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

수준 높은 글은 ㅡ청람 김왕식

수준 높은 글은 2026.08.14
수준 높은 글은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수준 높은 글은

수준 높은 글은 높은 데 서 있지 않는다

낮은 자리까지 내려가 한 사람의 젖은 신발을 오래 바라본다

많이 아는 체하지 않고 아는 것마저 덜어내어 한 줄의 숨으로 남긴다

남의 문장을 재기 전에 제 문장의 모서리부터 먼저 손바닥으로 쓸어본다

경력은 앞세우지 않고 책의 권수도 세지 않는다

마흔 해 품은 한 편이 하루에 쏟아낸 백 편보다 더 무거울 수 있음을 알기에

좋은 글은 사람을 눌러 이기지 않는다

상처 난 마음 곁에 앉아 말 한마디 덜 보태고 침묵 한 자리를 내어준다

맞춤법 하나, 띄어쓰기 한 칸에도 독자를 향한 예의를 놓지 않는다

문장은 쓴 사람의 어깨가 아니라 읽는 사람의 가슴에서 완성된다

수준 높은 글은 자기를 높이는 사다리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 너무 오래 끊겨 있던 곳에 한 장씩 놓이는 낮은 돌다리다

그 다리를 건넌 뒤 누가 썼는지 잊혀도 좋다

다만 한 사람의 마음이 조금 따뜻해졌다면

그 글은 이미 충분히 높은 곳에 닿아 있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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