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다, 하여 이불을 덮다 ㅡ청람 김왕식
덥다, 하여 이불을 덮다 2026.08.02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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덥다, 하여 이불을 덮다
청람 김왕식
덥다
햇볕이 지붕 위에 불의 혀를 펼치고
매미들이 나무의 체온을 찢어 허공에 매달아 놓은 한낮
나는 이불을 덮는다
더위를 피하려는 것이 아니다 세상이 너무 뜨거워 내 안의 겨울이 자꾸 떨기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에는 계절 밖에 사는 방 하나 있어
한여름에도 못다 건넨 말들이 서리가 되고 돌아오지 않는 이름들이 찬 베개가 된다
나는 이불을 턱밑까지 끌어올린다
폭염은 창밖에 있는데 추위는 언제나 가슴 안쪽에서 먼저 태어난다
사랑했던 날들은 불에 덴 자국처럼 남고
잊었다고 믿은 얼굴은 얼음보다 뜨겁게 꿈의 문고리를 잡는다
덥다
하늘은 태양 한 장을 도시의 이마에 붙여 놓았으나
나는 오래된 그리움의 냉방 안에서 손끝부터 식어 간다
이불은 천이 아니다
흩어진 나를 덮어 한 사람의 모양으로 되돌려 놓는 어머니의 마지막 품
세상에 들키지 않도록 눈물의 체온을 감싸 주는 가장 낮은 지붕
덥다, 하여 이불을 덮는다
몸을 식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얼어붙은 마음을 끝내 사람으로 데우기 위하여
나는 한여름 밤 가장 두꺼운 어둠을 끌어당겨
내 안에서 아직 떨고 있는 한 철 늦은 봄을 덮어 준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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