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매미가 벗어놓고 간 생 ― 벗어놓은 몸 하나가 나무에

매미가 벗어놓고 간 생 ― 벗어놓은 몸 하나가 나무에 2026.08.11
매미가 벗어놓고 간 생
― 벗어놓은 몸 하나가 나무에

― 벗어놓은 몸 하나가 나무에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매미가 벗어놓고 간 생 ― 벗어놓은 몸 하나가 나무에 남아 있다

청람 김왕식

여름이 조금씩 제 목소리를 거두고 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나무마다 목이 찢어질 듯 울어대던 매미 소리가 성글어졌다. 뜨겁던 공기의 한복판을 송곳처럼 뚫던 울음도 이제는 먼 골짜기에서 들려오는 메아리처럼 간간이 남는다.

나무 가까이 다가가 보니 매미들은 떠나고 껍데기만 남았다.

갈색의 가벼운 몸 하나.

등은 갈라져 있고 가느다란 발은 아직도 나무껍질을 움켜쥔 채다.

살아 있을 때보다 더 단단히 붙들고 있다.

기이하다.

몸 안에 아무것도 없는데 형체는 고스란하다.

금세라도 다시 울 것 같고 날개를 펼쳐 여름 한복판으로 날아갈 것 같은데 그 안에는 이미 아무도 없다.

생도 저와 같을까.

한때는 저 몸 안에 뜨거운 것이 있었다.

욕망이 있었고 분노가 있었고 사랑이 있었으며 견딜 수 없는 억울함도 있었을 것이다.

사람은 저마다 한 철의 매미처럼 자기의 목소리를 세상에 던지며 산다.

누군가는 사랑한다고 외치고 누군가는 억울하다고 울부짖고 누군가는 살아남기 위해 이를 악물며 누군가는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는 울음을 가슴속에서 평생 운다.

어제, 소중한 친구 하나가 세상을 떠났다.

그의 생도 순하지 않았다.

한평생 가슴 한복판에 응어리 하나를 품고 살았다. 세상이 제 뜻대로 되지 않을 때마다 속을 태웠고, 사람 때문에 상처받고 세월 때문에 분해했으며, 때로는 세상을 향해 매미보다 더 크게 울부짖었다.

그의 몸 안에는 늘 한여름이 들어 있었다.

쉽게 식지 않는 열기, 쉽게 풀리지 않는 울분,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삶.

그토록 뜨겁게 몸부림치던 사람이 어제부터 아무 말이 없다.

이제 누가 그의 이름을 불러도 대답이 없다.

누가 그의 억울함을 풀어주겠다고 해도 몸을 일으키지 않는다.

그토록 붙잡으려 했던 세상도 그토록 밀어내려 했던 세상도 그의 손에서 모두 빠져나갔다.

내일이면 그 몸마저 불길 속을 지나 한 줌 재가 된다.

평생 지고 다녔던 분노도 몇 줌, 사랑도 몇 줌, 욕망도 몇 줌, 못다 한 말도 몇 줌.

뼈와 살을 태우는 불이 그가 평생 가슴에 쌓아두었던 울분까지 태워줄 수 있을까.

그 앞에서 말이 짧아진다.

사람은 평생 무엇을 그토록 움켜쥐고 사는 것인가.

명예 하나, 돈 몇 푼, 자존심 하나, 누군가에게 받은 서운함 한 조각을 몸보다 무겁게 짊어진 채 하루를 건너고 또 하루를 건넌다.

끝내 떠날 때에는 주머니 하나 가져가지 못한다.

사람의 마지막은 놀라우리만큼 가볍다.

한 생은 그렇게 무거웠는데 마지막에는 한 줌이면 충분하다.

다시 나무를 본다.

허물을 벗은 매미 껍데기 하나가 바람에 가볍게 흔들린다.

그 빈 몸을 바라보다 이상한 생각 하나가 가슴에 내려앉는다.

저것은 죽음의 모양이 아니라 떠남의 문일지도 모른다.

매미는 저 껍데기 안에서 죽은 것이 아니다. 자신을 가두고 있던 몸 하나를 찢고 나와 날개를 얻었다.

나무에는 빈집만 남았고 매미는 이미 다른 하늘을 건너갔다.

친구의 주검 앞에서도 그렇게 생각해 보고 싶어진다.

내일 불길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그의 전부가 아니라 평생 그를 붙잡고 있던 한 벌의 육신일 뿐이라고.

나무에 매달린 매미 허물처럼 그 또한 세상에 몸 하나를 벗어놓고 우리가 아직 모르는 어느 하늘로 날개를 옮긴 것이라고.

살아남은 사람은 그 빈자리를 바라보며 또 한 철을 살아갈 것이다.

아침이 오면 밥을 먹고, 전화를 받고, 사람을 만나고, 별것 아닌 일에 마음을 다치며 또 무언가를 움켜쥘 것이다.

다만 오늘 나무에 붙은 저 작은 허물 하나가 평생 잊지 못할 문장 하나를 남긴다.

몸은 끝내 벗어놓고 가는 옷이다.

그렇다면 남겨야 할 것은 얼마나 많이 가졌는가가 아니라 누구의 가슴에 얼마만큼 따뜻하게 머물렀는가일 것이다.

매미 소리가 줄어든다.

여름도 조금씩 자기 몸을 벗고 있다.

친구여.

한평생 목이 쉬도록 울었으니 이제는 울지 않아도 좋겠다.

세상에 풀지 못한 울분일랑 나무 아래 내려놓고,

미처 하지 못한 말도 빈 허물 속에 두고,

가벼이 가시게.

오늘 아침 나무마다 남아 있는 수많은 매미의 빈 몸들이 이상하리만큼 작은 영정처럼 보인다.

바람이 분다.

허물 하나가 흔들린다.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바로 그 비어 있음 때문에 한 생이 얼마나 뜨거웠던가가 더 선명하게 보인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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