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시어들이 화해하지 않는 밤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시어들이 화해하지 않는 밤 2026.08.10
시어들이 화해하지 않는 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시어들이 화해하지 않는 밤 ― 《숨의 연대기》, 한 권의 시집이 되기까지

청람 김왕식

원고지 위에 몇 개의 말이 서로 등을 돌리고 앉아 있다. 한 단어를 가까이 데려오면 다른 단어가 자리를 비켜나고, 한 문장을 살려놓으면 옆의 문장이 갑자기 숨을 잃는다. 밤새 자리를 바꾸어주고, 토닥이고, 덜어내고, 다시 불러 앉혀도 말들은 좀처럼 한 식탁에 앉으려 하지 않는다.

말과 말 사이에도 궁합이 있는 모양이다. 보듬어본다. 한쪽의 목소리를 조금 낮추고, 너무 빛나는 형용사 하나를 밖으로 내보낸다. 쉼표 하나를 옮기고, 행 하나를 접고, 문장 끝에 매달린 말을 잘라낸다. 그래도 화해하지 않는다. 끝내 모두 걷어낸다. 밤 하나를 꼬박 건넜는데 원고지는 다시 눈 내린 들판처럼 희다.

글을 오래 쓰면 문장이 쉬워질 줄 알았다.

세월이 쌓이면 목수가 나무의 결을 손바닥으로 읽듯 말의 결도 손끝에서 저절로 풀려나올 줄 알았다. 그런데 세월은 반대편으로 흘렀다. 나이가 들수록 단어 하나를 종이 위에 올려놓기가 더 어려워졌다.

말이 가진 무게를 너무 오래 보아온 까닭인지도 모른다. 한마디가 쓰러진 사람을 일으키는 날이 있었고, 무심히 던진 말 하나가 사람의 가슴속에서 수십 년 녹슬지 않는 못이 되는 것도 보았다. 사랑한다는 말이 너무 늦게 도착하는 생을 보았고, 미안하다는 한마디가 끝내 입술을 떠나지 못한 채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나는 장면도 지나왔다. 그 많은 시간을 건너고 나니 말 하나가 가벼울 리 없다.

시를 쓴다는 일이 말을 많이 갖는 일이 아니라, 말 하나 앞에서 오래 머뭇거리는 일이 되어버렸다.

돌아보면 그 머뭇거림의 시작은 아주 오래전이다. 초등학교 시절이었다. 글짓기라고 불리던 작은 종이 위에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그것이 문학인지 시인지조차 알지 못했을 것이다. 다만 흰 종이 앞에 앉으면 마음 한쪽에 숨어 있던 것이 조금씩 글자가 되어 나왔다. 그때 놓은 작은 글씨 몇 자가 훗날 한 생애를 따라다닐 줄 누가 짐작했으랴.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이르러 문학은 조금씩 먼 산이 아니라 걸어가 보고 싶은 길이 되었다. 책 속에서 사람을 만났고, 시 속에서 세상을 보았다. 현실에서는 설명되지 않던 마음들이 한 줄의 문장 안에서는 이상하리만치 선명해졌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사람의 생에는 눈에 보이는 삶과 글 속에서 다시 살아나는 또 하나의 삶이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기 시작한 것이. 국문학을 공부하면서 문학은 더욱 가까워졌다. 말에는 표면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한 단어 아래에는 역사와 체온이 묻혀 있었고, 한 문장 뒤에는 시대와 인간이 서 있었다.

문학은 단순히 아름답게 쓰는 기술이 아니었다. 사람이 사람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관한 오래된 질문이었다.

그 뒤 소월 ㆍ백석 ㆍ안서 ㆍ춘원의 민족전통사학 ㆍ 문학의 산실인 서울 오산학교에서 국어교사로 학생들을 만났다.

교실에서는 국어를 가르쳤지만, 문예를 담당하면서 어쩌면 학생들과 함께 또 다른 공부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학생들의 글을 읽고 문장을 다듬어주면서 도리어 내 문장을 더 엄격하게 바라보게 되었다. 아이들에게는 한 줄을 더 써보라 하고, 내 원고에서는 한 줄을 지웠다. 학생들에게 자기 목소리를 찾으라 말하면서, 정작 내 문장 속에는 남의 목소리가 섞이지 않았는지 오래 들여다보았다. 교단은 가르치는 자리였으면서 동시에 문장을 연마하는 긴 작업실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1990년대 말 무렵에는 그동안 적어온 글 가운데 몇몇을 골라 다시 만지고 다듬었다. 시집을 내야겠다는 거창한 계획이 먼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래 품었던 말들을 정리하고, 살아온 날들의 숨을 종이 위에 한 번쯤 눕혀보고 싶었을 뿐이다.

쓰고 또 고쳤다. 붙였다가 떼고, 살렸다가 버렸다.

어떤 시는 처음보다 절반으로 줄었고, 어떤 것은 제목만 남았다. 끝내 한 편 전체가 사라진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다듬어놓은 글들이 긴 세월 서랍 속에서 잠들어 있었다. 시간은 그 원고 위에 먼지를 쌓았고, 사람은 그 사이 중년을 지나 노년의 문턱까지 걸어왔다.

지난해에야 그 오래된 숨들을 한데 묶어 시집 한 권으로 세상에 내놓았다.

《숨의 연대기》.

처녀작이라 부르지만 그 말이 조금 낯설다. 첫 책은 맞지만 첫 글은 아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글짓기 종이에서 시작된 한 줄, 중·고등학교 시절 문학을 꿈꾸던 마음, 국문학을 공부하던 시간, 오산학교 교단과 문예지도의 세월, 1990년대 말 손질해 두었던 원고, 그 뒤 수십 년 동안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며 쌓인 숨들이 그 한 권 안에 겹겹이 포개져 있다. 그러므로 《숨의 연대기》는 한때 쓴 시들을 모아놓은 책이라기보다 한 사람이 말 곁을 떠나지 않고 살아온 시간의 작은 지층에 가깝다.

젊은 날의 뜨거운 숨도 들어 있고, 교단에서 아이들을 바라보던 숨도 들어 있고, 사람을 사랑하다 상처 입은 숨도 있으며,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목울대 아래로 삼킨 숨도 들어 있다. 낙담 끝에 길게 내쉰 한숨도 있고, 새벽 책상 앞에서 한 단어가 오기를 기다리며 잠시 멈추었던 숨도 있다.

그러니 그 한 권을 두고 가끔 이런 생각이 찾아온다. 이것이면 족하지 않은가.

한평생 글다운 시집 한 권을 세상에 남겼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앞으로 또 한 권의 시집이 나올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다. 세상에는 이미 수없이 많은 시가 있고 매일 새로운 책들이 태어난다. 책 한 권을 더 보태기 위해 억지로 문장을 생산할 까닭도 없다.

시는 권수로 증명되는 것이 아닐 것이다. 백 권을 냈어도 자신의 숨이 없는 문장이 있을 수 있고, 단 한 권이어도 한 생애가 통째로 들어앉은 책이 있을 수 있다.

《숨의 연대기》는 후자이기를 바랄 뿐이다. 지금까지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많은 글을 써왔다. 문학과 사람, 삶과 시대를 바라보며 적어놓은 글의 양만 헤아리면 적지 않다. 그럼에도 그것들을 선뜻 작품이라 부르고 싶지는 않다. 작품이라는 이름을 붙이기 전에 아직 습작이라 여기고 싶다. 습작은 미완성이라는 뜻만은 아니다. 자신의 문장을 아직 완성되었다 여기지 않는 태도이며, 말 앞에서 계속 학생으로 남겠다는 자세에 가깝다.

오래 썼다고 대가가 되는 것도 아니고, 많이 발표했다고 문장이 완성되는 것도 아니다. 오래된 붓일수록 먹을 찍기 전에 더 오래 머뭇거릴 수 있다. 그 머뭇거림이 부끄럽지 않다. 외려 그것이 문장을 대하는 최소한의 예의일지도 모른다. 일흔을 바라보는 지금도 몇 줄을 쓰는 일이 어렵다. 손에는 세월이 내려앉았지만 문장은 좀처럼 늙지 않는다. 사람의 몸은 나이와 타협하지만 말은 매번 처음 태어나는 것처럼 까다롭다.

어제 잘 쓴 문장이 오늘의 문장을 대신해주지도 않는다. 한 줄은 언제나 처음이다. 빈 원고지 또한 언제나 처음이다. 가끔은 밤새 한 줄을 붙들었다가 새벽에 모두 지운다. 이전 같으면 허탈했을 것이다. 이제는 지운 자리 또한 문장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시집에 실린 것은 남겨진 말뿐이지만, 실리지 못한 수천 개의 문장과 버려진 비유와 지워진 형용사들이 그 뒤를 받치고 있다.

한 권의 책은 보이는 문장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끝내 선택되지 못한 말들이 지하의 뿌리처럼 책을 떠받친다. 그런 의미에서 시인의 진짜 전집은 서점에 꽂힌 책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 것이다. 쓰지 못한 시, 지운 시, 끝내 제목을 얻지 못한 문장, 가슴속에서만 몇 번 읽고 버린 한 줄. 그것들이 어쩌면 가장 두꺼운 전집이다.

《숨의 연대기》 이후 또 다른 시집이 언제 올진 모른다. 오지 않을 수도 있다. 한 권이면 족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다음 책의 권수가 아니라 아직도 말 한마디를 쉽게 내려놓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길을 걷다가 늙은 나무의 갈라진 껍질 앞에서 발걸음이 늦어지고, 어느 노인의 손등에서 물길 하나를 바라보고, 바람에 뒤집히는 낙엽의 뒷면에서 미처 쓰지 못한 생애 한 귀퉁이가 눈에 밟히는 동안 문장은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다.

그때 다시 종이를 펼칠 것이다. 말들은 또 다툴 것이다.

시어 하나가 다른 시어의 자리를 넘볼 것이고, 어렵사리 세워둔 세 줄을 새벽녘에 모두 내려놓을 수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시인은 많은 작품을 생산하는 사람이기 전에 한 단어를 함부로 쓰지 못하는 사람일 것이다.

자기 문장을 세상에 보내기 전 몇 번이고 마음의 저울에 올려보는 사람, 화려한 말보다 오래 견디는 말을 기다리는 사람, 끝내 마땅한 말이 없으면 빈칸을 남겨둘 줄 아는 사람. 그 머뭇거림 속에 시의 품격이 있다.

초등학교 글짓기에서 시작된 길이 어느새 반세기를 훌쩍 넘어왔다. 길 끝에 놓인 책은 아직 한 권이다.

《숨의 연대기》.

한 권뿐이라서 작다고 여기지 않는다. 한 사람의 평생이 한 권에 제대로 스며들었다면 책의 두께보다 생의 깊이를 헤아려야 할 것이다. 블로그와 브런치에 흩어진 수많은 문장들은 아직 작업대 위에 놓여 있다.

습작이다.

또 고치고, 또 버리고, 어쩌면 끝내 책이 되지 못할 수도 있다. 그 미완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싶다. 문학은 완성되었다고 선언하는 순간 늙기 시작하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오늘 밤에도 원고지는 비어 있다. 그 빈자리가 전처럼 쓸쓸하지 않다.

초등학생의 작은 손으로 처음 글짓기 종이를 마주했던 날부터 지금까지, 흰 종이는 늘 같은 얼굴로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종이 한 장. 그것은 실패의 흔적이 아니라 아직 문장이 끝나지 않았다는 표지다.

《숨의 연대기》 한 권 뒤에 또 다른 책이 올지, 끝내 오지 않을지는 말들이 결정할 일이다.

다만 흰 종이 앞을 떠나지 않는 동안, 아직 이름을 얻지 못한 한 줄의 시가 어딘가에서 제 숨이 고르게 될 때까지 천천히 기다려볼 일이다.

― 청람 김왕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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