피는 온도계에 더 가까운지도 모른다.

보이는 것은 언젠가 낡는다. 빛을 잃고, 다른 주인의 손으로 넘어간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과 믿음, 진실과 배려는 한 사람의 마음에서 다른 사람의 마음으로 옮겨 가며 세월보다 오래 살아남기도 한다.

한 번 건넨 위로가 누군가의 절망 곁에 작은 의자가 되어 주고, 한 번 베푼 용서가 닫혀 있던 한 가정의 창문을 다시 열기도 한다. 한 번 지킨 약속이 무너진 세상 한쪽에 보이지 않는 기둥 하나를 세우는 날도 있다.

우리는 성공을 위해 많은 것을 배우며 살아간다. 가치 있게 사는 법은 교과서보다 사람의 표정과 뒷모습에서 더 자주 배우게 된다.

성공은 사람들 앞에 나를 세우는 일일 수 있다. 가치는 사람들 곁에 나를 오래 머물게 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성공은 박수를 받는 순간 밝게 빛난다. 가치는 박수가 멎은 뒤에도 누군가의 삶 속에서 등잔처럼 남는다.

눈에 보이는 것은 세상의 표면을 채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세상의 심장을 뛰게 한다.

세상은 높은 건물만으로 버티는 것이 아니다. 서로를 믿어 주는 마음, 낯선 슬픔 곁에 잠시 멈추는 발걸음,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 지켜 낸 약속들이 세상의 기울기를 조금씩 바로잡는다.

인간은 가진 것만으로 아름다워지는 존재는 아닐 것이다.

끝내 버리지 않은 마음 하나, 누군가에게 건넨 다정한 말 한마디, 자신보다 약한 이를 지나치지 않았던 한 걸음이 그 사람의 얼굴에 오래 지워지지 않는 빛을 남긴다.

눈에 띄는 이름보다 누군가의 마음에서 오래 지워지지 않는 온기가 더 깊은 흔적이 되는 날이 있다. 성공의 꼭대기에 새겨진 이름보다 세상의 낮은 곳에서 묵묵히 무게를 받아 낸 한 사람의 등이 더 오래 기억되기도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은 자신이 세상을 들고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바람처럼, 뿌리처럼, 향기처럼 말없이 제 몫을 다할 뿐이다.

어쩌면 세상은 오늘도 그 보이지 않는 힘들에 기대어 천천히 무너지지 않는 법을 배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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