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람 냄새나는 글을 쓰고 있는가?
나는 사람 냄새나는 글을 쓰고 있는가? 2026.08.17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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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람 냄새나는 글을 쓰고 있는가?
이 질문 앞에 서면 마음이 먼저 낮아진다. 한 편의 시를 얻기 위해 몇 날 며칠 한 단어를 붙들고, 수없이 지우고 다시 쓰는 노시인의 모습을 볼 때면 부끄럽기 짝이 없다.
그는 시를 짓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다듬고 있었다. 한 줄을 얻기 위해 마음을 깎고, 한 단어를 남기기 위해 욕심을 덜어냈다. 절차탁마란 문장을 반짝이게 하는 기술이 아니라 사람의 내면을 오래 갈고닦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럴 때마다 고등학교 시절 국어 선생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선생님께서는 늘 말씀하셨다.
“글을 쓰기 전에 사람이 먼저 되어야 한다.”
그 말씀은 백일장 심사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선생님은 글솜씨가 화려하다고 해서 쉽게 높은 점수를 주지 않으셨다. 기발한 표현이나 현란한 수사보다 그 글 속에서 사람 냄새가 나는가를 먼저 보셨다.
어쩌면 보셨다기보다 맡으셨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백일장 원고지 수십 장을 넘기면서 선생님은 문장의 향기를 맡으려 하셨다.
잘 쓴 글인가보다 따뜻한 사람이 쓴 글인가.
재주가 뛰어난가보다 타인의 아픔을 품을 줄 아는가.
문장이 번쩍이는가보다 그 문장 뒤에 한 사람의 진실한 체온이 남아 있는가.
선생님이 찾으셨던 것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글의 향보다 사람의 향이었다.
젊은 날에는 그것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
좋은 비유를 만들고, 남들이 쓰지 않은 표현을 찾아내고, 문장을 세련되게 다듬으면 좋은 작가가 되는 줄 알았다.
사람보다 글이 먼저 달려가도 되는 줄 알았다.
세월을 지나고 나니 그 생각이 얼마나 성급했는지 돌아보게 된다.
사람의 깊이보다 문장의 깊이가 더 깊어질 수는 없다.
마음에 겸손이 없으면 문장 어딘가에 자만이 묻어난다. 타인을 사랑하지 못하면서 사랑을 노래하면 그 시는 오래 버티지 못한다. 삶과 글 사이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문장은 언젠가 그 빈틈을 드러낸다.
나는 때로 인간보다 글을 앞세우려 했다. 한 편이라도 더 쓰고 싶었고, 더 새롭게 보이고 싶었고, 작가라는 이름에 조금 더 빨리 다가가고 싶었다.
돌이켜보면 그것이 부끄럽다. 작가가 된다는 것은 문장을 잘 만드는 일이 아니라 어쩌면 자기 삶을 문장이 견딜 만한 사람으로 만들어가는 일인지 모른다.
한 편의 시를 쓰기 전에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일. 한 줄의 감동을 만들기 전에 누군가의 슬픔 앞에 오래 머물 줄 아는 일. 좋은 말을 쓰기 전에 좋은 마음을 품으려 애쓰는 일.
그것이 문학의 첫 문장이어야 한다.
노시인이 한 단어 앞에서 오래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면 이제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가 고치는 것은 시어만이 아닐 것이다. 한 글자를 지우며 욕심 하나를 지우고, 한 행을 덜어내며 허세 하나를 덜어내고, 긴 침묵 끝에 비로소 사람에게 가까운 문장을 남기는 것.
그 몇 줄 속에는 기술보다 생애가 들어 있다.
나는 진정한 작가인가.
쉽게 그렇다고 말할 수 없다. 외려 그 질문 앞에서 부끄러워할 줄 아는 사람이 작가에 조금씩 가까워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작가라는 이름은 명함에 새기는 직함이 아니다. 매일 자신에게 치르는 시험이다. 오늘 몇 편을 썼는가보다 오늘 어떤 사람으로 살았는가. 얼마나 이름을 알렸는가보다 얼마나 남의 말을 들어주었는가. 얼마나 멋진 문장을 만들었는가보다 그 문장에서 사람 냄새가 나는가.
고교 시절 선생님이 백일장 원고지에서 찾으셨던 바로 그 향기.
나는 지금도 그 향기를 배우는 중이다. 글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것. 문학의 향기는 잉크에서 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서 난다는 것.
그 한 가지를 제대로 배우는 데도 아마 한 생애가 필요할 것이다.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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